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캐슬 Jul 09. 2024

아플 때 힘이 드는 건 당연한 거예요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우리

 어렸을 적부터 나는 특출나게 잘하는 것이 있다기보단 참을성이 좋았다. 외부의 유혹도 신체적 고통도 어련히 참아냈으며 감정마저도 곧잘 삼켜내곤 했다. 재작년 나는 무언가 참아내고 있었다.     


 교실 내 갑작스러운 돌발 사고와 끊이지 않는 민원에 내 삶과 일을 분리하지 못했고, 일이 삶이 되어갈수록 삶 또한 일로 변질되어가고 있었다. 달에 몇 번씩 달려가던 영화관도, 밤잠을 아껴가며 몰두했던 취미도, 안부를 묻는 지인들의 연락도, 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정적이 내리깔린 방 안에 몸을 누이고 시간이 지나가기를 아주 빠르게 지나가길 간절히 바라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었다. 문득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씹어 삼키는 걸 반복해나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을 무렵 민원처리에 도움을 주던 동기 형이 조심스레 말했다.     


 “현석아. 혹시 정신과 안 가볼래? 자랑은 아니긴 한데 난 힘들면 한 번씩 가고 있거든. 교직원공제회에서 지원해 주는 게 있으니까 생각은 해보는 게 어때?.”     


 솔직히 그때 느낀 감정은 희미한 분노와 약간의 당혹스러움이었다. 굉장히 무례한 말이겠지만 정신과는 정말 심각한 병이 있는 사람만 가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고 나를 그런 환자라고 생각한 형에게 조금은 섭섭하고 화가 났다. 서둘러 형과의 전화를 마무리하고 한동안 조금씩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러고 한 달이나 지났을까? 며칠간 지속되는 찌르는 듯한 흉통으로 병원을 찾았다. 여러 검사를 진행했지만 마땅한 원인을 찾을 수 없으니 의사 선생님께선 스트레스성일 수 있다며 며칠 쉬어보고 또 아프면 다시 내원할 것을 권하셨다. 그때 번뜩 정신과가 떠오르며 한 번 찾아가는 게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찾아본 정신과 상담 비용은 굉장히 비쌌다. 하지만 교직원공제회에서는 민간 정신과 의원과 협약을 맺어 3회기를 무료로 받을 수 있게 지원해 주고 있었다. 저축, 대출, 영화 티켓 할인 등 다양한 혜택을 받고 있긴 했으나 ‘이런 것도 해주나? 신기하네 진짜’ 같은 생각이 들며 혜택의 폭이 넓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절차는 크게 복잡하지 않았다. 지원 가능한 병원을 사이트에서 알아보고 예약하면 끝이었다. 예약한 날이 다가왔고 잔뜩 긴장한 채로 병원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내가 완전히 틀렸음을 알게 됐다.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 조금 지친 기색으로 자리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심각한 병에 걸리지도 않았고 남을 위협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내가 고정관념이라는 난치병에 걸려 있었던 게 아닐까 반성하게 되었다.     


 200문항이 넘는 테스트 용지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며 마킹을 끝내고 한참 뒤, 상담을 시작했다. 그동안 있었던 일 그리고 요즘 내 상태, 마지막으로 정신과에 관해 가지고 있었던 고정관념 등에 관해 반성과 함께 털어놓으니 선생님께선 빙긋 웃으며 말씀하셨다.     


 “현석씨 감기 걸려서 아플 때, 어떻게 하세요?”


 “내과에 가서 처방을 받습니다.”


 “여기도 똑같아요. 마음이 아프면 와서 검사도 하고 상담도 진행하면서 치료하는 거죠. 사소한 실수가 잦고 현석씨가 예전만큼 무언가를 잘 해낼 수 없다고 느끼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거예요. 열이 펄펄 끓을 때 평소처럼 잘할 수가 없잖아요. 아플 때 힘이 드는 건 당연한 거예요.”     


 ‘아플 때 힘이 드는 건 당연한 거다...’     


 이 말이 참 와닿고 힘이 됐다. 그 후로 진행한 몇 회의 상담 속에서 나는 어느 정도 상태가 나아졌고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방법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보니 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내려놓고 받아들이고자 하니 가슴을 찌르는 흉통은 서서히 옅어져 갔다.     


 열병처럼 앓았던 마음의 병은 해가 지나니 다행스럽게도 치유가 되었다. 지금은 예전처럼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며 삶에도 일에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자세로 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들 중에는 성실함과 우직함을 동시에 가진 분들이 정말 많다. 올바른 삶의 자세이면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미덕이지만 일이 잘못되었을 때, 조금은 지나친 자책과 자기 비하를 동반하기도 한다. 혹시나 통제할 수 없는 일에 고통받으며 정신적으로 말라가고 있는 선생님이 계신다면 적극적으로 마음치유센터를 이용해보시라 권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은 상처를 허락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