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s Hals 미술관 방문
하를럼(Haarlem)에 있는 프란스 할스 미술관에 다녀왔다. 하를럼은 암스테르담에서 서쪽으로 약 30km 떨어진 도시로, 뉴욕 할렘(Harlem)이란 이름의 기원이 되는 곳이다.
프란스 할스는 네덜란드 Golden Age 화가 3대장(할스, 렘브란트, 베르메르) 중 시기적으로 맏형격이다. 안트베르펜에서 태어났으나 부모가 신교도였기 때문에 가족들 모두 카톨릭 지역인 안트베르펜을 떠나 신교 지역인 하를럼으로 이주했다. 이후 그는 이 도시에서 화가로서의 전 생애를 보냈다. 하를럼이 배출한 화가들 중 역대 원톱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서인지 미술관도 그의 이름을 땄다.
세계적인 미술관이 있을 거 같지 않은 좁은 골목길 끝자락에 고풍스러운 외관의 건물이 나왔다. 계단식 박공장식이 있는 전형적인 옛날 네덜란드식 건물이다. 루브르나 오르세와 같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작지만 강한' 이란 문구가 딱 어울릴 만한 미술관이다. 17세기 양로원 건물을 개조했다고 한다. 미술관에는 십여 개의 작은 방들이 있는데 각 방마다 초상화, 성경 이야기, 집단초상화 등 테마가 따로 있었다. 할스 작품 외에도 하를럼 출신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도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
프란스 할스가 초상화의 대가여서인지, 제일 첫번째 방은 할스를 비롯한 하를럼 대가들이 그린 초상화부터 전시되어 있었다. 이 중 17세기 하를럼 화가 길드 소속 최초의 여성이었던 Judith Leyster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대충 그린 것 같은 빠르고 거친 붓터치가 할스의 스타일과 유사하다. 연배나 활동지역으로 보아 그녀가 할스의 제자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성경 이야기를 다룬 방 한편에는 Ecce Homo 제단화가 있었다. Ecce Homo는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머리에 가시관을 씌운 뒤 성난 무리 앞에서 예수를 가리키며 말한 대사의 라틴어이다(요한복음 19장 5절). 다만 양 옆 패널에는 성경과 달리 성난 군중 대신 무릎 꿇고 예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을 그렸다. 다른 쪽에는 마태복음 2장 '영아학살' 내용을 담은 제단화가 있었다. 헤롯왕이 새로 태어난 유대인의 왕(즉, 예수님)을 찾아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과 인근 마을의 두 살 이하 남자 아이를 다 죽이도록 명령했던 내용이다. 글로 봤던 스토리를 사실적인 그림으로 마주하니 더욱 참혹했다.
하를럼 출신 화가들의 도제관계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도표도 있었다. 역시 이 바닥의 '짱'은 프란스 할스였다. 많은 후배 화가들에게 영향을 줬다. 앞서 초상화 파트에서 설명한 대로 Judith Leyster에게도 영향을 준 걸로 나온다. 하긴, 같은 시기에 Messi랑 FC 바르셀로나에서 뛰었던 선수라면 웬만하면 그의 영향을 다 받았던 거나 마찬가지겠지. 네덜란드 미술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이런 도제관계들을 다 꿰고 있겠구나. 초보자는 할스랑 레이스터 두 명만 외워도 충분하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집단초상화가 대유행이었다. 스페인에 맞서 싸우기 위해 지역마다 조직된 시민군(Civic Guard)이 있었는데 독립 이후엔 사실상 사교모임이 되었다. 이들이 모임을 가질 때 단체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친목회 단체사진이나 마찬가지다. 할스는 여기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집단초상화의 대가가 되었다.
프란스 할스 미술관에는 Pieter Brueghel의 <네덜란드의 속담>이라는 유명한 작품도 걸려 있다. 16세기 네덜란드 지방의 속담 112개를 그림으로 표현한 천재적인 작품이다. 원래 아버지 피터 브뢰헐(Pieter Brueghel the Elder)의 작품이 오리지날이고, 여기에 있는 그림은 아들(Pieter Brueghel the Younger)이 그린 '짝퉁' 버전이다. 원본은 아니지만 피를 물려받은 아들이 꽤 비슷하게 그렸으니 충분히 인정할만 하다. 솔직히 이게 어디냐!
17세기 하를럼의 화가들 중에는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남기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Gerrit Berckheyde라는 사람이었다. 그가 1696년에 성 바보 성당을 그린 작품과 내가 오늘 찍은 사진을 비교해 보면 300여년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거의 비슷하다. 당시 화가들의 정교한 터치는 혀를 내두를만 하다.
수백 점의 보물들을 단 2시간 만에 주마간산식으로 훑었다. 맘 같아선 하루 종일 머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더 꼼꼼하게 보고 싶었으나 체력의 한계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대신 사진도 많이 찍고 기념품숍에서 책도 사왔으니 그걸 다시 보면서 하나하나 곱씹어 보고자 한다.
프란스 할스兄, 반가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