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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Jan 31. 2024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39

아무리 성경 이야기라도 부녀상간은 아니지!

<Lot and his Daughters, 1565>

- Jan Massys


오랜만에  20년 전 영화 <올드보이>를 다시 봤다. 당시 국내 각종 영화제 주요 부문을 휩쓸고 또 칸 영화제에서도 상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흥행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는 찬사를 받은 영화다.


그런데 상을 많이 받았다고 하니 그런 가보다 하는 거지, 평범한 관람자 입장에선 어디가 그렇게 훌륭한 영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너무도 충격적인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바로 부녀상간(父女相姦) 씬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 아빠(최민식)와 딸(강혜정)은 처음엔 부녀관계인지 몰랐지만 나중에 상대가 딸인 걸 알아버린 아빠는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자기 혀를 자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충분히 이해됐다. 절대로 딸이, 세상이 알아서는 안되는 일이므로.


그런데 이 끔찍한 부녀상간이 성경책에 '버젓이' 있다. 전혀 Holy하지 않은 내용인데 말이다. 나도 청소년기에 성경에서 이 부분을 읽고 매우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바로 '롯과 그 딸들' 이야기다.


Rubens <Lot and his Family Leaving Sodom>. 루브르 박물관.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면서 롯과 그의 가족들은 따로 구원하셨다는 스토리가 나온다(창세기 제19장). 위 루벤스의 작품이 바로 롯과 그의 가족들이 소돔을 탈출하는 장면이다. 잠시 후 롯의 아내는 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말을 듣지 않고 뒤를 돌아봤다는 이유로 소금기둥이 되었고, 롯과 두 딸들은 '소알'이란 지역 근처의 동굴로 피신해 거기에서 기거했다. 


기서 사단이 난다. 동굴에 있을 때 큰 딸은 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베필될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人種)을 전하자.' 그 후에 두 딸이 차례로 아버지와 동침했고 딸들이 잉태해서 나은 자손들이 모압족과 암몬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Jan Massys <Lot and his Daughters>. 브뤼셀 왕립미술관.

아무리 옛날 이야기라도 그렇지, 이건 상간도 아니고 딸이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 사실상 강간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이 동굴에 가기 전에  있었던 '소알'이란 지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곳이 아니었다. 따라서 분명히 남자들이 있었을텐데 왜 베필이 될 남자들이 없을 거라고 단정지었을까. 성적으로 타락한 도시 소돔에 살면서 못된 것만 보고 배워서 그랬을까. 아버지 롯도 이해할 수 없다. 성경에는 '아버지는 딸이 눕고 일어나는 걸 깨닫지 못했다'고 전하지만,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위 그림에서 Jan Massys는 딸을 아버지를 적극적으로 유혹하는 요부처럼 묘사했고, 롯은 아무 생각없이 딸들이 주는 술과 과일을 받아먹는 노인네로 그렸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전혀 모르는 표정이다. 성경 속 이야기를 나름 제대로 표현한 것 같다.

 

(좌) Hendrick Goltzius <Lot and his Daughters>, (우) Arent de Gelder <Lot with one of his Daughters>

반면, 같은 주제로 그린 다른 작품들에서는 롯을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 왼쪽 Hendrick Goltzius 그림에선 롯이 나체의 두 딸과 같이 술 마시는 그 순간 자체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노인네 표정이 아주 밝다. 심지어 즐기고 있는 듯 하다. 오른쪽 Arent de Gelder의 작품에선 롯을 더더욱 변태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마치 옛날에 고리대금업자가 제 때 돈을 갚지 못한 가난한 집의 딸을 뺏어와서 강제로 키스하려 하는 것 같다.


이 화가들은 성경 내용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롯이 전혀 상황을 깨닫지 못한 게 아니라 분명히 알았고 즐기기까지 했다고 생각한 걸로 보인다.


Willem Drost <Cimon and Pero>.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수백년 전 유럽엔 변태 판타지가 있었나 보다. <시몬과 페로>라는 작품도 비슷한 주제다. 역모죄로 굶어죽는 형을 선고받은 아버지 시몬을 위해 딸 페로가 면회를 갈 때마다 아버지에게 젖을 물렸다는 내용이다. 말로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한 딸의 효심을 그렸다고 하지만, 글쎄..관람자들의 변태성향을 충족시키기 위해 일부러 그린 것 같기도 하다. 요즘 말로 하면 '어그로'를 끌었다고 할까. 이 작품 역시 외설을 넘어서 역하기까지 하다.


역사적으로 근친상간(또는 근친혼)은 세계 전역에 있었다. 합스부르크 왕조도 권력 유지를 위해 일부러 친척들끼리 결혼했고, 성경 속 아브라함도 아내 사라가 이복누이였다. 우리나라도 고구려 때 형사취수(兄死娶嫂)라고 해서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랑 결혼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 하지만 부녀간 근친혼은 모든 문화권에서 절대 금기였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는 그렇다.


보통 성경은 2천년 넘게 전해 내려온 인류 최고의 베스트셀러 라고 불린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외국 문화를 지금의 시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모든 문화권을 아우르는 '기본'이라는 게 있다. 성경에 왜 이런 내용이 기술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현재 기독교 신자가 아닌 입장에서 볼 때, 롯과 그 딸들 스토리는 그 인류의 '기본'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p.s.) 롯 또한 매우 이상한 사람이다.

1) 소돔성에 있을 때 타락한 백성들이 와서 천사들을 내놓으라고 협박할 때 그는 남자를 가까이 아니 한 자기 딸을 내줄테니 천사들을 건드리지 말라고 딜을 한다. 아연실색했다. 아버지 맞나?

2) 아내가 뒤를 돌아보고 소금기둥이 됐을 때, 나 같으면 "여보~~"하고 달려가 얼싸안고 같이 소금기둥이 되는 선택을 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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