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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Dec 13. 2023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18

영웅에게 파렴치한 과거가..

<Bathsheba at her Bath Holding Kind David's Letter 다윗왕의 편지를 들고 있는 밧세바, 1654>

- Rembrandt


다윗(David)이란 인물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다윗과 골리앗' 스토리다. 미천한 어린 목동이 블레셋의 거인 병사 골리앗을 돌팔매 한 방으로 쓰러뜨린 극적인 사건이다. 이로 인해 다윗은 단번에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부상했고 나중에 왕이 되어 40여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다. 마태복음 맨 앞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라고 언급할 정도로 다윗은 예수님의 조상으로서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다. 

Guido RENI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루브르 박물관 원본 촬영.


이런 영웅도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흑역사가 있었으니, 바로 밧세바(Bathsheba) 강간 및 밧세바 남편(Uriah, 우리아) 살인교사다. 미술관에 갔을 때 반라의 젊은 여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내적갈등을 겪고 있는 듯한 그림이 있으면 밧세바일 확률이 매우 높다. 다윗왕에게 강간당하고 나중엔 강제로 아내가 된 여인이다. 웬만한 미술관에 밧세바 관련 작품이 하나씩은 있고 특히 루브르 박물관에만 서너 개는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수백년 전 화가들에게도 다윗과 밧세바는 '스토리 맛집'이었나 보다. 


구약성경 사무엘하 제11장에 따르면, 다윗왕은 부하장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장면을 보고 반해서 그녀를 궁으로 불러 동침하고 임신시켰다. 이후 우리아의 아이인 것처럼 꾸미고자 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전방 부대장에게 명령하여 우리아를 위험한 전투에서 죽게끔 만들었다. 성경에서는 매우 건조하게 기술했지만 지금의 언어로 번역하면 다윗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강간범이자 살인교사범이다. 이미 첩을 여러 명이나 둔 왕이 외간 여인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는 것도 추접스러운데, 심지어 부하의 아내임을 이미 알면서도 그녀를 궁으로 호출해서 강간하다니. 지금도 권력자의 욕망과 의지에 거스르는 게 쉽지 않은데 3천년 전에는 왕의 호출을 거절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Rembrandt <Bathsheba at her Bath Holding Kind David's Letter>. 루브르 박물관 원본 촬영
Willem Drost <Bathsheba with King David's Letter>. 루브르 박물관 원본 촬영.


Rembrandt 그림이나 Willem Drost의 작품이나 내적갈등에 빠진 밧세바의 표정이 압권이다. 밧세바는 이미 알았을 것이다. 남편은 전쟁터에 나가고 없는데 군 최고통수권자(즉 남편의 상사)이자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왕이 나를 부르는 의미를. 이건 부탁이나 요청이 아니라 명령이고 결국 복종할 수 밖에 없을 거라는 것을. 다윗이야 나중에 시편 51편을 통해 이 사건을 참회하고 결국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지만 밧세바에겐 의미없는 일이었다. 자신을 강간하고 남편을 죽게한 자와 강제로 결혼까지 할 수 밖에 없었는데 다윗이 용서를 받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더구나 다윗의 악행에 대한 징벌로 자신이 낳은 첫 아이는 사망하지 않았던가. 영화 <밀양>에서도 전도연이 그랬다.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왜 용서하냐고. 몇주 전 방문한 벨기에 왕립미술관에 있는 그림은 밧세바를 마치 왕을 유혹하는 요부처럼 묘사했는데 이는 화가의 편견이라 생각한다. 밧세바가 유혹한 게 아니라 '당한' 것이다.

Jan Massys <David and  Bathsheba>. 벨기에 왕립미술관 원본 촬영.


'밧세바 신드롬'이란 말이 있다. 권력을 쥔 지도층이 자신이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도취되어 결국 윤리적으로 타락한다는 말이다. 수년 전 우리나라 유력 정치인 몇명이 권력을 이용해 성범죄를 저질렀던 때 이 말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다. 그 때도 가해자는 피해자에 대한 사실상의 '생사여탈권'을 쥔 권력자들이었다. 이들은 아마 자신들의 권력이 천년만년 지속되어 영원히 범죄를 은폐할 수 있을 거라는 오만방자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3천년 전 중동이나 지금의 한국이나 '밧세바'에 대한 횡포와 착취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본질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스토리에 대한 '빡침'과 별개로, Rembrandt와 Willem  Drost의 그림들을 보면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다. 밧세바가 다윗왕의 편지를 들고 고민하고 있는데 당시에 종이가 있었나? 종이는 후한의 채윤이란 사람이 만들었다고 배웠는데 후한이라면 다윗왕 때랑 시기가 한참 안맞는다. 작가의 상상력임을 알면서 괜히 삐딱한 딴지를 걸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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