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을 보여주면 애들이 보고 배운다.
<As the Old Sing, So Pipe the Young, 1638>
- Jacob Jordaens
올해로 작은 아이까지 성인이 됐다. 지난 날들을 돌이켜 보면 아이들과 같이 있는 동안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하려고 늘 노력했던 것 같다. 최대한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자 했고 유해한 것은 가급적 피했다. 아이들 앞에서는 언행도 항상 조심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애들에게 영향을 줄테니까.
'애들이 보고 배우니까 어른들은 행동거지 조심해라'는 말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나 통용됐나 보다. 17세기 플랑드르 지방 작품에도 이런 주제의 그림들이 있다. 어떤 그림은 좋은 환경을 보여주며 이렇게 키우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어떤 작품은 막장 환경을 표현하면서 관람자에게 이렇게 살지 말라고 경고를 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엄마와 아빠, 아이 둘까지 3대가 같이 모여 있다. 인물들의 '때깔'이나 복장에서 풍기는 느낌이 부유한 가정이다. 할아버지는 왼손에 책을 들고 노래 가사를 보고 있으며, 할머니는 안경을 치켜 올려가며 종이에 적힌 내용을 보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열정적인 교회 권사님 삘이다). 아이들 아빠는 뒤에서 백파이프를 불고 있고 큰 아이와 작은 아이 모두 작은 피리를 들고 같이 삑삑거리는 중이다. 부잣집 따님 느낌이 나는 아이 엄마는 작은 아이를 무릎에 앉힌 채 이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딱 보기에도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다.
그림 맨 위 벽에 적혀 있는 글귀는 영어로 번역하면 'As the Old Sing, so Pipe the Young'라고 한다. 의역하면, '어른들이 하는 걸 애들이 그대로 보고 따라한다'는 뜻이다. 이 작품의 제목이자 주제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어른들이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이 보고 배운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가정이 화목하고 여유있으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반대로 나쁜 사례를 보여주며 똑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도 있다. 전에 한 번 포스팅했던 작품이다(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4). Jordaens 그림과 달리 부정적인 가정 환경을 부각시킨다.
이 작품에서도 가족들이 파티를 즐기고 있다. 저고리 앞섭을 풀어헤친 채 술을 더 따르라고 재촉하는 엄마, 만취해서 혼자 중얼중얼거리는 할아버지, 아이에게 담배를 가르치며 깔깔거리는 아버지 등 정신이 하나도 없다. 왁자지껄한 소리들이 바로 옆에서 음성지원 되는 듯 하다. 이 와중에 아기는 유모 무릎에서 곤히 자고 있다. 완전 막장가족이다.
Jan Steen은 그림에 자신과 가족을 그려넣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아이에게 파이프를 권하는 사람이 화가 자신이고 아이들은 자신의 아이들이라는 견해가 있다. 또 술 받는 여인은 그의 아내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 주장이 맞다면 참으로 개념이 없는 아빠인 거 같다. 이런 그림에 가족의 얼굴을 남기다니.
<The Merry Family>도 막장 분위기가 비슷하다. 여기서도 할아버지는 이미 술이 떡이 되셔서 혼자 노래부르고 계시고, 창가에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파란 녀석이 담배를 피워대고 있다. 테이블 앞에 있는 애들 둘도 아마 술을 마시고 있지 않을까. 바닥에 널부러진 후라이팬, 빈 술병, 계란껍질, 국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자리는 정돈된 자리가 아니다. 다들 이미 맛이 갔다. 오른쪽 윗편 종이에 쓰여진 글귀도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류의 글이라 한다. 두 작품이 분위기가 비슷한 걸 보면 Jan Steen 자신이 이런 질펀한 자리를 즐겼나 보다.
아이들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본 후 내린 결론이다. '이렇게 살아라'라고 모범을 보이는 게 더 좋지만, 그게 어려우면 '이렇게 살면 안된다'라고 가르치는 것도 괜찮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