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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81

화가-후원자-관람자 모두 윈윈(win-win)

by 일상예찬

오늘 어떤 유튜브 컨텐츠를 보는데 채널 주인장이 맨 마지막에 수퍼챗 쏴준 사람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후원받는 사람으로선 당연히 해야할 일이다. 나한테 돈 주는 사람이면 어떤 형태로든 무조건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게 맞다. 내가 좋아하는 축구팀 FC Barcelona도 후원해 주는 Spotify라는 음원업체 이름을 유니폼 한가운데에 넣었고, 월드컵 광고판에도 후원사인 SAMSUNG, HYUNDAI, KUMHO TIRES 등 이름이 등장한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수백년 전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대부분은 돈이 궁했을 것이다. 렘브란트처럼 <니콜라스 박사의 해부학 강의>란 그림에서 잭팟이 터져 이후 돈다발에 파묻힌 경우도 있었지만 이건 아주 특수한 경우였고,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늘 누군가의 후원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술이라는 게 원래 돈 되는 일이 아니니까. 경제적으로 도움만 받고 '입을 씻을 수는' 없었을 터, 어떤 식으로든 감사의 표시를 했을 것이다. 물론 후원자가 돈을 주기 전에 '대가'를 먼저 요구했을 수도 있다. 화가로서는 후원에 보답을 하는 가장 간편한 방법을 생각해 냈을 것이다. 바로 자신의 작품 속 등장인물 중 한 명에 후원자의 얼굴을 그려주는 것. 이 정도면 서로 땡큐였지 않았을까. 이번 포스팅에선 직접 감상한 작품 중에 화가가 작품 안에 후원자의 얼굴을 그려 넣어준 사례 세 작품을 소개한다.


1. Masaccio의 <성삼위일체>

Masaccio <Holy Trinity>,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에서 촬영

이 작품은 단순한 one of them이 아니다. 서양미술의 향후 500년을 지배할 원근법의 시초가 된 작품으로 서양 미술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있다. 지금이야 3D 원근법이 너무도 당연하지만 2D 평면에 익숙해 있던 당시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혁명적인 작품이었을 것이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 우리가 느꼈던 충격보다 더 하지 않았을까. 아마 당시 관람자들은 그림의 아치 안쪽에 또다른 공간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그 무렵 다른 작품들은 우리 눈에 보이는대로 그렸다고 보기 어렵다. 보통 성모마리아는 거인처럼 그렸고 아기 예수도 다른 천사들과 비슷한 크기로 그렸다. 비례가 전혀 맞지 않아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당시의 대가들도 눈이 있었을텐데 왜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그렸을까. 아마도 르네상스 이전에는 모든 것이 '신' 중심이어서 그림 속 인물들도 신이 바라본 중요도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러면 당연히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가 가장 큰 인물일 수 밖에 없었다.


이걸 깬 사람이 마사초다. 아치와 격자무늬 천장에 직선을 그으면 저 안쪽에 있는 하나의 점으로 모이는 것처럼 보이는 데 이걸 소실점이라 한단다. 즉 실제로는 평행한 두 직선이 저 멀리 가서 한 점에서 만나는 것처럼 보이는 점이다. 소실점을 향해 갈수록 등장인물이나 사물은 이에 비례해서 작아진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2D가 아닌 3D로 보게 되는 이유이다.


이렇게 역사적인 작품에 성부, 성자, 성령과 같이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었으니 바로 후원자 부부다. 그림 맨 아래 왼쪽에 붉은 계열 옷을 입고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은 마사초의 후원자이고 반대편에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은 그의 부인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후원이라는 게 돈일 수도 있고 정치적 영향력일 수도 있다. 아마 금전적 후원이 비중이 컸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나한테 돈 주는 사람이 가장 좋은 법이니까. 남아도는 돈 좀 쥐어주고 이런 대작에 등장해서 역사에 길이 남았으니 가성비 최고다.


2. Rogier van der Weyden <그리스도의 애도>

Rogier van der Weyden <The Lamentation of Christ>, Mauritshuis 미술관에서 촬영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Mauritshuis 미술관에 있는 작품이다. 이 미술관에는 그 유명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소장되어 있어 다른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고 있는 측면이 있어 안타깝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에 그려진 보물같은 미술 작품들이 수백점이나 있는데 말이다. 다행히 <그리스도의 애도>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와 같은 방에 있지 않고 옆방에 있다. 전교1등이랑 같은 반이어서 늘 실력이 폄하되는 억울함은 없는 셈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장면을 묘사했다. 벨기에 안트워프 성모마리아 성당에 있는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리심>과 같은 화려하고 역동적인 느낌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훨씬 차분하고 실제 등장인물들의 애도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축 늘어진 예수님 옆구리(또는 갈비뼈)에 핏자국이 흥건하다. 성경(요한복음 19:34)에 보면 로마 군인 하나가 창으로 예수님 옆구리를 푹 찔렀다고 쓰여 있던데 그걸 표현했나 보다. 루벤스의 예수님은 근육질 몸짱이었는데 오히려 이 그림에선 고행을 거친 비쩍 마르고 왜소한 예수님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보통 푸른 옷을 입고 등장하시는 성모 마리아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단장(斷腸)의 아픔을 속으로 삭이며 기도하고 있는 듯하고, 성모 마리아의 어깨를 잡고 진정하시라고 토닥이는 붉은 옷의 사도 요한도 보인다. 예수님을 붙잡고 있는 사람은 아리마대(Arimathaea)의 요셉일테고, 하얀천 끝을 붙잡고 있는 사람은 니고데모일 것이다. 성경 속의 장면을 최대한 슬픈 모습으로 상상해서 그린 역작이다.


