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디? 나는 누구?

어촌 생활 시작!

by 캐슬

교육청은 임용 시험 발표 후 등수에 따라 응시생들을 차례차례 발령시킨다.

점수가 아주 높은 소수는 도시 지역으로 발령을 받고 그 뒤는 시험을 잘 치든 못 치든 크게 상관이 없다. 모조리 시골로 발령이 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100등을 하든 200등을 하든 시골로 가는 건 매한가지기 때문에 점수가 높니 낮니로 싸울 필요가 없다. 아 물론! 점수가 더 낮아 등수가 뒤로 쭉 밀려버리면 3월 발령 자체가 안 날 수는 있다.


필자는 여행을 아니 밖에 나가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사는 도시를 벗어나 본 적이 거의 없다. 2월 발표 당시 어촌 지역에 발령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집에서 멀리 벗어나는 게 싫었을뿐더러 그곳은 내가 가본 적도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한국지리 공부를 하며 이름 정도만 들어본 곳이었다.


발령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발품을 팔아 어촌의 자취방을 구해 주셨고 이사를 위해 짐을 챙겨 어촌으로 내려갔다. 그곳에 도착했을 땐 정말... 솔직하게 조금 아니 많이 낯설었다.


엄연히 말하면 나는 서울 경기 혹은 광역시 사람에 비하면 촌사람이 맞다. 그것을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내가 발령받은 곳은 인구 3만 명 규모의 군이었고 지도를 펼쳐봤을 때 '이 넓은 땅에 3만 명밖에 살지 않는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구 밀집도가 낮은 지역이었다.


사람이 사는 곳이 정말 한정적이었는데 과장 조금 보태서 도보 1시간 거리면 사람이 사는 생활권 끝에서 반대쪽 사람이 사는 끝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반지름 30분 정도의 좁은 생활권에서 사람들은 모여 살았고 나머지 모든 땅이 농지 혹은 도로였다. 시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단 한 블록' 걸어서 3분 정도의 직선 길이 다였고 8시가 되면 대부분 불이 꺼져 밥 먹을 곳이 없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도착한 방은 깨끗해 마음에 들긴 했지만 많이 비쌌다. 달에 월세만 40을 요구했는데 월급이 당시 2백만 원이 채 되지 않았으니 굉장히 부담됐다. 게다가 당시에는 차도 없어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시외버스를 이용하는 것밖에 없었는데 직행으로 가는 것이 없을뿐더러 하루에 3대 정도밖에 운행하지 않았다.


당장 내일부터 직장인이 되어 출근하는 것도 두렵고 먼 땅에 또 혼나 남을 생각을 하니 막막해 점심을 먹으며 어머니께 징징댔다.


"엄마 내 진짜 못 있겠다. 여기서 혼자 뭐해여. 나도 집 갈래여."


어머니께서는 다 큰 게 그런 말 하지 말라며 핀잔을 주시고는 회 하나는 실컷 먹을 수 있어서 좋겠다며 다독여(?) 주셨다. 식사를 마치고 부모님께서는 집으로 떠나셨고 나는 집주인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강아지 마냥 떠나가는 차를 하염없이 멍하니 바라보며 한참을 서있었다.


대충 방안을 정리하고 나니 깜깜한 밤이 되었고 직면한 여러 가지 암울한 상황에도 꺾이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며 연신 자신을 다독였다. 임시 출근 전날 밤은 정말 길고도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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