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화(祭臺畵), 르네상스 교회미술의 꽃!
<Ghent Altarpiece, 1432>
- Jan van Eyck
예전에 오랜 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신앙심이 깊지는 않았다. 예배 중에 거룩한 느낌도 별로 들지 않았다. 날라리 교인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성스러운 감정이 들었던 시간이 있었다. 바로 성찬식 때였다. 동그란 성찬식용 빵을 먹고 작은 잔에 담긴 포도주를 마시면서 상상했다. 이게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흘리신 피와 찢겨나간 살이구나. 성찬식 하는 날만은 진정한 기독교인이 된 느낌이었다.
아마 수백년 전 유럽에서도 성찬식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장로님들이 포도주와 빵을 들고 다니며 신도들에게 나눠주지만 그 땐 달랐을 것이다. 당시엔 사람들이 적었을테니 신도들이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제대(祭臺) 앞에 서 있는 신부님에게서 직접 받았을 것 같다. 그 때 제대 앞에 성스러운 그림이 걸려 있었다면 신도들의 '영빨'이 하늘을 뚫을 정도로 고양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제대 위에 올려 놓은 그림을 제대화(또는 제단화)라고 한다.
유명 미술관에 가면 웬만하면 제대화가 있다. 면 개수에 따라 두폭화(Diptych), 세폭화(Triptych)라 불린다. 면이 많으면 통칭해서 다폭화(Polytych)라고 한다. 제대화는 태생 자체가 교회 의식 중 가장 성스러운 시간과 장소를 위해 그려진 것이므로 내용은 전부 성경 내용이다. 그간 감상한 꽤 많은 제대화들 중 나의 Top3를 이야기 해본다(연대 순). 선정 기준은 '내 맘'이다.
1. 메로데 제대화(Merode Altarpiece, 1427-32)
- Robert Campin
약 8년 전 뉴욕 Metropolitan 미술관 Cloisters 분관에서 이 작품을 만났다. Merode라는 벨기에 귀족이 미술관에 기증했다고 해서 메로데 제대화라 불린다고 한다. 크기가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64.5*117.8cm) 교회 제대 위에 놓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40여년 교회짬바가 있으니 내용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중앙 패널은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에게 수태고지를 하는 장면이다. 방 내부는 당시 플랑드르 가정집의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듯 했다. 테이블이 기울어져 있는 모양이 약간 아쉽지만, 나머지는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돋보기를 사용하면 테이블 위 책에 쓰인 글자도 판독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역시 꼼꼼하고 정교하게 그려진 것이 플랑드르의 냄새가 진하게 난다.
오른쪽 패널에는 웬 노인장이 나무를 깎고 있다. 성모 그림 옆에 목수라면 뻔하다. 당연히 요셉이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6, 양정무>에 따르면, 테이블 위에 이미 만들어 놓은 건 쥐덫이고 이는 훗날 예수가 악마를 물리친다는 걸 상징한다고 한다. 요셉 뒤에 보이는 풍경은 이스라엘이 아니다. Campin이 살던 당시 플랑드르 지역 풍경이다. 화가는 자기가 사는 도시가 수태고지 순간이 일어나는 성스러운 곳이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왼쪽 패널에는 남녀 두 사람이 있다. 제대화에는 보통 후원자들이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어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 나오는 사람들도 메로데 제대화를 후원한 기부자 부부라고 한다.
2. 헨트 제대화(Ghent Alterpiece, 1432)
- Jan van Eyck
이 작품은 '죽기 전에 반드시 봐야할 명화' 류의 책에 항상 언급될 정도로 제대화의 끝판왕 격이다. 일명 '어린 양에 대한 경배(The Adoration of the Mystic Lamb)'이라고도 불린다. 유화의 발명자로 알려져 있는(논란 있음) 얀 반 에이크와 그의 형이 공동작업한 결과물이다. EPL Mancity의 핵심 Kevin De Bryune의 고향인 벨기에 헨트의 성 바보 성당(St. Bavo's Cathedral)에 소장되어 있다.
작품을 실제로 보고 사이즈(5.2*3.75m)에 압도됐다. 책에서 볼 때는 이 정도로 큰 작품인지 몰랐다. 총 12개 패널로 구성되어 있으며 패널을 접었을 때 보이는 그림까지 하면 그림은 총 24개나 된다. 펼친 화면 12개 패널 중 몇 개는 생초보들도 대충 눈치로 알 수 있다. 상단 정가운데에 빨간옷 입은 할아버지는 하나님이실테고(예수님이라고 하기엔 너무 늙으셨음), 그 옆엔 성모마리아겠지. 양쪽 옆에 악기 연주하며 노래하는 사람들은 천사이겠고, 양 끝에 벌거벗은 남녀는 당연히 아담과 이브지 뭐. 아담과 이브 위에 있는 작은 그림들은 카인과 아벨 이야기라고 한다.
