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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Mar 09. 2024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53

이렇게 추접스런 자들이 많았을 거야.

<A Monk and a Beguine, 1591>

- Cornelis Cornelisz van Haarlem.


Frans Hals Museum 내 Bible Stories Room.

그저께 Frans Hals 미술관에 갔을 때였다. 성경 스토리를 담은 작품들이 전시된 방에는 대부분 사이즈가 큰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내용과 예술성은 차치하고라고 일단 크기에 압도될 정도였다. 


그런데 <The Wedding of Peleus and Thetis>나 <The Massacre of the Innocents> 같은 대형 작품들 사이에 상대적으로 작은 작품이 하나 끼어 있었다. 마치 스타벅스 Venti 컵들 사이에 끼어 있는 Espresso잔 같았다. 내용도 성경적이지 않고 '싼티'가 났다.


Cornelis Cornelisz van Haarlem <A Monk and a Beguine, 1591>

중세 성직자 복장을 한 늙수그레한 남자가 젊은 여성의 유두를 두 손가락에 끼워 세게 누르고 있다. 16세기말 네덜란드 변태의 엽색행각을 바로 앞에서 보는 것 같았다. 종교가 일상을 지배하던 시기에 성직자가 일종의 권력관계를 이용해 신도를 성추행 하는 걸로 보였다. 


그림 제목이 <A Monk and a Beguine>였다. Beguine는 중세 유럽에서(특히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등) 공식적인 수도원 생활을 하지 않으면서도 종교적인 삶을 추구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정식 수녀는 아니고 신앙심이 넘치는 신도 또는 인턴 수녀다. 이런 '어린 양'에게 성직자라는 자가 이런 짓을 하고 있다.


설명을 읽어보니 이 작품은 당시 하를럼 지역에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이 신도(또는 인턴 수녀)는 임신한 것을 숨기고 있었는데 남성 성직자가 '과학적인' 방법으로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중이다. 즉 유두를 짜서 우유가 나오면 임신한 걸로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유 대신 붉은 와인이 나왔다(테이블 위에 있는 와인잔이 이를 말해준다). 이로써 그녀의 순수함과 신실함이 증명되는 기적이 연출되었다는 내용이다. 


말은 그렇지만 실제로는 남성의 성추행이 맞다. 순수한 의도였다면 다른 여성 신도가 해도 되는데 굳이 남성이..이 작품은 당시 가톨릭 수도원 내에서 횡행했을 성직자들의 성적 방종에 대한 풍자였을 것이다. 다만 후환이 두려워 이런 식의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알밤연회 가상도(출처 : slow news 2022.5.2 기사)

교회 내 성적 타락은 일반 성직자들 뿐만 아니라 교황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노첸시오 8세는(재위 1484-1492) 역사상 최초로 사생아를 둔 교황이었고, 알렉산더 6세는(재위 1492-1503) 딸을 가운데 두고 아들과 삼각관계이기도 했던 막장이었다. 특히 그는 '알밤연회(The Banquet of Chestnuts, 1501)'라는 최악의 음란 파티를 열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예전에 승려들의 성적 타락이 많았다. 예를 들어 조선 태종실록에는 김제 와룡사 주지가 사찰의 여종 등 다섯 명과 간통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후 사원의 여성 노비 수를 제한했지만 불미스러운 일은 계속되었다고 한다. 아마 사원 내 노비 뿐만 아니라 불공을 드리러 온 일반 신도들과도 불미스러운 일이 있지 않았을까.


중세 유럽이나 우리나라 조선시대나 욕구를 억제하며 살아야 했던 종교인들은 이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이 문제는 여전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일부 몰지각한 성직자의 성적 타락에 관한 뉴스가 종종 보도되고 있고, 몇해 전에는 교황이 사제들의 성폭행에 대해 공식 사과하기도 할 정도니 말이다. 


금욕생활이 힘든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본인 의지로 선택한 길이라면 추접스럽게 살 지는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금수(禽獸)도 아니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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