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는 까봐야 안다.
경찰시험에는 체력시험이 있듯이 임용시험에는 수업 실연이 있다.
말 그대로 간단한 면접과 더불어 수업 실연을 해야 하는데 이게 또 생각보다 쉽지 않다.
교생 실습 당시 수업 실연을 하면 실제 아이들이라도 앞에 있어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대본이나 흐름을 상기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2차 시험 당시 수업 실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본을 외워 마치 마임을 하는 것처럼 3명의 감독관들 앞에서 가상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보여줘야 했다.
감독관님은 3분이 계셨는데 한 분은 짜증이 난 듯한 표정이었고 한분은 웃고 한 분은 무표정했다. 분명 처음부터 표정이 별로 안 좋아 보였는데 면접을 하면 할수록 어째 표정이 더 어두워져 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굉장한 압박감을 받았고 무언가 실수를 했는지 자꾸만 되뇌게 됐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질문에 차근차근 대답해 나가다 수업 실연 시간이 되었다.
내가 기억하기론 아주 엉망진창이었다.
변명을 하자면, 당시 감기에 걸려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던 때였고 열이 38도가 넘어 걸어 다니기도 힘들 정도로 아파 도저히 밖에 돌아다닐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시험 일정을 맞춰야 하니 억지로 몸을 이끌고 나간 것이라 원래 형편없었던 가상 수업이 더더욱 형편없었지 않았나 싶다.
연습 때부터 가장 큰 문제는 말이 빨라지는 것이었는데 그걸 고치려고 파트를 쪼개어 시간을 재어가며 연습했다. 하지만 몸이 기절할 만큼 아프니 합격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아웃사이더 아저씨가 랩을 하듯 속사포 수업을 끝내버리고 자리에 앉자 감독관님께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괜찮아요?"
어지간히도 몸이 안 좋아 보였나 보다. 다 갈라진 목소리로 "예. 괜찮습니다!" 악을 쓰며 대답하니 그때부터 한 두 가지 질문을 하시곤 더 이상 수업에 관하여 묻지 않으셨다. 면접장에는 응시자가 볼 수 있도록 디지털 타이머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질문을 다 마치셨을 때 시간이 나에게 할당된 시간이 3분가량 남아 있었다.
시간을 3분이나 남기고 합격했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기에 속으로 '아 이 시험 글렀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면접관님께서 마지막으로 내게 질문하셨다.
"OOO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없어요?"
"제 부족함을 알게 되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대답을 마지막으로 면접관님께 인사드리고 밖을 나섰다.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에 피로가 몰려왔다. 배웅을 나와준 부모님께 연락하여 거의 실려가듯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드디어 끝났다는 실감이 들었다. 합격을 할 수 있다면 더 좋으련만 큰 기대는 않고 있었다.
대망의 발표날, 역시 패는 뒤집어 까봐야 안다고 2차 수업 실연은 점수가 조금 낮은 정도였지만(감사합니다. 감독관님 최하점을 주셔도 할 말이 없는 지경이었는데) 1차 필기시험 점수가 생각보다 높게 나왔다.(1차 시험은 주관식인데 정답의 범위가 어디까지 인정되는지 몰라 정확하게 채점하기 힘들다.) 덕분에 나는 임용시험을 생각보다 수월하게(?) 합격할 수 있었다.
PS. 임용 1차 시험은 주관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물론 명확한 답이 있지만 어디까지 답으로 인정되는 지 발표하지 않기 때문에 엄격하게 점수를 매기면 생각보다 점수가 잘 나올 때가 있습니다.
임용 2차 시험은 한 교실에 사람들을 모아두고 번호표 뽑기를 하는데 늦은 번호를 뽑은 사람은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하루종일 기다리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가령 9시에 시작을 한다 했을 때 1번을 뽑은 사람은 9시에 시작하자마자 면접을 보고 집에 가면 됐습니다. 저는 몸이 좋지 않은데 뒷번호를 골라 더더욱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