아담과 이브가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는 점이 특이했다.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몸짱과는 거리가 멀다. 그냥 동네 목욕탕에 가면 볼 수 있는 평범한 몸이다. 하단 좌우 패널에서도 나무나 말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멋있어 보이게 하려고 이상적으로 그린 게 아니었다. <서양미술사, 곰브리치>에 의하면, 얀 반 에이크는 그림의 모든 세세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재현해서 말의 갈기에 있는 털이나 기수의 옷 모피 장식의 터럭 수까지도 셀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매우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플랑드르 그림은 늘 감동을 준다.
하단 중앙엔 제단 위에서 양 한마리가 피를 흘리고 있다. 하나님 근처에서 누군가가 '피를 흘리고' 있으면 그건 뻔하다. 하나님이 누굴 피나도록 때렸을 리는 없으니,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피를 흘리시는 예수님을 의미한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6>에 따르면, 피 흘리는 양 아래에 있는 분수대는 성수(聖水)가 흐르는 분수대이고 양 바로 위에 있는 비둘기는 성령이다. 즉, 성수와 성령이 제대에서 만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성사가 지닌 신비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앞서 언급한 <메로대 제대화>처럼 이 작품 뒷배경도 당시 헨트 도시 풍경이라고 한다. 화가들은 자신이 사는 도시를 예수님이 태어나고 돌아가신 성스러운 도시와 동급이라고 믿고 싶었나 보다.
패널을 닫았을 때 보이는 그림들도 예술이다.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했던 예언자들이 상단에 있고, 중앙에는 익숙한 수태고지 장면이 그려져 있다. 여기도 배경이 헨트다. 맨 아래에는 제대화를 주문했던 헨트 시장 부부, 세례 요한, 사도 요한이 그려져 있다. 아마 평소엔 이렇게 닫아 놓았다가 예배시간이나 축제일에만 패널을 열지 않았을까 싶다.
3. 십자가에서 내리심(The Descent from the Cross, 1611-1614)
- Peter Paul Rubens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 마지막에 주인공 네로가 파트라슈와 함께 바라보며 죽어간 그림이다.
바로크 대가의 작품답게 전체적인 분위기가 화려하고 역동적이다. 붓터치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중앙 패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장면인데 우상단에서 좌하단으로 이어지는 대각선 구조라 그런지 구도가 좀 불안해 보인다. 정중앙에 있는 예수님에게 집중적으로 빛이 비친다. 강한 명암의 대비에서 카라바조의 느낌도 난다. 루벤스가 이탈리아 여행을 막 다녀온 후에 그린 그림이라고 하니 카라바조풍을 배워서 써먹었다고 볼 수도 있다. 예수님 몸이 축 늘어진 모습이 사실적이다. 성경에(요한복음 19:34) 로마 군인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고 나오던데 그림에도 오른쪽 옆구리가 핏자국으로 흥건하다. 헨트 제대화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가 매우 현실적인 몸매를 가졌던 것과는 달리 여기선 예수님이 몸짱이다. 고행을 거치신 분의 몸이 아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적인 효과를 강조하는 바로크풍을을 고수하느라 이렇게 그렸나 보다.
중앙 패널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살펴보면, 예수님 왼쪽에서 숨진 아들을 보며 울부짖는 푸른 옷의 여인이 성모 마리아다(성모 마리아는 보통 푸른 옷을 입고 등장하심). 또 사도 요한은 보통 붉은 옷을 입고 나오니 여기서는 사다리 아래에서 예수님을 안고 있는 사람이 요한이다. 바닥에 있는 여인 중에 예수님의 발을 잡고 있는 여인은 막달라 마리아로 보인다. 성경에 그녀가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씻어준다는 내용이 있으니 그것과 연결되지 않을까. 맨 위에서 세마포를 잡고 물고 있는 사람들은 일꾼으로 보이고, 그 아래 두 사람(왼쪽 빨간모자, 오른쪽 검은 옷)은 시신을 수습하러 온 요셉과 니고데모로 생각된다.
왼쪽 패널은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사촌 엘리자벳을 방문하는 모습이라고 하고, 오른쪽 패널은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를 성전에 바치는 광경이라고 한다. 임신-출생-사망의 모든 단계가 하나의 제대화에 다 나오는 훌륭한 컨셉이다.
위에 언급한 Top3중 내 맘대로 순위를 매겨본다면 <헨트 제대화>와 <십자가에서 내리심>에게 공동우승을 주고 싶다. 두 작품 모두 어마어마한 감동을 넘어 위압감까지 느꼈으니까. <메로데 제대화>도 당연히 훌륭하나, 나머지 둘과는 사이즈가 워낙 차이가 나서 아쉽지만 동메달을 드린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6>에서는 북유럽 제대화 Top5를 언급하고 있다. 평균수명 기준으로 약 30년 남았는데,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까..
p.s.) 번외(쾰른대성당의 St. Agilulfus Altarpiece)
쾰른 중앙역에서 기차 환승시간 25분 사이에 후다닥 쾰른 대성당에 다녀왔다. 기차 놓칠까봐 급히 사진만 찍었기 때문에 이 제대화 내용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거 그리고 만드느라 엄청 고생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