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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Dec 30. 2023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23

힘든 가정 맏이들에게 경의를 표함.

<Children of the Sea, 1872>

- Jozef Israels


반백년 이상 살아보니 인생은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생각이 든다. 즉 인생에서 내 노력보다는 통제할 수 없는 변수의 비중이 훨씬 크다는 말이다. 실제로 어느 나라에서, 어떤 집안에서 태어나는지는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지만 향후 인생을 좌우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최빈국보다는 선진국에서, 가난한 집보다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는 것은 출생부터 뻥 뚫린 고속도로를 타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런 측면에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있는 두 그림은 볼 때마다 마음이 아린다. 


<Children of the See>.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원본 촬영.

4남매가 바닷가 물 얕은 곳에서 놀고 있다. 장난감이라고는 보잘 것 없는 돛단배 하나 띄워 놓고 있다. 남루한 일상복 차림인걸 보니 인근에 사는 가난한 집 아이들인 것 같다. 아마도 어부인 아빠와 엄마가 일하러 나간 사이 큰 오빠가 세 동생을 데리고 놀고 있는 모양새다. 공부하는 게 아니라 노는 중인데도 막내를 업고 있는 큰 오빠는 힘들어 보인다. 본인도 친구들이랑 놀고 싶었을텐데 동생들 보느라 힘들겠지. 분위기 보아하니 저 동생들 건사하느라 아마 앞으로 학교도 제대로 못다닐 확률도 높아 보인다. 가난하고 동생 줄줄이 달린 집에 태어난 예전 장남의 숙명이다. 


보는 내가 갑갑하다. 저 오빠의 인생은 얼마나 꼬였을까. 150년 전 네덜란드 어촌을 배경으로 그린 작품이지만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를 떠올리게 한다. 밑으로 예닐곱씩 되는 동생들 학교 보내느라 국졸, 중졸로 학업을 마치고 돈 벌러 나갔던 큰 오빠들이 동네에 몇 명씩 꼭 있었을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린 Jozef Israels는 19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밀레라고 불리는 화가로서, 사실주의 기법으로 주로 가난한 어촌과 어부들의 삶에 찌든 현실을 그렸다고 한다. 이렇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들이 좋더라. 그림은 아니지만 드라마 <전원일기>가 종영할 무렵, 힘들고 어려운 농촌의 현실을 도외시하고 화목하고 단란한 상상 속의 농촌을 그렸다는 비판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Willem Bartel van der Kooi <Piano Practice Interrupted, 1813>.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원본 촬영.

우울한 바닷가 남매들 그림을 뒤로 하고 미술관 2층에 올라오면 정반대 느낌의 그림이 하나 있다. <Piano Practice Interrupted>라는 작품이다. 피아노 연습하는 누나를 방해하는 두 꼬맹이 남동생들의 익살스런 표정이 구김살 하나 없이 마냥 행복해 보인다(200년 전에 집에 피아노가 있다!). 옷차림부터 바닷가 아이들하고 차원이 다르다. 누나는 실제 피아니스트처럼 질감이 좋아보이는 파란색 원피스를 갖춰 입고 있다. 왠지 바다르체프스카의 '소녀의 기도'를 잘 칠것 같은 실루엣이다. 동생들도 부잣집 도련님 복장이다. 애들이 집에서 저렇게 입고 있을 정도면 꽤 사는 집이다. 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앞서 본 바닷가 아이들보다는 훨씬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운도 이런 대운이 없다. 인생은 운칠기삼이다.   


Frans Hals <Portrait of Children of the van Campen Family with a cart Drawn by a Goat>. 

벨기에 왕립미술관에서 본 Frans Hals의 위 작품도 역시 유복한 가정 아이들을 표현하고 있다. 애들 복장만 봐도 보통 집안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염소가 끄는 수레라니! 애들 둘 태우고 힘쓰는 염소마저도 즐거워 보인다. 


실존인물은 아니겠지만, Jozef Israels의 <Children of the See>에 나오는 '큰 오빠'의 인생이 궁금하다. 

어떻게 살다가 가셨을까. 부모처럼 어부로 살았을까, 아니면 주경야독해서 고통스런 환경을 벗어났을까. 세계 각처에서 저 바닷가 큰 오빠의 삶을 살아오신, 현재도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맏이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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