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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Feb 04. 2024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41

이건 예술이다. 절대로 외설 아님. 

<Naissance de Venus 비너스의 탄생, 1863>

- Alexandre Cabanel


영화를 보다 보면 이게 예술작품인지 외설물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예전에는 19금 장면에서 보름달이나 물레방아를 잠시 비춰줌으로써 시청자가 상상하도록 했지만, 지금은 적나라하게 모든 장면을 보여준다. 감독은 스토리 전개상 꼭 필요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장면 없어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아무 문제없다. 결국 대중들의 관음증을 충족시켜 주는 측면이 강하다.


그럼 예술과 외설의 차이는 뭘까.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이론적으로 '예술작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과 미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지만, 음란물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충동이나 수치심을 일으키게 한다'고 한다. 매우 모호하다. 동일한 작품에 대해 A는 미적 아름다움을 느끼지만 B는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보는 사람(또는 판단하는 사람) 마음이다.


내 기준에 가장 아름다운 '예술작품'이 오르세 미술관에 있다. 바로 알렉산드르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이다. 비너스의 탄생을 주제로 많은 화가들이 작품을 남겼지만 난 카바넬의 비너스를 봤을 때 '감동과 미적 아름다움'을 가장 격하게 느꼈다. 물론 이 작품을 음란물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Alexandre Cabanel <비너스의 탄생>. 오르세 미술관.

푸른 바다 위에 파도를 침대삼아 아리따운 여인이 비스듬히 누워있다. 미와 사랑의 신 비너스(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가 탄생하는 장면이다. Botticelli 비너스는 조개 위에 서 있는 모습인데, 여기선 매혹적인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며 누워있다. 피부는 백옥같이 희고 매끈하며 풍성한 금발은 파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다. 가슴을 팔로 가리기는 커녕 '만세를 부르며' 풍만한 몸매를 다 드러내고 있다. 막 잠에서 깨어난 듯 오른팔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데 반쯤 감긴 듯한 눈빛이 뇌쇄적이다. 하늘에서 다섯 명의 큐피드들이 탄생을 축하해 주는 장면이 없었다면 완전 나체 음란물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1863년 살롱전에서 입상했고 나폴레옹 3세가 개인적으로 구입함으로써 더욱 유명세를 탔다. 처음에 외설이라 비판했던 사람들도 황제가 이 작품을 극찬하자 급히 태세전환을 했다고 한다. 색채와 인체비율이 완벽했다고 하면서. 예술과 외설은 그야말로 한끗 차이다. 


이 작품이 출품된 시기는 프랑스 혁명이 끝난 지 이미 오래 지난 시점이었다. 부르조아들이 사회의 새로운 주류로 등장했다. 이제 이들의 구미에 맞는 그림들이 인기를 끌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이 체면을 구기지 않고 원초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장치가 필요했다. 즉 에로틱한 누드를 그리되 신화나 역사에 등장하는 고전적인 주제를 끌어와야 했다. 결국 비너스란 이름은 당시 주된 관람자층을 형성한 부르조아들에게 은밀한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사회의 주류가 예술로 인정했기 때문에 이 작품은 예술이 되었다. 



반면 어떤 작품은 똑같이 여인의 누드를 그렸는데 같은 살롱전에서 외설이라는 비난을 받고 낙선했다. 바로 Manet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다.


어떤 숲속에 남성 둘이 나체 여인 한 명과 같이 앉아서 노닥거리고 있다. 남성들의 복장을 보니 부르조아들 같다. 이들 앞에는 여인이 벗은 옷과 음식물이 널부러져 있다. 저 뒤에 있는 다른 여인은 연못에서 몸을 씻고 있다. 자료를 보니 이 숲이 당시 부르조아들이 매춘부들과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즐기던 불로뉴숲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부르조아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낸 이 작품을 보면서 얼굴이 화끈거렸을 수 밖에. 결국 주류계층의 눈밖에 난 이 작품은 낙선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내 눈엔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외설적이지 않다. 수차례 들여다 봐도 '성적 충동이나 수치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일단 여인들이 아름답지 않다.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비너스의 탄생>처럼 환하지 않고 약간 어두컴컴한 느낌이 있다. 붓질도 대충 칠한 것 같다. 원근법도 지키지 않았다. 연못에서 씻고 있는 여인이 앞쪽과 거리가 있을텐데 크기가 거의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어쨌든 전혀 야하지 않다. 하지만 사회의 주류가 외설로 판정했기 때문에 이 작품은 외설이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과 외설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미성년 자녀와 같이 볼 수 있으면 예술, 그게 안되면 외설.' 나는 <비너스의 탄생>을 고등학생 아들과 같이 감상했다. 고로 이건 영락없는 예술작품이다. 그것도 가장 아름다운 예술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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