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5

모나리자보다 그대가 더 예쁩니다.

by 일상예찬

<Girl with a Pearl Earring, 1665> - Johannes Vermeer


오래 전 20대 때의 일이다. 아르바이트 하느라 어느 건물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어떤 여인이 타고 있었다. 아주 익숙한 얼굴이어서 분명 아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먼저 인사를 했다. 불과 2-3초 후에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생각해 보니 그 여인은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 유명 연예인이었다. TV에서 늘 보던 사람이라 그저 익숙했나 보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도 미술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언젠가 한번쯤은 봤으리라 생각한다. 탁상용 달력, 팬시점 포스터, 다양한 패러디물 등 여러 군데에 등장하니까. 네덜란드 헤이그 Mauritshuis Museum에서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나도 전혀 신기하지 않았지만 오리지날을 영접한다는 감동으로 한동안 바라보면서 느끼려 했다. 사전지식이 있든 없든 그냥 50대 아저씨 감성으로, 고등학교 때 실기 '양'을 받았던 미술 흑역사의 주인공의 눈으로.

20200825_102522 (2).jpg Mauritshuis Museum에서 원본 촬영.

음, 어여쁜 아가씨로군. 눈망울이 촉촉해 보인다. 입술은 약간 벌리고 있는데 뭔가 말을 하려는 것 같기도 하다. 아주 예쁜 귀걸이를 하셨네. 귀걸이에는 빛이 두 군데서 반사됐군. 하나는 얼굴쪽이 밝은 것으로 보아 왼쪽에서 비치는 빛이 반사된 것이고, 또 하나는 하얀 옷깃이 반사시킨 약간 흐린 빛이다. 가까이서 보면 그냥 하얀 물감일 뿐인데 한두 걸음 떨어져서 보니 영롱한 반사광이다. 전체적인 색은 심플하다. 배경은 검정색, 터번은 파랑색과 노란색, 윗도리도 노란색, 옷깃은 하얀색, 얼굴은 살구색 뭐 이 정도다. 딱 다섯 가지 색으로 이런 대작을 만들어 냈다는 게 감동이다. 배경이 검정색이라 그런가 얼굴이 훨씬 잘 보인다. 역시 초고수는 다르다.


<네덜란드/벨기에 미술관 산책, 김영숙>에 따르면 흔히 이 작품을 네덜란드의 모나리자 라고들 한단다. 모나리자처럼 작품의 완성도가 높은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신비롭게 만들었던 스푸마토 기법이 이 그림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고 해서. 스푸마토가 무슨 말인지 찾아보니 '연기처럼 사라진다'란 뜻의 이태리어 '스푸마레(sfumare)'에서 유래된 단어로, 대상의 윤곽선을 흐리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이 그림도 명확한 윤곽선 대신 눈, 코, 입술이 닿는 부분들이 모호하게 처리된 거 같기도 하고(아닌 거 같기도 하고..). 하여간 전문가들의 설명은 그러하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모나리자라고 하던데 솔직히 난 배우 박신혜님을 닮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더 예쁘다.


아무리 문외한이라도 이 유명한 작품에 대해 '예쁜 아가씨 잘도 그렸네!'하고 그냥 넘어가긴 좀 그렇다. 베르메르란 화가에 대해 알아봤다. Delft란 도시 출신이고 네덜란드 황금기 미술의 3대장(프란스 할스, 렘브란트, 베르메르) 중 한 분이시고 주로 여성을 모델로 해서 일반 가정의 일상을 그렸다고 한다. 이 분 작품을 여럿 보다 보니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왼쪽 창에서 빛이 들어오고 뒷면 벽에는 그림이 걸려 있는 방을 그리셨다. 또한 이 작품 뿐만 아니라 이 분의 다른 작품에도 파란색이 많이 그려져 있는데 당시에 파란색은 금보다도 귀했던 아프가니스탄산 라피스라즐리(청금석)을 사용했다고 한다. 평생 그린 작품이 겨우(?) 37점이라고 하는데 수입도 변변치 않으면서 그 비싼 재료를 쓰느라 집에서 많이 혼나셨을 듯.

20200828_095924.jpg Delft에 있는 화가의 생가 터. 지금은 식당이 되었다.
20200828_115212.jpg Vermeer Museum에는 작품에 주로 보이는 스튜디오(왼쪽에서 빛이 들어오고, 벽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를 재현해 놓았다.


그런데 이 소녀는 누구였을까. 실존인물일까? 전문가들마다 의견이 다르다고 한다. 베르메르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모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스칼렛 요한슨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영화에서는 모델이었다. 하지만 다수설은 이 소녀가 가상의 인물이라고 한다. 전문용어로 트로니(tronie)라고 해서 당시 화가들이 인물의 얼굴 표정과 골상을 훈련하기 위해 제작한 초상화를 말한다고 한다(이 부분은 어려우니 패스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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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달력에서 봤을 때는 잘 몰랐다. 그냥 예쁜 외국 아가씨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모나리자와 비견될 정도로 유명한 그림이었다니! 오리지날 작품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누릴 수 있어서 감사했고, 나보다 약 300살 많은 누님의 소녀시절 앳되고 아름다운 얼굴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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