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14

이런 풍경 속에서 살고 싶다.

by 일상예찬

<Merrymakers in a Cart, 1665>

- Meindert Hobbema


'목가적(牧歌的)'이란 말은 생각만 해도 넉넉함과 고즈넉함이 느껴진다. 이 단어를 처음 접한 건 약 40년 전 중학교 때였다. 국어 시간에 신석정님의 '그 먼나라를 알으십니까'라는 시를 배웠는데 호수에 물새가 날고, 노루가 뛰어다니고, 양지밭에 염소가 한가로이 풀 뜯고 하는 내용들이 있었다(아직도 기억하다니!! 주입식 교육의 긍정적 효과다). 당시 선생님께서 이 시의 성격이 목가적이라 하셨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농촌처럼 평화롭고 서정적이란 뜻이란다. 70-80년대에 실제 시골에서 자란 분들의 삶이 평화롭지만은 않았을테지만 현실을 모르던 서울 촌놈은 머릿속으로 시골의 목가적인 풍경을 동경했다.


호베마(Merrymakers in a cart).jpg <Merrymakers in a Cart>,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원본 촬영.


미술관에 가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표현한 풍경화를 꼭 본다. 풍경화는 미술책에 나오는 유명 작품들에 비하면 이름값은 약간 떨어지지만 주연 못지 않은 조연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갔을 때 2층에 프란스 할스, 렘브란트, 베르메르 등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대작들이 쭉 전시되어 있었는데 풍경화도 그 옆에서 당당히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었다. 누가 플랑드르 화가들 아니랄까봐 실제 경치를 화폭에 옮겨 놓은 듯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표현했다.


그 중 한 작품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갔다. 우선 나무와 하늘의 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풍경화야!'라고 외치는 것처럼 화면의 4/5는 차지할 정도로 이들의 비중이 컸다. 그리고 나서 흙길과 자그맣게 그려진 사람들이 보였다. 수레에 탄 사람들이 길가에 서 있는 맨발의 두 청년에게 인사를 하는 듯하고, 청년들도 손을 들어 환영의 뜻을 나타낸다. 강아지도 좋아 날뛴다. 오른쪽 집 앞에 있는 가족들도 손을 흔들어 주고 있다. 저 뒷편에서도 사람들이 달려온다. 다들 무슨 재미난 일이 있나 보다. 찬찬히 보니 왼쪽 나무 뒤에 교회 첨탑도 보인다. 하지만 수레는 교회와는 반대방향으로 달려간다. 오늘은 교회보다는 파티가 우선이라는 의미일까?. 날도 맑은데다 사람들이 모두 즐거우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밝다. 어린 시절 내가 동경했던 평화로운 '목가적'인 정경 그 자체다. 설명을 보니 Hobbema란 화가의 <Merrymakers in a Cart>라는 작품이다.


20231125_135535.jpg <Woodland Scene with Travellers Near an Inn>, 벨기에 왕립미술관 원본 촬영.


어, 그런데 얼마 전 벨기에 왕립미술관에서도 비슷한 그림을 본 거 같다. 사진을 찾아보니 역시 비슷하다. 그림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무와 구름, 흙길 옆의 집들과 작게 그려진 사람들 등 얼핏 보면 같은 그림 같기도 하다. 이 그림도 Hobbema의 작품이다. 이 분은 가끔 같은 컨셉으로 돌려막기 했나 보다.


컨스터블 건초마차.jpg <The Hay Wain>, 런던 내서널 갤러리 원본 촬영.


이 대목에서 영국의 대표적인 풍경화가 John Constable 대표작 <건초마차>도 오버랩된다. 나무, 구름, 들판,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 스며든 사람들 등 이 또한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비슷하다. Hobbema의 작품보다 지평선이 좀 더 올라가 있기 하지만. 기후가 비슷해서 그런가 서유럽 지역 시골풍경은 다 그게 그거인가 보다. 약 150년의 시차가 있으니 컨스터블이 호베마의 컨셉과 기법을 약간 따라 했는지도 모르겠다.


제이콥 루이스달.jpg <Windmill at Wijk Bij Duurstede>,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원본 촬영.


Hobbema 작품 옆에 전형적인 옛날 네덜란드 시골 풍경을 그린 그림이 또 있었다. 관광책자에 단골로 나오는 풍차와는 좀 다른 모양의 풍차가 첫눈에 시선을 끈다. 누가 봐도 네덜란드임을 알 수 있겠다. 금방이라도 비가 후두둑 떨어질 것 같이 하늘은 잔뜩 흐려 있다. 풍차의 위용이 너무 강해서 강 위의 돛단배도, 저 뒷쪽에 보이는 교회 첨탑과 무너진 성도, 풍차 아래에 있는 세 명의 여인들도 모두 별 비중이 없어 보인다. 풍차만 그리기엔 심심해서 악세사리로 넣었나 보다. 설명을 보니 Jacob Isaacksz van Ruisdael이란 화가의 <Windmill at Wijk Bij Duurstede>이란 작품이다. 그림 속 세 여인들에게는 살기에 퍽퍽한 시골생활이었겠지만 수백년 후 동양에서 온 아저씨 눈에는 소박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미술관 책자에는 이 작품이 Ruisdael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고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라고 나오는데 그 정도까지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꽤 멋지긴 하다. 지금 같으면 인스타그램용 포토포인트 성지가 되기에 충분한 풍경이다.


작품성과 별개로, 풍경화가들의 삶과 커리어를 유추해 봤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신교를 받아들임으로써 화가들은 종교적 주제에서 해방됐다. 교회에서 종교화를 주문받던 시기는 끝났다. 일반 가정과 푸줏간에도 그림을 걸어 놓고 있었다고 하니 새로운 소비자와 시장을 놓고 화가들 간에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졌을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선 전문성을 키워야 했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에 따르면, 별로 이름이 나지 않은 군소 화가가 명성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특수한 장르의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리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정물화에 올인했을 것이고, 어떤 화가는 풍경화나 초상화에 올인했을 것이다. 아마 Hobbema나 Jacob Ruisdael도 그런 차원에서 풍경화를 자신의 전공으로 삼았을 것이다. 역시 생존이 걸렸을 때 초인적인 능력이 발휘되는가 보다.


풍경 속에 신화나 종교 내용을 억지로 우겨 넣었다면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네덜란드 화가들은 실제 풍경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림으로써 자연 자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평범한 시골 풍경을 그야말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곰브리치의 표현처럼 이런 대가들의 작품들 덕에 시골길을 산책하면서 나도 모르게 가식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풍경화를 사랑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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