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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Mar 07. 2024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51

저 x의 목을 쳐라!!

<The Execution of Lady Jane Grey, 1833>

- Paul Delaroche


미술관에 다니다 보면 참수(斬首) 장면을 그린 작품들이 종종 있다. 보기만 해도 끔찍하다. 지금은 사람을 죽일 때 목을 자르는 형태는 거의 사라졌지만 인권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던 예전에는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그랬으니 옛날 화가들도 주요 테마로 생각했을 것이고. 참수 장면을 다룬 작품들은 대부분 성경 내용이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좌) Guido RENI <David with the Head of Goliah>, (우) Bartolomeo MANFREDI <다윗의 승리>. 루브르 박물관.

우선 다윗이 골리앗의 목을 자른 것을 들 수 있다. 구약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다윗은 조약돌 하나로 골리앗을 단번에 죽인 후 그의 목을 잘랐고 그걸 보고 블레셋 군대가 도주했다고 나온다. 이스라엘 군대의 사기를 높이고 적군의 사기를 꺾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옛날 전쟁터에서 적장의 머리를 잘라 매달아 놓는 건 적에게 겁을 주고 전의를 상실하게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영화 <명량>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왜군 구루지마(류승룡 분)의 목을 자르고 장대에 매다는 장면이 나온다. 


(좌) Artemisia Gentileschi <Judith and Holophernes> 우피치 미술관, (우) Gustav Klimt <Judith> 벨베데레 궁전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장면도 유명하다(구약 외전 유딧서). 유디트는 앗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가 이스라엘 마을을 함락하기 직전, 시녀와 함께 적진으로 가서 그를 유인하고 만취하게 한 후 목을 잘랐다. 여기서도 그냥 칼로 찔러 죽일 수도 있었지만, 화가 생각에 구국의 영웅에게 이 정도는 약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아예 참수를 단행했다. 젠틸레스키의 그림에서 시녀는 적장의 몸을 누르고 있고 유디트는 왼손으로는 머리를 눌러 움직이지 않게 하면서 오른손으로 슥삭슥삭 썰고 있다. 어떤 관람자에겐 적장의 목을 썰어버리는 장면이 통쾌했을지 모르겠으나 난 잔인함과 참혹함이 우선했다. 


(좌) Caravaggio <세례 요한의 머리를 든 살로메> 내셔널 갤러리, (우) Bernardo Luini <세례 요한의 머리를 든 살로메> 우피치 미술관

살로메가 헤롯왕에게 세례 요한의 목을 잘라 쟁반에 올려 달라고 한 것도 유명한 테마다(신약 마태복음 14장). 살로메는 의붓아버지인 헤롯왕의 생일잔치에서 춤을 추어 왕을 기쁘게 했다. 왕이 소원을 말하라고 하자 살로메는 어머니 헤로디아의 의견을 듣고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했다. 과거에 요한은 헤로디아가 헤롯왕의 동생의 아내, 즉 제수였기 때문에 둘의 결혼을 반대한 적이 있었다. 이에 앙심을 품고 있던 헤로디아가 이참에 딸을 통해 원한을 푼 것이다. 이 경우도 다른 방법으로 죽일 수도 있었겠지만 복수의 감정을 담아 목을 자르라고 했다고 볼 수 있다. 복수심이 극에 달하면 가장 잔인한 방법을 동원해도 별 감정이 없는가 보다. 


Paul Delaroche <The Execution of Lady Jane Grey>. National Gallery.

잔혹함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참수당하는 주인공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이 우선 느껴지는 작품도 있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The Execution of Lady Jane Grey>가 바로 그것이다. 제인은 정치적 계략의 희생양이 되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왕위에 올랐다가 9일 만에 권좌에서 내려온 비운의 여인이었다. 새로 왕이 된 메리 1세는 이복동생 제인을 처형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작품은 제인의 처형 직전 상황을 그렸다. 참수형은 보통 대중에 대한 공포심 조성 차원에서 공개된 장소에서 시행하는데 이 장면은 실내다. 실제 있었던 사실이라기 보다는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인 걸로 보인다.


사형장의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빛이 제인에게 집중되고 있다. 제인의 하얀 드레스와 안대는 16살 밖에 안된 소녀의 인간적인 순수함과 권력투쟁의 결백한 희생자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왼편에는 유모나 시종인 걸로 보이는 두 사람이 현 상황에 대해 깊이 탄식하며 슬퍼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도끼를 들고 있는(도끼날이 제인의 얼굴보다 더 크다..) 빨간바지 아저씨도 맘이 좋아 보이진 않는다. 절대 내키진 않는데 먹고 살아야 하는 생활인의 입장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표정이다. 새파랗게 젊은 소녀를, 그것도 얼마 전까지 왕의 자리에 있던 사람의 목을 내려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잠시 후 저 작은 단두대 위에 제인이 목을 올려 놓으면 '망나니'의 도끼가...


예술작품이라곤 하지만 목이 잘린 머리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애들이 어릴 때 미술관에서 이런 작품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그나마  <The Execution of Lady Jane Grey>는 잔혹한 장면이 직접 묘사되지는 않아 덜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이 다 커서 다행이다. 미술관에서 야한 그림이나 섬뜩한 장면이 있어도 같이 보기 꺼림칙하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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