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르바이트 경력직입니다.

by 곰돌

사회복지사로 되어가기 전 공백이 있다. 나름 알차게 보내려고 일일아르바이트를 많이 하였다. 편한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았다. 여자라고 덜힘든 아르바이트만 한것은 아니다.

Cj물류센터에 고양이사료 패킹 및 진열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집합하는데 조금 허름한 상가 안에서 기다렸다가 호명을 부르면 모여 봉고차를 타고 갔다.

봉고차를 탄다고 말하고 나니 꺼림직한 이야기지만 이미 그 곳에는 여러번 많이 하던 물류아르바이트생이 꽤 많았다.




사연은 잘 모르겠지만 물류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인생이 끝난 것도 아니라 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니지만 엄마 아빠는 내가 물류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말하며 아르바이트가는 거에 싫어했다. 나름 어른인데 용돈달라고 말하기엔 어색한 일이었기때문에 고된일도 모처럼 해보고 싶었다.

일은 힘들진 않았지만 가끔 발이 아팠다. 파스로 온몸을 휘감으며 그 다음날에도 갔고 그 다음날까지는 갔다.

그때 이후로 조금씩 아픔을 견디는 방법을 배웠다. 무거운 짐도 조금은 들 수 있고 일터에서 무거운 후원물품을 나를때 나름 어필을 하며 열심히 업무에 임한다. 그렇게 한여름을 불태웠던 날이 있었다.




두번째 기억나는 아르바이트는 " 백화점 고객만족실"이었다. 어머님들이 사은품으로 장바구니를 받으러 가는 데 질서유지를 하며 업무가 빠르게 처리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었다.

일은 단순하지만 민원창고로 가득했다. 조금만 줄이 밀리면 항의가 북받혀 오른다. 언제까지 기달려야 하냐며 조끼를 입은 우리(아르바이트생)에게 계속 호소한다. 그때 마침 불합리한 행동을 시켜서 아르바이트 담당 직원에게 재빨리 말을 하니 우리(아르바이트생)의 불편을 해결해주었다. 무사히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

으로 향하는 길에 폭우가 쏟아졌다. 집으로 돌아간 길이 그렇게나 많이 마음이 무너졌다. 돈버는게 왜이렇게 어려운 세상일까 라며 비를 흠뻑맞았다. 우산은 있었지만 기분은 너무 넉다운 되었기 때문이다.






세번째 아르바이트는 케이터링 호텔아르바이트, 네번째 아르바이트는 시험감독 아르바이트 및 시험 감독 위원 일일아르바이트, 행사지원인력등 계속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보니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뭐든 겪어보고 하찮은 일이라할지라도 하찮게 생각하지말고 눈물도 흘려봐야 닦을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에

좋은 경험을 했다. 지금은 일터의 직장인과 잠시 휴식하는 아줌니로 변했지만 지금도 공백기간이 생기면

아르바이트 입사지원을 열심히 한다. 아르바이트 지원이 입사지원보다 더 떨린다. 아무나 투입시키지 않은

고급인력제도이기에 오늘도 난 열심히 살고 배우려고 노력한다.


눈물도 열심히 머금고 닦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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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 없이 한큐로 정규직가는길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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