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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Feb 06. 2024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42

폭풍우가 두려울소냐. 사랑하는데.

<The Storm, 1880>

- Pierre Auguste Cot


낮에 산책하다가 한 어여쁜 소녀를 봤다. 서로 반대방향으로 마주치며 지나가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 익숙했다. 어디서 봤을까..분명히 구면(?)인데. 한참을 생각하다가 마침내 알아냈다!! 8년 전에 봤을 때도 참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그 모습 그대로였다.


뉴욕 Metropolitan 미술관에 갔을 때 어떤 작품 속에서 본 아가씨의 얼굴이었다. 2016년이면 내가 막 그림 감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때였다. 그래서 맨하탄에 갔을 때도 다른 주요 관광지는 다 미뤄두고 Metropolitan 미술관부터 찾아갔다. 전시된 작품들이 하도 많아 정신이 없던 차에 꽤 큰 사이즈의(156.8*234.3cm)작품을 마주했는데 이게 바로 <The Storm>이었다.


Pierre Auguste Cot <The Stor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한 쌍의 청춘남녀가 옷을 우산삼아 머리 위로 들고 비를 피해 달려 나가고 있다. 저 뒤 숲속은 아직 컴컴하지만 다행히 해가 나는 밝은 쪽으로 거의 다 왔다. 숲에서 데이트를 즐기다가 갑작스레 비바람을 만나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 모습이다. 소녀는 몰려오는 비바람에 약간 겁먹은 표정이다. 하지만 소년은 왼손으로 여자친구의 허리를 꽉 잡고 "괜찮아, 걱정마"라고 안심시켜 주는 얼굴이다. 


소녀는 뭔가에 집중하다가 급히 뛰어나왔는지 아주 얇은 가운만 입고 있다. 가운 색깔이 하얀색인데다 빛이 소녀에게 집중적으로 비치고 있어 초견엔 소년은 안보이고 그녀만 보였던 것 같다. 화가가 그림을 미술학교에서 기초부터 제대로 배운 사람인가 보다. 바람에 날리고 비에 젖어 몸에 달라붙은 가운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접힌 부분까지 완벽하다. 또 가운 아래로 비치는 살색과 가운 밖으로 나온 종아리 색도 미묘한 차이가 나게 그렸다. 감탄 또 감탄이었다. 알고 보니 <비너스의 탄생>을 그린 Alexandre Cabanel의 제자라고 한다. 역시 그 선생에 그 제자다. 


영화 <클래식> 중 한 장면(출처 : 구글).

그런데 이 그림 어디서 많이 본 거 같다. 젊은 연인 둘이 옷으로 비를 피하며 뛰어가는 모습. 영화 <클래식>에서 조인성과 손예진이 도서관으로 뛰어가는 장면이다. 감독이나 작가가 <The Storm> 작품을 알고 있는 사람인가 보다.


<The Storm>이 폭풍우를 피해 뛰어가는 연인을 그린 작품이라고 단순하게 볼 수도 있지만, 약간 오버해 보면 또다른 의미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Storm이라는 게 단지 사전적 의미로 '몹시 세찬 바람이 불면서 쏟아지는 큰 비'에 그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화가는 두 연인의 삶에 앞으로 펼쳐질 고난이나 어려움 등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할 수 있지만, 둘이 껴안고 숲속 어두컴컴한 곳에서 밝은 곳으로 뛰어 나오듯 사랑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라는..뭐 이런 뜻도 있지 않을까. 둘이서 다리가 엇갈리면 달리다가 부딪쳐 넘어질 수 있지만 다행히 둘 다 왼쪽 다리가 앞으로 나와 있다. 넘어지지 않을 거 같다. 희망이 보인다고나 할까. 물론 생초보 아저씨의 '믿거나 말거나'식의 해석이다.


<PUCK> 잡지 표지(출처 : 구글).

작품이 19세기 말에는 꽤 유명했나 보다. 1899년 11월 <PUCK>라는 당시 정치 풍자 시사잡지 표지에도 패러디 그림이 나올 정도다. 먹구름이 가득낀 하늘엔 War, 비를 가리는 옷에는 Peace Congress, 소녀 옷에는 Peace, 소년 옷에는 Arbitration 라고 쓰여 있다. 1899년 제1차 헤이그 평화회의(Peace Congress)가 국가간 전쟁(War)으로부터 평화(Peace)와 중재(Arbitration)를 지켜주기를 희망하는 내용인가 보다. 


우연히 만난 한 소녀 덕분에 8년 전에 다녀온 Metropolitan 미술관으로 추억여행 다녀왔다. 아무 것도 모르고 봤던 때와 달리 조금이라도 아는 상태에서 보니 또 다른 게 보이는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게 맞다.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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