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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Feb 14. 2024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48

키스 예찬.

<The Stolen Kiss, 1760>

- Jean-Honore Fragonard


프라고나르의 그림은 참 달달하다. 얼마 전 포스팅했던 <The Love Letter>도 그렇듯, 인물들(특히 아가씨들) 표정이 다들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분의 작품을 보면 오래 전에 '현장'을 떠난 중노년들도 은퇴를 번복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연애세포들이 여기저기서 꿈틀거린다.


Jean-Honore Fragonard <The Stolen Kiss>. Metropolitan Museu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The Stolen Kiss>라는 작품이 있다. 연극무대처럼 배경은 어둡고 가운데 주인공들에 빛을 비췄다. 카라바조의 기법을 가져온 듯하다. 또 17세기 네덜란드 그림처럼 붓질이 미세한 부분까지 매끈하다. 프라고나르 작품답게 그림이 전체적으로 러블리하다.


한 청년이 옆자리 여인에게 키스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여인은 뺨을 대는 게 아니라 피하는 것 같다. 하기 싫거나 억울하게 당하는 느낌이다. 다른 여인이 '당하는' 여인의 손을 누르고 있는 걸 보니 어쩌면청년이랑 분홍옷 입은 여인이랑 작당을 했나 보다. 마치 고스톱 치면서 청년이 홍단 3점으로 이기라고 바로 앞에서 흑싸리 띠를 내놓은 격이라고나 할까. 설명을 보니 카드게임에서 이겨서 키스하는 거라고(a forcibly pursued kiss) 한다. 18세기 프랑스에도 '왕게임' 비슷한 게 있었나? 제목이 The Stolen Kiss이니 자발적인 키스가 아니라 사실상 당하는 게 맞다. 


Jean-Honore Fragonard <The Stolen Kiss, 1787>. 에르미타쥬 미술관 다운로드.

사실 프라고나르의 <The Stolen Kiss>는 위 작품보다 러시아 에르미따쥬 미술관에 있는 다른 버전이 더 유명하다. 이건 앞선 작품처럼 '억울하게 당했다'는 느낌이 아니다. 예상치 못한 시점과 장소에서 '갑자기 키스를 받고' 놀라기도 하고 또 들킬까봐 걱정하는 장면이다.


여인의 옷차림으로 봐선 파티장에 온 것 같다. 남자친구와 몇시쯤 발코니 앞으로 오라고 미리 연락을 했을 것이다. 시간에 맞춰 가니 남자친구가 발코니 창을 통해 몰래 들어왔다. 잠시 만나는 사이에 열정에 넘치는 남친이 갑자기 키스를 한 모양새다. 여인은 싫진 않지만 깜짝 놀라서 혹시나 저 쪽에서 누가 볼까봐 걱정하는 눈치다. 당사자들은 심장이 콩닥콩닥하겠지만 보는 사람은 입꼬리가 올라간다. 여인의 표정은 물론, 드레스 주름이나 빛이 비치는 디테일까지 세심하게 그렸다. 


이 작품은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기 2년 전인 1787년에 그려졌다. 일부 전문가들 견해에 따르면, 누가 볼까봐 신경쓰는 여인의 표정은 달달한 로코코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혁명의 시대가 오는 것을 걱정하는 걸 의미한다고 한다. 화가가 실제로 그런 의도로 그렸는지는 모르지만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해석이다.


(좌) Francesco  Hayes <Kiss>, (중) William-Adolphe Bouguereau <The First Kiss>, (우) Klimt <Kiss>

키스는 아담과 이브 때부터 존재했을 인류의 역사다. 99.9%의 인류가 경험한 이 보편적 사랑의 행위를 수많은 화가들이 다양한 구도와 화풍으로 화폭에 담았다. 하나같이 예쁘고 사랑스럽다. 역사화도 좋고 종교화도 좋지만, 역시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과 행위를 담은 그림이 가장 아름답다.  


<청춘예찬>이란 유명한 수필의 첫 문장을 패러디 해본다. 키스!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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