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잘 그릴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학창 시절엔 미술 때문에 늘 총점이 깎였다. 그림이라면 지긋지긋하면서도 잘 그리는 친구들이 엄청 부러웠다. 꼭 성적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 때 좀 배워둘 걸. 50대 중반에 그만한 취미도 잘 없을텐데.
Metropolitan Museum에서.
예전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갔을 때 인상적인 장면을 봤다. 어떤 아저씨가 한 조각품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찌나 잘 그리던지 내 눈에는 아마추어라고 보기 힘든 실력이었다. 꽤 시간이 걸리는지 미술관을 한 바퀴 돌아 다시 그 자리로 왔을 때도 여전히 같은 자세로 일에 열중하고 계셨다. 실력은 물론 끈기에도 감동했다. 그가 모사(模寫)하던 조각품은 Antonio Canova의 <Cupid and Psyche> 였다.
Antonio Canova <Cupid and Psyche>. Metropolitan Museum.
얼마 전 포스팅 했던 Bernini의 <Rape of Proserpina>와 <Apollo and Daphne>를 감상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보자마자 감탄을 거듭했다. 와!! 돌멩이를 깎아서 이게 가능하다고?? 미켈란젤로가 그랬다던가, 조각가의 임무는 돌덩어리 안에 있는 조각상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이 조각가들은 인간계가 아니라 천상계에 있는 사람들인가 보다. 보통 사람들은 찰흙으로라도 비슷하게도 못만들 거 같은데.
<큐피드와 프시케>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큐피드는 사랑하는 프시케에게 자기를 쳐다보지 말라고 하고 밤에만 찾아왔다. 하지만 남편의 얼굴이 궁금한 프시케는 밤에 그의 얼굴을 비춰봤고 그로 인해 시어머니 아프로디테의 미움을 받아 온갖 고초를 겪었다. 우여곡절끝에 프시케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가 연기가 새어 나오면서 깊은 잠에 빠진다. 이 작품은 큐피드가 이를 발견하고 키스하면서 프시케를 구원해 주는 장면이다(그리스 신화는 늘 엽기적이고 복잡하다..).
큐피드의 두 다리와 날개가 Χ자 모양이라 자세가 안정적이다. 원래 널부러진 사람을 들어 올리다가 허리가 삐끗할 수 있는데 큐피드는 자세가 좋아 그럴 염려는 없겠다. 큐피드는 키스를 하기 직전 "오빠 왔어. 걱정마"라고 속삭이는 듯 하다. 기절해 있던 프시케는 이젠 안심한다는 듯 두 팔로 큐피드를 안고 있다. Antonio Canova가 신고전주의 양식을 대표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큐피드와 프시케의 동작이 역동적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안정적이다. 조각이나 회회나 신고전주의 작품은 불안하지 않아 좋다.
저 날, 작품의 탁월함에 감탄함과 동시에 모사(模寫)하고 있던 아저씨에게도 매료됐다. 진짜 부러웠다. 저 정도 실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미술관 돌아다니며 일주일에 두어 작품씩 쉬엄쉬엄 그리다 보면 보람있고 시간도 잘 가겠구만. 중노년의 취미로는 무엇과도 비길 수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