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상예찬 Feb 02. 2024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40

영웅은 만들어지는 것.

<Washington Crossing the Delaware, 1851>

- Emanuel Gottlieb Leutze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임춘애 선수가 여자 육상 3관왕을 차지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임춘애 선수가 17년간 라면만 먹고 금메달을 땄다는 보도를 했다. 실제로 집이 넉넉하지는 않았어도 라면만 먹지는 않았을텐데, 보다 극적인 스타로 만들기 위해 약간 과장을 했다. 믿거나 말거나 식의 영웅 만들기 작업 덕분에 임춘애 선수는 온 국민의 연민을 샀고 더 큰 찬사를 받았다.


이러한 약간의 '뻥튀기' 사례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도 마찬가지였다. 워싱턴은 훈련도 제대로 되지 않은 오합지졸 군인들을 이끌고 독립을 쟁취해 냈고 이후 초대 대통령까지 역임했다.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미국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누구냐는 설문조사를 할 때 항상 메달권 안에 들 정도로 후대의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약간 부풀려서라도 더 근사하게 표현하고 싶었나 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이 거대한 작품은 워싱턴을 불세출의 영웅으로 그리고 있다.


Emanuel Gottlieb Leutze <Washington Crossing the Delaware>.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이 작품을 봤을 때 일단 스케일에 압도됐다. 한 벽면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작품이 컸다(378.5*647.7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회화 작품 중 가장 크다고 한다. 이 정도 사이즈면 작품성과 내용을 이야기 하기 전에 먼저 인정부터 해주는 게 예의다.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이라는 제목을 먼저 봤으니 작품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대륙군(미국 독립군) 총사령관이었던 워싱턴이 강을 건너 적진으로 향하는 장면이다. 얼음이 잔뜩 얼어 있는 강을 건너는 걸 보니 겨울이다. 작은 나룻배 위에 12명이나 탔으니 배가 양쪽으로 계속 흔들릴텐데 워싱턴은 용맹하고 늠름한 자세를 유지하며 서 있다. 폭풍전야의 먹구름이 끼어 있지만 마치 승리를 예견하는 듯 저 멀리선 햇빛이 비치고 있다. 노를 젓는 사람들 모두 승리를 위해 자신을 초개처럼 버릴 각오로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 중이다.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이 작품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지고 소위 '국뽕'이 가득 차오를 만하다. 우리로 치면 김좌진 장군이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 부대를 기습하러 떠나는 장면을 그린 것과 마찬가지니까.


실제로 이 장면은 1776년 12월 25일 새벽 워싱턴 장군이 강 건너편 트랜튼(Trenton)에 있는 적군을 기습하기 위해 델라웨어강을 건너는 순간을 묘사한 것이라 한다. 워싱턴 뒤에서 국기를 들고 있는 사람은 나중에 제5대 대통령이 되는 먼로(James Monroe)이다. 노젓는 사람들 구성이 이민자, 흑인, 여성 등 다양한데, 이는 여러 다른 출신성분의 사람들이 모여 미국이라는 신생국을 탄생시켰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런데 워싱턴을 영웅으로 만들고 관람자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사실관계의 흠은 그대로 두었다. 먼로가 들고 있는 성조기가 1776년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고, 실제 워싱턴의 도강 시간은 날이 밝기 전 이른 새벽이었다고 한다. 또한 저 많은 사람이 타기엔 배가 너무 작아 작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저런 배 위에선 아무리 용맹한 장군이라도 각 잡고 서 있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좌) 다비드 <알스프를 넘는 나폴레옹>, (우) 폴 들라로슈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나라를 세운 분인데 완전한 날조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과장은 이해한다. 나폴레옹을 그린 그림도 일부 '부풀리기' 되어 있다는 건 이미 유명하다. Jacques Louis David는 거친 바람을 등지고 붉은 망토를 휘날리면서 용맹스럽게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그렸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북이탈리아를 침공하기 위해 알프스를 넘을 때 실제로는 말을 타고 넘는 게 불가능해서 현지 농부의 안내에 따라 나귀를 타고 산을 넘었다는 이야기가 더 현실적이다.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을 그린 화가 Leutze는 독일계 미국인이었다. 1848년 유럽에 혁명의 바람이 불 때 독일도 미국 독립전쟁에서 교훈을 얻어 혁명이 성공하기를 염원하면서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당연히 과장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조지 워싱턴이 역대 위대한 대통령 설문조사 때마다 늘 상위권에 있는 데에는 이 그림도 큰 역할을 했을 것 같다. 교과서에서 또 미술관에서 이 모습을 자꾸 보다 보면 시나브로 워싱턴에 대해 무한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으니까.


이렇게 영웅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3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