이 그림에도 후원자 얼굴이 등장한다. 그림 옆에 붙어 있는 설명을 읽어보니 오른쪽에 성직자 옷을 갖춰 입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람이 화가의 후원자였던 주교라고 한다(The kneeling bishop in his ceremonial robes is the odd man out in the company. He is the man who commissioned this alterpiece). 종교의 힘이 무엇보다 강력했던 시기였으니 아마도 주교가 돈 좀 지원해주고 자기 얼굴 넣어달라고 부탁했으면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3. Jan van Eyck의 <헨트 제단화>

Jan van Eyck <Ghent Alterpiece>, Ghent St. Bavo Cathedral에서 촬영

요즘 생업에 종사하느라 공부를 게을리 하는 바람에 이 작품에 대해 아는 건 과거 포스팅<생초보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54>에 머물러 있다. 어쩔 수 없이 지난 포스팅 내용을 '셀프표절'한다.


이 작품은 '죽기 전에 반드시 봐야할 명화'류의 책에 항상 언급될 정도로 제대화의 끝판왕 격인 작품이다. 일명 '어린 양에 대한 경배(The Adoration of the Mystic Lamb)'이라고도 불린다. 유화의 발명자로 알려져 있는(논란 있음) 얀 반 에이크와 그의 형이 공동작업한 결과물이다. 벨기에 헨트에 있는 성 바보 성당(St. Bavo's Cathedral)에 소장되어 있다.


책으로만 볼 때는 몰랐는데 실제로 가보니 사이즈가 생각보다 컸다(5.2m*3.75m). 전면이 총 12개 패널로 구성되어 있으니 패널을 접었을 때까지 감안하면 총 24개의 그림이 있는 셈이다. 전면 상단 가운데 인물은 교회 유년부 어린이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다. 가운데 빨간옷 입은 할아버지는 하나님이지 뭐. 그 옆에는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이 있고, 그 옆으로는 천사들, 그리고 맨 끝에는 벌거벗은 남녀가 보인다. 이들은 아담과 이브일 것이다. 하단 중앙엔 제단 위에서 양 한마리가 피를 흘리고 있다. 하나님 근처에서 누군가가 피를 흘리고 있다면 누구? 하나님이 누군가를 피가 나도록 폭행했을리는 없을테니까. 예수님이겠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피를 흘리시는 예수님 맞다. 이 그림 역시 실제로 보면 아우라에 압도된다. 책에서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신앙적 해석, 색채, 사이즈, 미술사적 의의 등등 모두 최고였다. 입장료 12유로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p.237, 헨트 제대화 패널 뒷면

제단화는 평소에는 양쪽 패널이 닫혀 있다가 예배나 중요한 행사 때만 펼쳤다고 한다. 일반 신도들은 평소엔 닫혀 있는 상태를 주로 보았을 것이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에 나오는 뒷면 그림을 보면, 맨 상단에는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했던 예언자들이 있고, 중단에는 수태고지 장면이 그려져 있다. 특이한 점은 원래 배경은 약 2천년 전 중동지방인데 그림에선 15세기 플랑드르 지방으로 그렸다. 아마 화가는 자기가 사는 동네가 수태고지 순간이 일어나는 성스러운 곳이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이렇게 훌륭한 그림에 돈 몇 푼 내고 '꼽사리' 낀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당시 주문자 부부였다. 좌측 하단에는 그림의 주문자이자 당시 헨트 시장인 아저씨가, 우측 하단에는 그의 부인이 경배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 부부도 후원하는 대신 수백년째 미술사 레전드 그림 안에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돈 쓸만 하구만.


당시의 후원과정이 자발적이었는지 강압적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후원자들 덕분에 화가들이 생계걱정 없이 작품에 몰두할 수 있었다. 화가들은 대작을 남겨서 좋고, '쩐주'들은 돈을 낸 자신의 얼굴을 역사에 길이길이 남길 수 있어서 좋고, 후대의 관람자들은 겨우 피자스쿨 라지 사이즈 한판 가격에 걸작을 감상할 수 있으니 좋다. 그야말로 역대급 win-wi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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