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스탕달 신드롬(4-2)
<The Decoration of the Sistine Chapel, 1508-1512>
- Michelangelo
어린 시절 교회 주일학교에 다닐 때 늘 궁금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대체 창조주 하나님은 어떻게 생겼을까. 예수님의 아버지라니까 하나님도 백인 할아버지겠지? '주말의 명화'에 나오는, 머리카락이랑 수염이 희끗희끗한 미국 할아버지 얼굴을 보며 하나님의 생김새를 상상했다.
고등학교 무렵이었다. 어떤 책에서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그림을 봤다. 여러 개의 작은 그림들 중 하나가 <아담의 창조>라는 작품이란다. 설명을 보니 왼쪽 청년이 아담이고 오른쪽 할아버지가 하나님이라고 했다. 내가 상상했던대로 모발과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 맞았다. 다만 완전 백인은 아니고 중동계가 약간 섞인 듯한 얼굴이긴 했다. 에덴동산이 중동지역이니까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담의 창조>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구도와 정교하게 짜여진 대단한 작품이라고 단순하게만 생각했다. 그 땐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수십 년의 시간이 흘러 2018년 어느 날, 바티칸에서 원본을 만났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는 맨 마지막 하이라이트였다. 자잘한(?) 작품들을 한참 지나 교황을 선출하는 장소라는 예배당안에 들어왔다. 우와!!! 처음 천장을 올려다봤을 때 느낀 감동은 감히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오전에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보고 온 베르니니의 <페르세포네의 납치>나 불과 몇분 전에 감상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같은 대작들조차 이미 잊어버렸다. 천장 가운데 부분에는 세로로 9개의 직사각형이 있는데 그게 다 구약성경 창세기 내용이란다.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그림은 두 개뿐 이었지만(아담의 창조, 에덴동산으로부터의 추방) 전체적인 작품의 아우라에 그저 압도됐다.
고개를 잔뜩 뒤로 젖히고 그 유명한 '아담의 창조'를 올려다 봤다. 천장이 너무 높이 있어서(20m라고 함)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최대한 꼼꼼하게 보려 했다. 자다가 막 깬 듯 눈에 초점을 잃은 아담이 하나님을 쳐다보고 있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에는 아담이 '힘차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누워있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동의할 수 없다. 눈이 게슴츠레 하고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데 뭐가 힘차고 아름답다는 건지. 대신 몸은 꽤 좋다. 복근과 가슴, 그리고 허벅지 근육이 헬스클럽에 몇 년은 다닌 사람 같다. 미켈란젤로도 해부학을 열심히 공부했나 보다. 신체 각 부분의 근육 표현이 매우 사실적이다.
내가 어릴 적부터 궁금해했던 하나님이 드디어 나오셨다. 외관이 여리여리한 노인네가 아니라 파워풀한 장사(壯士) 느낌이다. 창세기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언급된 것처럼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이다. 바람에 망토를 나부끼며 아담에게 날아오는 모습이 제대로 폼이 난다. 설명 책자에 보니 하나님 왼팔에 안긴 여인은 이브라고 한다. 아직 창조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창조주 마음 속에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성인 여성 한 명을 한 팔에 안고 날아오는 모습은 그저 '상남자'였다.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력으로 '하나님의 얼굴은 이렇다' 라는 표준을 만들어 버렸다(Standard-setter). 이제 사람들은 하나님 하면 바로 이 그림을 떠올리니 말이다.
하나님과 아담의 손가락이 서로 마주 닿으려 한다. 옛날 영화 <E.T.> 포스터가 이 그림을 보고 따라했나 보다. 다만 이 작품에선 손가락 끝이 서로 닿지는 않는다. 성경에선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했는데, 미켈란젤로는 손가락으로 처리했다. 실력이 워낙 출중하니 성경에 쓰여진대로 그리지 않아도 인정받을 수 있었나 보다.
한 눈에 들어오는 또 하나의 그림은 '에덴동산으로부터의 추방'이었다. 이 작품 역시 높이 있어서 정확히 볼 수는 없었지만, 나무를 뱀이 휘감고 있고 오른쪽에 벌거벗은 남녀가 허허벌판으로 쫓겨나는 장면이 있는 걸 보니 감이 온다. 나중에 책자를 보니 이브가 왼쪽 에덴동산에 있을 때는 핑크빛 감도는 아름다운 얼굴이었는데 쫓겨날 때는 칙칙하게 폭삭 늙어버렸다고 설명되어 있다(from the splendid pink-fleshed figure to the sombre, suddenly agened woman). 아마 앞으로 닥칠 고난을 미리 얼굴에 표현한 것인가 보다.
'아담의 창조'와 '에덴동산으로부터의 추방' 이외에도 창세기 내용을 설명한 7개의 그림들이 더 있고 그 옆에는 예수의 탄생을 예언한 예언자와 무녀들이 그려져 있다. 하나하나 의미가 있음은 물론이고 천장화 전체의 구성도 체계적이고 빈틈이 없어 보인다. 쳐다 보고 있으면 그저 감탄만 나온다. '이건 미친 거야..'
대체 저 넓은 천장에(가로 41.2m, 세로 13.2m), 그것도 평면도 아니고 활처럼 굽은 궁륭형 천장에 어떻게 저렇게 그렸을까.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7, 양정무>에 따르면, '고개를 완전히 꺾어서 위의 천장에 그렸고 천장의 둥근 부분에 작업할 때는 계단처럼 구조물을 쌓고 올라가서 그렸다. 그러다 보니 목이 꺾이고 내장이 뒤틀려 늘 통증에 시달렸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감이 눈에 들어가 거의 실명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미켈란젤로가 천장화를 완성했을 때 나이가 37세였다고 한다. 이 시대 보통 사람들이 각 직장에서 막 자리를 잡아갈 무렵이다. 인간적인 질투도 엇비슷할 때나 하는 거지, 능력 자체가 비교도 할 수 없는 탈인간급 천상계라면 박수치고 감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2018년 어느 날은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축복의 날이었다. 여태껏 딱 네 번 느낀 '유사 스탕달 신드롬' 중 두 번을 그 날 하루에 느꼈다. 오전엔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베르니니의 <페르세포네의 납치>를 보고, 오후엔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감상하고 나서. 5년도 더 지났지만 책자에 있는 그림만 봐도 그날의 감동이 금세 되살아난다. 언젠가 이탈리아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