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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Dec 27. 2023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22

진짜 "쎈 누나들".

<Jael, Deborah, and Barak, 1635>

- Salomon De Braij


TV를 보면 가끔 '쎈 언니' 특집 같은 예능 방송을 한다. 평소 외모나 캐릭터가 강해 보이는 여성 연예인들이 게스트로 나온다. 온순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대부분의 여성 연예인들과 달리, 이 분들은 반대로 와일드한 언행으로 오히려 인기를 끈다. 실제 그런 성격인지 방송용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종의 틈새시장을 잘 공략했다고도 볼 수 있다.


내가 본 명화의 주인공 중에서 '쎈 누나'들은 누가 있을까 생각해 봤다. 기본적으로 스토리 안에서 강한 캐릭터여야 할 뿐 아니라, 보는 이를 위축시킬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두 인물이 떠오른다. 사사기에 언급되는 야엘(Jael)과 천주교 성경 유딧기에 나오는 유디트(Judith)다. 


Salomon De Braij <Jael, Deborah, and Barak>. 구글 다운로드.

오늘 하릴없이 <The Great Golden Age Book>이란 책을 뒤적이는데 278쪽에서 매우 '강인한' 인상의 한 여인이 튀어나왔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냥 위축될 정도로 첫인상이 강렬했다. 눈을 마주치면 안될 거 같았다. 악역전문 조연으로 자주 출연하시는 배우 엄태구님과 느낌이 비슷하다. 


늘 그러듯 제목을 보기 전에 그림부터 찬찬히 봤다. 이것이 무슨 그림일까. 매우 쎄보이는 누님 한 분이 오른손엔 망치를, 왼손엔 큰 대못을 들고 있다. 옆에는 할머니와 군인이 있다. 무슨 스토리인지 느낌이 왔지만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구약 사사기를 찾아봤다. 내 예상이 맞았다. 야엘과 드보라와 바락이다. 사사기에 언급되듯이 야엘은 자기 집에 피신을 요청한 적장(敵將)을 안심시킨 후 잠든 틈을 타 죽여버렸다. 그런데 그 살해 방식이 통념을 넘어선다. 음식에 독을 타거나 칼로 찔러 얌전하게(?) 죽인 게 아니라, 장막 말뚝(텐트칠 때 쓰는 펙)을 그의 관자놀이에 대고 망치로 박아버렸다!!! 4장 21절을 보면 말뚝이 관자놀이를 뚫고 땅에 박혔다고 나온다. 와..진짜로 쎈 누나 맞다. 다른 등장인물들도 모두 표정이 비장하다.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Artemisia Gentileschi <Jael  and Sisera>. 구글 다운로드.

Salomon De Braij의 그림에는 망치와 장막 말뚝만 나오고 적장의 얼굴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젠틸레스키의 그림은 보다 더 직관적이다. 곤히 잠든 사람 머리에 대고 대못을 내리친다. 스토리를 모르고 보면 섬뜩하지만 알고 보면 이해가 간다. 전쟁 중에 적장(Sisera)을 죽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니. 


Artemisia Gentileschi <Judith and Holophernes>. 우피치 미술관 원본 촬영.


야엘과 더불어 또 한 명의 '쎈 누나' 유디트가 적장을 참수하고 있다. 유디트는 아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가 이스라엘 마을을 함락하기 직전, 시녀와 함께 적진으로 가서 그를 유인하고 술로 만취하게 한 후 목을 잘랐다. 구국의 영웅이다. 이스라엘판 논개라고나 할까. 시녀는 적장의 몸을 누르고 있고, 유디트는 왼손으로는 머리를 눌러 움직이지 않게 하면서 오른손으로 슥삭슥삭 썰고 있다. 살해 장면만 보면 잔인하고 섬뜩하지만 전쟁 중 적은 처단해야 하니까 이 역시 어쩔 수 없다. 유디트의 표정에선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단호함이 보인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성은 완전 배제됐다. 강인한 전사의 모습이다. 


알고 보니 젠틸레스키가 어릴 적 아버지 동료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겪은 악몽으로 인한 복수심이 작품에 발현된 것이라 한다. 아마 작품 속 유디트의 얼굴은 젠틸레스키 본인이고 목이 잘리는 사람은 과거 자신을 성폭행했던 사람이 아닐까. 카라바조(Caravaggio)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장면 묘사가 사실적이고 명암법도 강렬하다. 이렇게 빛과 그림자의 날카로운 대비를 이용한 명암법을 키아로스큐로(Chiaroscuro)라고 한단다. 외우자.


야엘과 유디트 이야기는 종교적으로 해석하면 아마 '힘 없는 여인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내신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늘은 이런 거룩한 해석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들 중 제대로 된 리얼 '쎈 언니'를 만난 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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