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님들 얼굴도 궁금합니다.
<Meagre Company, 1633-37>
- Frans Hals
역사 관련 책을 읽거나 드라마와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럴 때마다 궁금한 점이 있다. 역사 속 주인공들은 실제 어떻게 생겼을까. 조선 임금들은 어진을, 일부 사대부들은 초상화를 남겼지만 일반 백성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는지 궁금하다. 개인 뿐 아니라 집단도 자기들만의 결속력을 다지는 자리가 분명 있었을텐데 구성원들은 어떤 표정과 자세로 앉아 서로 대화를 나누고 술잔을 부딪쳤을까.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주전파와 주화파가 청나라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지 열띤 토론을 벌였을 당시 상황은 어땠을까? 영화 <남한산성>에서 김윤식(주전파)과 이병헌(주화파)이 보여준 모습과 비슷했을까. 남인과 북인, 노론과 소론의 주요 인물들은 어떻게 생겼으며 자기들만의 회합이 있을 때 어떤 분위기였을까.
네덜란드 하를럼(Haarlem)에 있는 프란스 할스(Frans Hals) 미술관에서 집단초상화들을 무더기로 봤을 때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교함과 세밀함의 끝판왕이었다.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이건 뭐 사진 촬영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를럼 주민들은 400년전 이 동네에 살았던 조상들의 얼굴이 궁금할 일이 없겠다. 미술관에 오면 바로 볼 수 있으니.
미술관에는 초기 작품부터 프란스 할스의 대작까지 집단초상화가 여러 점 전시돼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왼편에 약간은 어설퍼 보이는 한 작품이 나왔다.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한 아저씨들 열두 명이 진지한 표정으로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이다. 다들 심각한 얼굴인데 특히 맨 앞에서 두번째 아저씨는 표정에 비장미가 서려 있다. 모두 장총을 들고 있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무슨 나무같다. 그러고 보니 두번째 아저씨만 나무가 2개다. 어떤 내용인지 감이 오질 않았다. 설명문을 보니 제목이 <예루살렘 기사 형제단의 순례자들, 1528>이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나아가는 12명의 순례자들을 그렸다고 한다. 아하, 좌측 상단에 있는 게 예수님 무덤이구나. 다들 어깨에 하나씩 받치고 있는 건 종려나무이고 예루살렘에 순례를 다녀온 횟수를 의미한다고 한다. 비장한 표정의 민머리 아저씨는 두 번 다녀오셨구나! 워낙 정교한 작품들에 비해서는 인물묘사가 2%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매우 훌륭하다. 한 세기 이후에 등장하는 프란스 할스의 작품과 비교하니까 약간 아쉬워 보일 뿐이다. 그림 하단 편지 같은 곳에 각 인물의 개인정보가 있다니 후손들은 수백년 전 할아버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뭘 하고 사셨는지 알 수 있겠다.
다른 명화 수십 작품을 감상하다가 드디어 프란스 할스 룸을 만났다. 방 안에는 다섯 개의 거대한 집단초상화들이 있었다. 동 시대 네덜란드 풍속화들은 대부분 사이즈가 작은데 여기 있는 집단초상화들은 대형사이즈였다. 마치 Espresso잔 보다가 스타벅스 Venti 사이즈를 보는 듯 했다. 들어가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The Meagre Company>라는 작품에는 멋진 복장을 한 16명의 아저씨들이 있었다. 일부는 창을 들고 있었다. 그 중 두 명은 계급이 높은 사람들인지 복장이 더 화려했다. 남들은 검은 외투에 흰 칼라를 착용한 단순한 모습인데 비해, 두 명은 허리에 오렌지색 띠를 둘렀고 한 명은 모자까지 썼다. 인물들의 자세, 표정, 시선처리 등이 생생하고 자유로웠다. 우리나라 한 산악동호회가 정상에 오른 기념으로 찍은 단체사진 보다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자료를 보니 프란스 할스는 워낙 자존심이 강해 하를럼으로 직접 찾아오는 사람들만 그려줬다고 한다. 그래서 하를럼으로 온 왼쪽 9명만 할스가 그린 것이고, 직접 오지 않은 7명은 다른 화가가 암스테르담까지 가서 그렸다고 한다.
그 옆 또 다른 집단초상화를 보니 여긴 회식자리 같다. 식탁 위에 음식들이 가득하다. 다들 즐겁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가운데 "자 여기 보세요"하고 누가 외치니 다같이 한쪽을 바라본 거 같다. 인물 표현이 극사실적이다. 네덜란드 여행 가면 길에서 항상 마주칠 거 같은 얼굴들이다. 제목을 보니 <Banquet of the Officers of the Civic Guard of St George>. 역시 회식이 맞았다!
그 외 다른 집단초상화들도 모두 연회나 모임을 그린 작품들이다. 17세기 네덜란드는 국가 경찰이 아닌 각 지역 자경단이 치안을 담당했다고 하더니 바로 그 사람들이다. 집단초상화 제작비는 각자 평등하게 1/n로 냈다고 한다. 어쩌면 여기에서 Dutch Pay라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돈을 똑같이 냈으니 얼굴도 똑같이 잘나와야 했다. 같은 비용을 지불했는데 얼굴 반쪽만 나왔다든지 얼굴에 그늘이 져서 제대로 안나왔다면 당사자는 큰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렘브란트의 <야경>이란 작품이 그런 경우라고 한다. 돈 낸 사람들 요구대로 인물들을 똑같이 잘 그려주지 않고 렘브란트가 자기 맘대로 그리는 바람에 혹평을 받아서 이 작품 이후에 내리막길을 걸었다고.
미술관 관람 동선 마지막 즈음에 할스의 집단초상화 두 점이 또 나왔다. 점잖은 복장을 한 여성 한 무리, 남성한 무리다. 앞서 감상한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전체적으로 그림이 우울하고 어둡다. 특히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여성들은 왠지 엄격하고 깐깐하게 규율을 따지는 기숙사 사감 느낌이 난다. 규정을 하나라도 어기면 벌점을 세게 줄 거 같다. 제목을 보니 <하를럼 양로원의 이사들> 남녀 버전이다. 지금 프란스 할스 미술관 건물이 17세기 초반에는 60세 이상 하를럼 노인들이 여생을 보내던 양로원(또는 요양원)이었다 하니 이곳을 관리하던 사람들이었나 보다. 그림의 분위기가 우울한 것은 양로원 사람들을 그려서인지 아니면 화가 자신이 말년에 곤궁한 생활을 해서인지 모르겠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에 따르면 이 두 작품은 할스가 말년에 시립 양로원이 제공하는 조그마한 수입으로 살면서 그 대가로 그려준 것이라 한다. 각종 자료에서는 이 두 집단초상화가 할스의 최대 걸작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우울한 느낌의 이 두 작품보다는 아까 본 자경단 집단초상화가 더 좋았다.
우리나라는 집단초상화가 거의 없다. 검색해 보니 18세기 작품으로 '조씨삼형제 초상'이라고 하나 나온다. 이분들은 다들 한 자리 하신 분들이었다. 삼형제가 모두 고위공무원이 되는 대단한 집이어야 한 번 그릴 수 있었나 보다. 평범한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돈 푼 깨나 만지는 상인들조차 철저한 계급사회에서는 그저 '아랫것들'이라 집단초상화까지 그리기는 매우 부담스러웠을 듯하다.
미술관에서든 책에서든 작품을 볼 때마다 매번 느끼는 점이지만, 17세기 네덜란드는 예술 방면에서 그야말로 포텐이 터졌던 시기였던 거 같다. 하나같이 아름답고 우아하고 감동적이다. 부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