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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83

소박한 결혼식을 지향하며.

by 일상예찬

최근 친구 자녀 결혼식 두 군데에 다녀왔다. 한 집은 가족들이 다니는 교회에서 조촐하게 치렀고 다른 집은 서울에서 명성과 가격으로 탑3안에 드는 5성급 호텔에서 했다. 교회 결혼식은 주차가 좀 불편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과정이 편안했다. 식장 꾸밈도 소박했고 식사는 교회 식당에서 케이터링한 깔끔한 한식을 먹었다. 반면 후자는 일단 밥값부터 매우 부담스러웠다(대체 축의금을 얼마를 해야 하는 거야..). 그 호텔은 약 20년 전 직장동료 결혼할 때 다녀온 후 두번째였는데 여전히 호화롭고 화려했다.


결혼이라는 게 시공간을 초월한 인륜지대사이므로 유명 작품들 중에도 결혼식(또는 피로연)을 묘사한 것들이 여럿 있다. 위에 언급한 두 건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와서 결혼식과 관련된 몇몇 작품들이 떠올라 소개하고자 한다. 세 작품 중 둘은 이미(미술관 도전기-3, -80) 포스팅 했던 그림이긴 하다. 이미 써먹었던 작품을 재활용하는 게 성의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글의 포인트가 달라졌으니 안면몰수하고 그림들을 재소환한다.


1. 피터 브뢰헐 <농부의 결혼식, 1568>

IMG_20181117_120212.jpg Pieter Bruegel the Elder <Peasant Wedding>, 빈 미술사 박물관에서 촬영

소박한 교회 결혼식에 갔을 때 떠올랐던 그림이다. 약 450년 전 플랑드르 지방 평범한 가정의 결혼식 장면을 묘사했다. 녹색 휘장 앞에 신부로 추정되는 여인이 앉아 있다. 일꾼들은 열심히 음식을 나르거나 술을 따르고 있고 하객들은 열심히 음식을 먹고 있다. 축가연주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출입문 밖에는 식장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 우리나라 결혼식처럼 부페식당에 빈 자리가 없어 하객들이 식권 한장씩 들고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것 같다. 지금 우리는 결혼식 따로, 피로연 따로 하지만 당시엔 같이 진행했나 보다.


공간 자체가 푸근하다. 인간적이고 서민적이다. 마치 예전 프로그램 <전원일기>에 나오는 마을회관 같다.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이 노마아빠, 응삼이 아저씨, 종기엄마, 쌍봉댁으로 보인다.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이 부담없이 다 모여서 왁자지껄 떠들며 기쁜 마음으로 신랑신부를 축하해 주는 듯한 모습이다. 개인의 결혼식이면서 동시에 모두가 즐기는 동네잔치다. 이런 결혼식은 축의금도 부담스럽지 않을 거 같다.


2. 파울로 베로네세 <가나안의 혼인잔치, 1563>

20210815_094341.jpg Paolo Veronese <The Wedding at Cana>, 루브르 박물관에서 촬영

결혼식 장소가 확연히 다르다. 피터 브뢰헐 <농부의 결혼식> 장소가 평범한 동네 교회나 마을회관 같다면, 여기 결혼식장은 5성급 호텔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갔던 갈릴리 가나안 동네는 분명 이스라엘인데 이곳은 베네치아 갑부가 사는 집 느낌이다. 실제 상업과 무역으로 잘나가던 16세기 베네치아에서 가장 화려한 곳이 아니었을까.


참석자들이 전부 귀족들 같다. 후줄근하게 입은 사람이 한명도 없다. 하나같이 이탈리아산 명품(?)으로 휘감고 있다. 작품 제목은 요한복음에서 따왔으나 내용은 사실상 16세기 이 동네 갑부들의 화려한 파티다. 마치 '우리 이렇게 잘나가'라고 자신있게 과시하는 것처럼. 앞선 작품에선 막걸리와 파전이 어울리는 반면, 이 작품 테이블 위엔 초고가 와인에 치즈 플래터가 놓여 있을 것 같다. 이런 피로연은 밥값이 대체 얼마냐.


3. 얀 스틴 <결혼식 피로연, 1667>

JanSTEEN-Thewedding-Fd100243.jpg Jan Steen <Wedding Party>, 멜버른 미술관 홈피 다운로드

얀 스틴은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 장르화가(또는 풍속화가)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해학적으로 많이 그린 화가다. 우리로 치면 조선시대 김홍도나 신윤복 포지션쯤 된다.


작품 속 배경은 당시 중산층 가정이다. 가운데 할아버지는 신부로 보이는 여인(노란옷)에게 같이 춤추자고 손을 내미는 것같고, 왼쪽 아저씨는 벌써 불콰한 얼굴을 하고 댄스 무아지경에 빠지셨다. 오른편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도 보이고, 뒷편에는 모자쓴 남성이 여성을 유혹하고 있다. 결혼식 피로연은 어디나 다 이렇게 먹고 마시고 춤추고 했나 보다. 여기서도 참석자들의 텐션이 상당해 보인다. 얀 스틴은 평소 사회현상을 풍자하고 도덕적으로 경고하는 그림을 많이 그린 사람이다. 그의 전력으로 미루어 보건대, 아마 이 작품에서도 '잔칫날이라고 너무 많이 먹고 마시고 추태부리지는 말라'는 경고를 하고 있는 건 아닐지.


결혼식 관련한 작품들을 보니 16~17세기 유럽에서도 결혼식은 '먹고 마시고 노는' 잔치였나 보다. 지금도 유럽은 결혼식에 가족과 아주 친한 지인들 소수만 초대해서 하루 종일 피로연을 치른다고 하니 그 문화가 수백년째 내려오고 있나 보다. 아주 친한 몇명과 즐기고 노는 거야 당연히 오케이다. 우리처럼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부르고 부담스러운 액수를 내도록 강요하는 문화가 비정상이지.


머지 않은 장래를 생각해 본다. 아이들이 20대 초반이니 당장은 아니겠지만 약 10년 안에 둘 다 결혼을 하겠지. 그러면 우리집은 어떤 결혼식을 준비할 것인가. 맘같아선 가족과 찐친 몇명만 불러서 조촐하게 의식을 치르고 싶다. 스몰웨딩이 아니라면 <농부의 결혼식>처럼 조촐하게 국수 한 그릇 대접하고 넘어가고 싶다(대신 축의금은 안받고). 하지만 결혼 당사자와 상대방 부모의 의견도 들어야 하니 어떤 결론이 나올 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가급적 조용히, 단출하게 치르고 싶다. 30여년 전 우리 세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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