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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Dec 12. 2023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17

감동적이긴 한데..좀 그래..

<Cimon and Pero>

- Peter Paul Rubens(1635)


살다 보면 제대로 실상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성급한 판단을 내릴 때가 있다.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이상하다거나 심지어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감상할 때도 마찬가지다. 화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본뜻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 작품을 폄하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Rubens의 <Cimon and Pero>다.

Rubens의 <Cimon and Pero>.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홈피 다운로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Cimon and Pero> 를 봤을 때 좀 역겨웠다. 웬 노인네가 젊은 여인의 젖가슴을 입에 물고 있다니! 외설도 이런 외설이 없었다. 그런데 여인이 필사적으로 거절하는 거 같지는 않네? 서로 동의한 성매매인가? 노인네 팔이 뒤로 결박된 걸 보니 또 그건 아닌 거 같고, 하여간 느낌이 매우 불쾌했다.


설명을 읽고 나서야 이게 막장 작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작품의 배경이 된 스토리는 기원전 로마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Cimon이란 사람이 역모죄로 아사형(餓死刑)을 선고받고 투옥됐다. Pero라는 딸이 면회를 갔는데 아버지가 굶고 있는 걸 보고 맘이 아팠단다. 그래서 간수 몰래 자기 젖을 물려 아버지 생명을 연장시켰다고. 나중에 사연을 들은 로마 황제가 그녀의 효심에 감동해서 아버지를 석방하고 딸에겐 상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감동적인 스토리지만, 그림을 공개했을 당시 개인사와 맞물려 루벤스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때 루벤스는 37세나 어린 아내(엘레나 푸르망)와 재혼한 지 얼마 안됐다. 지금으로 치면 고등학생 밖에 안됐을 어린 소녀에게 성적 욕망을 품고 이를 작품에 투영했다는 이유로 루벤스는 외설작가로 낙인찍혔다. 이후 교회로부터 그림 청탁이 끊기는 등 어려움을 겪어 낙향하는 등 그는 이 작품 하나로 그간 이루어 온 모든 걸 잃었다고 한다. 내용과 별개로 그림 기법은 '나 루벤스야!'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색채도 화려하고 여인의 몸매는 풍만하고 등장인물들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역동적이다. 뭔가 대단한 스토리가 있는 것 같은 분위기도 풍긴다.

Willem Drost의 <Cimon and Pero>.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원본 촬영.


루벤스 작품 앞에 사람들이 많아서 나중에 다시 와서 찍는다고 생각하다가 잊어버렸다. 대신 Willem Drost라는 동시대 다른 화가가 그린 <Cimon and Pero>라도 찍어서 다행이다. 확실히 루벤스 작품과는 느낌이 다르다. 뭔가 모르게 차분하고 정적이다.


<Cimon and Pero>는 원래부터 유명했나 보다. 자료를 찾다보니 몇 해 전 언론을 통해 이미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작품이다. 2019년 '사법권 남용' 재판 관련해서 세상이 떠들썩했을 때 피의자는 이 그림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면서 무죄를 주장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이 그림을 포르노라 하고 어떤 사람은 성화라고 한다. 피상적으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고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


 남들은 다 아는 건데 나만 몰랐나 보다. 뭐 이렇게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도 재미고 보람이다.


p.s.) 내가 Cimon 같으면 딸의 제안을 거절하고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했을 거 같다. 아무리 감동스토리지만 솔직히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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