삼일째 해를 보지 못하고 조금 우울했는데 커튼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에 가슴이 벅찼다. 얼른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타미가 말해준 서양 배와 브리치즈 조합으로 샌드위치를 먹고 산책을 하러 나섰다. 한쪽 면에 머스터드 약간, 다른 쪽에 햄과 브리치즈, 루꼴라, 메이플 시럽을 더했다. 캐나다의 배는 모양부터 다른 과일처럼 느껴졌다. 아삭하지 않고 뭉뚝한 식감에 단 맛도 덜하다.
얼마 만에 보는 맑은 날인지, 장마에만 잠깐 비가 오는 우리나라에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팔을 걷어 올리고 조금이라도 햇살을 받으려고 노오력했다. 이 날을 위해 선글라스를 챙겼지!
뻥 뚫린 도로를 보니 내 마음도 시원해지는 것 같다. 시내로 가는 버스에서 빅토리아에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자연친화적이고 조용하고 깨끗한 이곳이 나한테 딱 맞다. 탁 트인 드넓은 땅이 한몫했겠지만 무엇하나 지나친 것이 없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거리를 지나다니면 여기저기 가게에서 들리는 음악소리가 크다. 온갖 노래가 섞여서 소음이 되곤 한다.
또 우리나라는 신호등이 일정 시간 동안 빨간 불 초록 불이 번갈아 나오도록 설계되어 있다. 여기는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은 길 건널목에 버튼을 누르면 사람이 건널 수 있도록 신호가 바뀐다. 그래서 사람이 다니지 않을 때는 차가 기다릴 필요 없고, 길을 건너고 싶을 때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빅토리아 시내에서 홈스테이 가족들이 입을 모아 칭찬한 공원에 왔다. 이보다 더 깨끗할 수는 없고, 공작새와 오리 무리가 자기들 집처럼 나다닌다. 여기저기 벤치가 있어서 걸터앉아 쉴 수 있다. 지내는 동안 애정하는 공간이 될 것 같다.
공원에서 가까운 Cook st.를 추천 받았는데, 아기자기한 거리이다. 사랑스러운 서점을 발견하고 책을 한 권 샀다. 에이미와인하우스와 노라존스 노래가 잘 어울렸고, 공간을 헤치지 않는 은은히 들릴 듯 말듯한 음악 소리에 이곳이 더 좋아졌다. 독립 서점을 가도 책은 잘 구매하지 않는데 여기는 마음에 드는 책이 꼭 있을 것만 같았다. 두 권 중에 고민하다가 좀 더 가벼운 책을 골랐는데, 사장님이 이 책도 좋지만 나머지 한 권도 모임에서 읽었을 만큼 정말 추천한다고 하셨다.
날이 쌀쌀해서 따뜻한 커피가 생각이 났다. 주변 카페를 찾아 발길이 닿은 곳은 자신의 카페를 히든 잼이라고 소개하는 곳. 메인 스트릿에서 안 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자그만 카페가 있다. 찾아가지 않으면 모르는 곳! 디저트로 더 유명한 것 같은데 집에서 단 걸 많이 먹어서 플랫화이트 한 잔만 주문했다. 캐나다는 저지방 우유가 기본으로 되어 있다. 쫀득한 지방 가득한 보통 우유를 원하면 regular/whole milk로 요청하면 된다.
컵 위에 미니 쿠키를 올려 주시는데 너무 귀여운 전략이다. 달콤한 쿠키를 입에 넣으면 미소가 지어진다. 커피는 생각만큼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이름 스펠링까지 물어본 친절한 직원, 귀여운 쿠키를 생각하면 크게 아쉽지 않았다. 다음에 가게 된다면 크럼블 종류를 먹어보고 싶다.
책을 읽으러 다시 공원으로 향했다. 나중에 집에 가서 릭에게 나무 이름을 물었다. 물가 근처에 살지 않으니 잘 몰랐던 버드나무였다. 호수나 강가 등 물이 많은 곳에서 자라는 나무로 잎이 꼭 머리카락처럼 늘어져서 그만의 분위기가 있다.
The Four Agreements 에는 4가지 깨달음, 지혜에 대해 다룬다. 우리는 잠을 자든, 현실에서든, 꿈을 꾸는 사람이며, 그래서 우리가 보는 모든 것들이 꿈이라는 점이 공감이 되었다. 또 그 꿈들은 부모님, 선생님, 사회로부터 많은 부분 영향을 받았고 이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비슷하게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책이 떠올랐는데 그 책은 문체가 너무 과감하고 과격해서 거부감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집에 거의 도착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저녁을 만들기 전에 거실에서 릭이랑 대화를 많이 나눴는데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다.
영어를 잘 하기 위한 (proper English) 팁 두 가지를 알려주었는데 작은 단어를 많이 써라(Use the little words), 관용어를 공부하라(Study idioms)는 것이었다. 작은 단어는 a, the를 비롯한 관사나 전치사를 바르게 써야 한다는 것인데, 참 어려운 점 중에 하나다. 관사를 쓰지 않으면 문장이 완성되지 않은 느낌(incomplete)이 들고 고쳐주고 싶다고 했다.
또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You’ll pay what you don’t know, what you can’t do. 네가 모르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돈을 쓰게 될 것이라는 말.
릭이 15년 전에 만든 영상을 보여주었는데 친구가 kite board 타는 영상을 찍어 편집한 것이다. 화면 구성과 음악, 모든게 감각적이라 재능이 있으니 더 올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릭은 영상 편집에 에너지가 많이 들고 여자들의 몸매 자랑으로 가득한 엉망인 자극적인 미디어 시장에 뛰어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타미랑 저녁을 같이 만들었다. 오늘 저녁은 샐러드, 김치볶음, 닭허벅지 살 구이, 밥. 먹고 남은 것으로 점심도 싸두었다. 내일은 어학원에 가는 날. 내 영어가 낱낱이 드러날 생각을 하니 으 벌써 부끄럽다. 요즘 낮밤이 살짝 바뀌어서 새벽 두 시 넘어 잠이 드는데 오늘은 일찍 자려고 노력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