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놀이, Children's Games, 1560> - Pieter Bruegel the Elder
2018년 가을 오스트리아 빈에 간 적이 있다. 그때 막 그림에 관심을 가질 때라 공항에서 바로 미술사 박물관으로 갔다. 마침 피터 브뢰헬(Pieter Bruegel)이란 화가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림 관련 교양서를 몇 권 읽은 때여서 이 사람이 16세기 플랑드르 지방 최고의 풍속화가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마치 조선시대 김홍도나 신윤복 같은 포지션이라고나 할까.
빈 미술사 박물관에서 원본 촬영.
브뢰헬의 작품들 앞은 관람객들로 인산인해였다. 나도 명화 한 번 제대로 보겠다고 덩치 큰 외국인들 사이로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이 때 바로 앞에서 마주한 첫번째 그림이 바로 <아이들의 놀이>였다. 입이 떡 벌어졌다. 그리 크지 않은(118*161cm) 그림 안에 수십 명의 아이들이 놀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었다. 나중에 설명을 보니 수십이 아니라 250명 이상이라 한다. 신기하게도 이 많은 아이들 각각이 서로 다른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정교하게 그릴 수 있었을까.
원본 일부 확대. 말뚝박기 놀이(좌), 카우보이 놀이(우)
1560년 플랑드르 아이들이 노는 장면을 보니 1960년대생 한국 아저씨에게 꽤 익숙한 놀이도 보였다. 초등학교 때 많이 했던 '말뚝박기' 하는 애들도 있고, 굴렁쇠 굴리는 아이들도 보였다. '카우보이' 놀이 하듯 다른 아이 등에 올라타 '이랴'를 외치는 듯한 아이도 있고, 나무봉에 매달려 있는 애들도 있었다. 저 뒤쪽엔 여러 명이 앞사람 허리춤을 잡고 가며 기차놀이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근처에선 비석치기 비슷한 놀이를 하는 장면도 보였다. 약 500년이란 시간이 차이 나고, 유럽과 한국이라는 공간이 달라도 애들 노는 건 다 비슷해서 신기했다. 하긴, 최근에야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지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우리도 학교 운동장에서 같이 몸을 부대끼며 놀았으니까. 우리가 김홍도의 <서당>이나 신윤복의 <단오풍정>을 보면서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듯이, 플랑드르 지방 향토사학자들에게는 이 그림이 귀중한 사료가 될 것 같다.
미술관을 나올 때 피터 브뢰헬 관련 책을 한 권 사왔다. 나는 단지 당시의 생활상을 표현한 것이라는 것 외엔 다른 의미를 떠올리지 못하겠던데 고수들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을 지 궁금했다. 책을 보니 어떤 전문가들은 이 작품이 어른들에게 아이들처럼 유치하게 놀면서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고 주장한단다. 뭐 그렇게 볼 수도 있지. 해석은 보는 사람 맘이니까. 그런데 책의 저자는 '이 그림이 오늘날 우리에게 흥미로운 것은 도덕적 교훈이나 혁신적인 테크닉 때문이 아니라, 색채와 구성에 대한 브뢰헬의 기술적 완성도(If this picture is of interest for us today, then it is not because of its possible moral or innovative technique, but bruegel's skilled mastery of color and form)'라고 평가했다. 오우, 내가 심플하게 느낀 게 완전 헛다리는 아니었나 보다! 짜릿했다.
원래 취미생활은 품이 많이 들지 않고 즐거워야 제 맛인데 명화감상은 때로는 약간의 공부가 필요하기도 하다. 특히 신화나 기독교 관련 작품들은 배경 지식이 없으면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웬 할아버지가 나체의 젊은 여인과 같이 있길래 변태인줄 알았는데 설명을 보니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롯과 그 딸들이라나. 또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누드의 여인에게 하늘에서 황금비가 내리는 그림도 있다. 이건 또 뭐야.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와 다나에 이야기다. 초심자들은 이런 데서 좌절한다. 명화를 감상하기 위해 내가 공부까지 해야 한단 말이냐..
반면 풍속화는 직관적으로 느낌이 온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밥 먹고 춤춘다. 집에서 엄마가 딸의 머리를 빗겨준다. 한 남자가 동전 몇개로 여인을 유혹한다. 간단하고 좋다. 기초지식 없어도 프레임 안의 희노애락을 느낄 수 있다. 조금 더 고상해 지는데 별 노력이 필요없으니 남는 장사 아닌가! 어려우면 풍속화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부담갖지 말고 천천히. 어차피 전공할 것도 아닌데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