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파괴운동
<Iconoclasm>
- Jan Luyken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갔을 때 기념품숍에서 <1600-1700 Dutch Golden Age>라는 책을 샀다.
약 400페이지나 되는 '영어'책이라 완독까지는 자신없었지만 중간중간 찾아보는 용도로는 좋을 것 같았다.
제일 첫 페이지 제목이 The Iconoclasm이다. 학창 시절 아무 생각없이 영어 단어 외울 때 '성상(聖像)파괴운동'이라고 기계적으로 외웠던 기억이 난다. 한자를 보고 대략 어떤 내용이겠거니 하고 넘어갔는데 그림을 보니 한 눈에 의미가 들어왔다. 아, 교회 안에 있는 종교 관련 예술품들을 다 때려부순 거였구나. 십자가에 줄을 매달아 끌어내리는 사람들, 조각품 끄집어 내려 벽에 오르는 사람들, 조각품을 바닥에 내동댕이 치고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것들을 해머로 내리치는 사람들..그림만 봐도 그날의 분노와 광기가 바로 느껴진다.
1566년 8월 23일이었다고 한다. 과격파 신교도들이 암스테르담 구교회(Old Church)를 습격해서 교회 내 조각품들을 부수고 회화작품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종교개혁 이후 신교도들은 교회 내 미술품 전시를 '우상숭배'로 간주하고 파괴한 것이다. 당시 네덜란드는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 지배하에 있었는데 스페인 압제에 반대하는 차원에서 개신교도들이 벌인 일이기도 했다. 이것이 네덜란드 미술사에 나오는 성상파괴운동(Iconoclasm)이다. 즉시 공권력이 출동해서 신교회(New Church) 약탈은 막을 수 있었으나 구교회 미술품 파괴는 막을 수 없었다. 성상파괴는 곧 전국으로 번졌고 이제 네덜란드 교회 내부에서는 어떤 미술장식도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그후 DNA가 그대로 내려왔는지, 요즘에도 네덜란드 교회를 보면 외관이든 내부든 밋밋하기 그지없다. 보통 유럽의 교회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화려한 건축과 내부장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무 멋이 없다. '신도들이 모여서 예배 드릴 수 있으면 되는 거지 겉멋이 뭐가 필요해!' 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성상파괴운동의 결과 네덜란드 미술은 새로운 방향으로 다양하게 발전했다. 국가 차원에서 구교와의 절연을 선택함으로서 신교 교회는 이제 종교화나 조각품을 내부에 걸 수 없었다. 화가들도 더 이상 교회로부터 그림 주문을 받지 못하게 되자 생존을 위해 새로운 전문분야를 개척해야 했다. 그 결과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은 풍경화, 정물화, 풍속화, 초상화 등 다양한 발전을 이루어냈다. 성상파괴운동이 일으킨 나비효과로 인해 프란스 할스, 렘브란트, 베르메르 등 거장들의 작품이 탄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술감상자 입장에서 그것도 수백년 지난 시점에서 보면 아쉬운 점도 있다. 16세기 후반 성상파괴운동을 주도한 개신교도들이 조금만 화를 누그러뜨렸다면 어땠을까. 좀 더 대승적인 입장에서 교회 안에 있는 작품들이 파괴대상이 아니라 전 인류의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을 가졌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찬란한 문화유산들이 역사에서 사라지는 비운을 겪지는 않았을텐데 말이다. 설마 그 때 부숴진 작품들이 안트베르펜 성모마리아 성당에 걸려 있는 Rubens의 <십자가에서 내리심> 제단화나 로마의 한 성당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Bernini의 <성 테레사의 환희> 같은 레벨은 아니었겠지..
궁금하긴 하다. 그 때 찢기고 바스라진 작품들은 어떤 것들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