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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Feb 10. 2024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45

테스형!

<The Death of Socrates, 1787>

- Jacques Louis David


2016년 메트로폴리탄에서 찍은 사진들을 하나씩 보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지 모르겠다. 그 땐 그냥 지나쳤지만 지금 사진으로 보면 '아, 이 작품이 메트로폴리탄에 있었구나!' 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 당시 약 3시간 정도 돌아다녔는데 뭔지는 몰라도 왠지 내가 인류의 보고(寶庫) 안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은 강하게 받았다. 대부분 처음 보는 작품들이었지만 다행히 몇몇은 책에서 봤던 기억이 났다. 그 중 하나가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다.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흔히들 세계 4대 성인이라고 할 때 예수, 석가모니, 공자와 함께 소크라테스가 들어간다. 종교의 창시자들과 같은 레벨로 언급될 정도니 소크라테스가 대단하신 분인 건 틀림없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언을 남겼고, 사형당할 때도 당당한 모습을 견지했다는 것 정도가 잘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나훈아님의 '테스형'이라는 노래를 통해 우리에게 더욱 친근해지기도 했다. 


<The Death of Socrates>. Metropolitan Museum.

이 작품은 소크라테스가 사약(poisonous hemlock)을 받기 직전의 모습을 그렸다. 소크라테스는 빨간 옷을 입은 제자가 슬퍼하며 건네주는 사약을 받기 위해 오른팔을 뻗고 있다. 왼손으로는 제스추어까지 취하며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다른 제자들에게 뭐라고 가르침을 주고 있다. 아마 '걱정하지 마라. 난 할 일 다 하고 간다. 신념을 꺾고 구질구질하게 사느니 이까짓 사약 원샷하고 가련다.'라고 말하는 듯 하다. 죽기 직전까지도 당당하다. 삶을 구걸하는 비굴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침대 끝에 흰색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이 제자 플라톤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사형 장면에 대한 묘사가 플라톤이 쓴 <파이돈>이라는 책에 나온다고 하니 그래서 플라톤을 그려 놓은 게 아닌가 싶다. 스승과 제자가 약 30년 나이차가 있지만 여기선 둘 다 백발 노인으로 그려놨다. 플라톤이 겉늙었나?


빛이 정면의 소크라테스와 사약을 건네 주는 제자에게 비치고 있고 뒷면은 상대적으로 어두워 연극 무대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또 다비드는 고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자문을 받아 기원전 4-5세기에 아테네에서 실제 사용했던 가구나 의복을 그대로 구현했다고 한다. 고증도 완벽하고 전체적인 구도도 안정적이고 세밀한 붓질도 깔끔하다. 역시 신고전주의의 태두답다.


기록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꽤 추남이었다고 한다. 얼굴은 크고, 이마는 벗겨지고, 눈도 툭 튀어나오고, 코도 뭉툭하고, 배 나오고 키는 땅딸막했다고. 그래도 몸 관리는 잘 하셨나 보다. 배에 군살 하나 없다. 아니면 신고전주의 특성상 옛날 사람을 이상적으로 그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 감옥(아테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 맞은편에는 소크라테스 감옥이라 불리는 세 개의 방이 있다. 역사적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소크라테스가 여기에 갇혀 있다가 사약을 받고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만일 그게 맞다면 이 세 방 중 한 곳이 다비드의 작품 <소크라테스의 죽음>의 실제 장소인 셈이다. 


당시 소크라테스는 정국 반전의 희생양이었다는 설이 다수설이다. 아테네가 스파르타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하고 굴욕을 당하던 차에 누군가 희생양이 필요했는데 그게 소크라테스였다고 한다. 힘 있는 사람들에게 굽신거리지 않고 입 바른 소리 잘하고 다녔다고 하니 권력자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는 신성모독과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로 기소당해서 결국 사형까지 이르렀다.


이 그림은 1787년에 그려졌다. 프랑스 혁명 발발 2년 전이다. 아마 다비드는 급진혁명을 위한 신념을 스스로 다지기 위해 죽기 직전까지 당당하게 신념을 지킨 소크라테스를 그리지 않았나 싶다.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지금 다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8년 전과는 훨씬 다른 시각에서 명화들을 감상할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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