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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Dec 22. 2023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20

실력에 아부까지 겸비하니 천하무적.

<Napoleon at the Great St. Bernhard Pass,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1800>

- Jacques Louis DAVID


고등학교 졸업한 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용비어천가의 첫 구절 '해동 육룡이 나라샤 일마다 천복이시니'는 또렷하게 기억난다. 지방의 말단 무관이었을 이성계의 조상들까지 '용'으로 격상시키고 그들이 했던 일들이 모두 하늘의 복이라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당대의 최고 지식인이라고 하는 학자들이 권력자에게 보내는 아부의 글이었다. 절대권력으로부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 시기 극강의 내공을 가진 한 화가도 아부를 온몸에 풀세팅함으로서 끝까지 부귀영화를 누렸다. '아부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썼으면 베스트 셀러가 됐을 정도로 초고난도의 아부를 시전했다. 신고전주의의 상징 자크 루이 다비드 이야기다.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비엔나 벨베데레 궁 원본 촬영.

몇 해 전 비엔나 벨베데레 궁에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봤을 때 무척 반가웠다. 1980년대 중학교 참고서 중 가장 유명했던 것이 동아출판사에서 나온 '완전정복'이라는 책이었는데 그 표지가 바로 이 그림이었다. 이걸 눈 앞에서 보다니!


사이즈가 생각보다 꽤 큰데다(232*271cm) 위쪽에 걸려있어서 한참을 올려다 봐야했다. 일단 그림 속 나폴레옹에게서는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북이탈리아를 침공하기 위해 알프스를 넘는 장면이란다. 앞발을 든 백마도 그 자체로 멋있는데, 세찬 바람을 등지고 붉은 망토를 휘날리면서 '진격 앞으로'를 외치는 용맹스런 나폴레옹은 가히 전쟁의 '신' 같은 모습이었다. 저런 훌륭한 장군이 있으면 백전백승할 것같이 부하들에게 신뢰를 주는 표정과 자세였다. 게다가 바닥에 있는 바위에는 나폴레옹의 이름 보나파르트(BONAPART)가 떡 하니 새겨져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BONAPART란 이름 아래에 있는 두 이름이 카르타고의 한니발과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 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 두 영웅보다 나폴레옹이 더 훌륭하다는 의미를 내포한 그림이었다. 와..고관대작의 비서들은 인정받으려면 이런 거 배워야 한다 정말.


Paul Delaroche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구글에서 다운로드.

실제로는 말을 타고 알프스를 넘는 게 불가능했다고 한다. 부하들을 먼저 보내고 본인은 현지 농부의 안내를 받아 추위에 떨며 나귀를 타고 산을 넘었다고. 폴 들라로슈의 이 그림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아예 없는 걸 꾸며낸 것도 아니고 있는 사실을 예쁘게 포장했으니 이건 엄청난 능력이다. 다비드 작품은 내가 봐도 제대로 폼이 나는데 나폴레옹은 얼마나 감동받았을까. 아마 화가가 예뻐서 뭐든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아부도 실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것이니 다비드야말로 실력과 '사회생활'을 겸비한 시대의 능력자라 할 수 있겠다.


<마라의 죽음>. 루브르 박물관 원본 촬영.

'아부의 신' 다비드에 대해 찾아봤다. 보통 분이 아니다. 수시로 변절하면서 반대진영을 오고 갔다. 서정욱님의 책 <그림 읽어주는 시간>에 따르면, 다비드는 원래 왕정시대에 미술을 시작하고 실력을 인정받아 국비로 이탈리아 유학까지 다녀왔다. 하지만 파리에 돌아왔을 때 정치적 격변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혁명이 발발했을 때 혁명파 자코뱅에 가입했다. 이 무렵 혁명파 마라(Marat)가 반대파 한 여인에 의해 목욕탕에서 암살된 장면을 순교자나 성인처럼 그려내면서 그림을 선전의 도구로 훌륭하게 활용했다.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 루브르 박물관 원본 촬영.

혁명파의 극단적 공포정치는 반발을 불러와 결국 보수파가 다시 들어서고 다비드는 정치범으로 구금되었지만 자신을 그림 밖에 모르는 결백한 화가로 표현하여 풀려났다고 한다. 그리고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라는 작품을 통해 서로 화해하자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화해의 상징이 되었고 나중엔 나폴레옹의 전속화가로 노선을 갈아탔다고. 역시 시종여일(始終如一)한 사람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처신하는 사람들이 오래가는 건 시공을 초월한 진리다.

이 어용화가는 나중에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결국 브뤼셀로 '튀어서' 거기서 또 유력자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풍족하게 살다가 사망했다고 한다.


실력이 워낙 압도적이니 어느 편에든 쓸모가 있었고 아부까지 잘 하니 살아남을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그의 작품들을 200년 후에 우리가 감상할 수 있는 것이고. 직장생활 해본 사람은 안다. 실력과 아부 중 적어도 하나는 제대로 해야 살아남는다는 걸. 그런 측면에서 이 둘을 완벽하게 다 가진 다비드는 출세가도를 달릴 수 밖에 없었다.


명화 감상하며 글 쓰다 말고 갑자기 자문해 본다. 나는 실력이 뛰어났던가, 아님 아부라도 잘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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