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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Dec 31. 2023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24

배우자가 먼저 죽으면..

<The Return of Marcus Sextus, 1799>

- Pierre Narcisse GUERIN


인간이 살면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언제일까.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잘렸을 때 가장 힘들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병에 걸렸을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미국 어느 의과대학에서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해고, 질병, 수감, 이혼보다 배우자의 죽음이 가장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고 한다. 충분히 동의한다. 사랑과 정으로 오랜 시간 삶을 공유해 온 배우자가 세상을 떠난다면 그 슬픔은 형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The Return of Marcus Sextus>. 루브르 박물관 원본 촬영.

2년 전 루브르 박물관에서 아내의 죽음을 마주한 한 남자를 만났다. 아내는 죽은 채로 침대에 누워 있고 딸 아이는 아빠의 다리를 붙잡고 슬퍼하는 장면이었다. 남편의 망연자실한 표정을 보니 왠지 아내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눈치다.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한동안 집을 비운 사이 아내가 죽었고 아이는 집에 돌아온 아빠를 보자마자 오열하는 듯 하다.


설명을 읽었다. 로마의 독재자 Sulla에 의해 추방당했던 Sextus란 사람이 나중에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가 죽어있더라는 내용이다. 실제 있었던 내용은 아니고 화가가 만들어낸 스토리라고 한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화가는 왜 이런 그림을 상상해서 그렸을까. 이 그림이 있는 공간이 신고전주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방인데 그럼 이 사람도 신고전주의 화가인가? 그러고 보니 작품의 구도가 깔끔하다. 아내와 남편의 몸이 가로세로 십자가 형태를 이루고 있고 있다. 심지어 죽은 아내의 몸은 그리스 조각상 느낌도 난다. 냄새가 폴폴 난다. 또한 아내와 딸을 비추는 빛과 남편이 만들어 내는 그림자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거 신고전주의 그림 맞네!


내용에 대해 생각해 봤다. 1799년 작품이면 프랑스 혁명 관련한 작품이 아닐까? 안그래도 이 방에 있는 작품들이 거의 혁명 관련한 것들이니. 추리는 여기까지 하고 구글링 해봤다. 오우, 대충 맞았다! 화가는 신고전주의 대표선수 David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실력있는 화가라고 한다. 내용도 예상과 비슷했다. 프랑스 혁명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 집을 떠났던 사람들이 나중에 집에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던 상황을 그린 것이라 한다. 즉 작품 속 로마 독재자 Sulla는 혁명의 주동자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를 그린 것이고, 부재중 아내의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은 혁명파의 칼춤을 피해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전혀 모르는 그림을 보고 내용을 추리해 나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Jozef Israels <Alone, 1881>. 헤이그 Mesdag Collectie 원본 촬영.

배우자의 죽음이라는 주제는 같지만 역사적 사건이나 정치적 메시지와는 무관한 또 다른 작품이 떠올랐다.

이전 포스팅에 언급한 <Children of the See>를 그린 네덜란드 화가 Jozef Israels의 작품이다. 가구라고는 낡은 침대와 협탁, 그리고 침대 위 선반 밖에 없는 가난한 집이다. 환한 창 밖과 달리 방안은 어두컴컴하기만 하다. 죽은 아내가 침대 위에 누워 있고 남편은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아내는 사망한 지 좀 됐는지 팔목 색깔이 이미 시퍼렇게 변했다. 없는 살림에 그나마 부부가 정붙이고 사는데 한 명이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 남아 있는 한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아릴지.


이 작품은 1881년 파리 살롱전에 출품한 작품이라고 한다(수상작인지는 모르겠음). 개인적으로는 <The Return of Marcus Sextus>보다 이 작품이 배우자의 죽음을 맞은 남은 자의 심정을 훨씬 현실감 있게 표현한 것 같다.


Claude Monet <Camille on her Deathbed>. 오르세 미술관 원본 촬영.

앞선 두 작품 모두 아내를 잃은 단장(斷腸)의 아픔이 느껴지는 반면, 오르세 미술관에서 만난 모네의 작품은 건전한 일반인의 상식으로선 납득이 가질 않았다. 32살의 꽃다운 아내 카미유가 죽어가는데 남편은 그 고통스런 순간을 그리고 있었다니.


어떤 평론가는 죽어가는 아내의 얼굴이 잔잔하고 평온해 보인다는데 내 눈엔 사력을 다해 죽음과 싸우다가 체념한 표정이었다. 화면 전체가 죽은 사람의 피부처럼 시퍼런 색이다. 붓터치도 어찌나 거친지. 모네는 아내가 사망한 후 40년 후에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죽어가는 아내의 비참한 얼굴을 들여다 보면서 내가 무의식 중에 빛과 그림자 속에 드러난 색을 구별하고 있더군"이라고. 모네의 투철한 직업정신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인간적으로 이건 아니지. 물론 덕분에 명작은 하나 더 탄생했지만..


며칠 전 유명 배우 한 분이 돌아가셨다. 그 분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왜 그런 결심을 했는지, 어떻게 가셨는지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남은 배우자가 죄책감을 갖지 말고 하루빨리 슬픔과 상실감을 이겨내기만을 바랄 뿐이다. 


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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