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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저널 May 22. 2022

당신은 삶의 선의인가? 악의인가?

나만의 해방일기 22일 차

성악설을 믿는가? 성선설을 믿는가?


사람의 본성을 선과 악으로 나눈다.

어린아이가 보는 만화에서도 머릿속에 하얀 천사와 유혹을 하는 검은 악마가 대립하며 갈등한다.




성선설을 믿는 사람과 성악설을 믿는 사람이 있다.

맹자는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본성을 선으로 보았다. 인, 의, 예, 지 4가지의 본성을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으로 정의하였다.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과 잘못한 일에 부끄러워하는 수오지심과, 양보하는 사양지심, 옳고 그름을 아는 시비지심을 본성으로 본 것이다.




순자는 인간의 태어난 본성이 악하다는 성악설을 주장하였다. 사회적 관계를 배우지 않으면 욕망이 지나쳐 악을 수행하기에 거스름이 없다. 제재나 가르침으로 본성을 다듬어야 한다고 했다.




고자는 인간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성무선악설이라고 말했다. 마치 인간의 성품은 물과 같아서 바닥이 기우는 데로 흐른다. 선한 쪽으로 이끌면 선해지고 악한 쪽으로 이끌면 악해진다. 식욕이나 성욕 등의 기본적 욕구를 가지고 태어난 본성이라고 했다.




성선설을 믿느냐 성악설을 믿느냐는 질문에 나는 둘 다 우리 마음에 있다고 말한다.

인의예지를 가진 마음도, 욕구와 욕망의 마음도 모두 내 마음에 존재한다. 착한 사람, 악한 사람은 어린 유아기식 표현으로 느껴진다.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은 착한 사람이고 주인공을 괴롭히는 사람은 악당으로 나쁜 사람으로 생각한다. 살다 보면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은 경우에 따라 달라진다. 내 편이면 좋은 사람이고 상대편이면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선과 완벽한 악을 가진 사람이 존재할까? 

이유 없는 악을 행하는 이는 무섭고 두렵다. 행동의 악랄함도 무섭지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두려운 존재가 된다. 그럼에도 영화 속 빌런들이 인기 있는 이유는 그가 세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거침없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막혀있는 내면의 악을 대신 표출해 주기에 구속된 본성의 상대적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은 착함과 악함을 모두 가지지만 의지와 생각으로 내 상황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선택 상황을 놓고 나에게 최선의 행동을 하는 것이 상대에게는 악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렇기에 행동의 기준은 사회적 규범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모두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법률적 규범은 허락된 행동의 최대 바운드리가 될 수 있다.



법에 선과 악이 존재하는가?



재판은 착한 사람을 보호하고 나쁜 사람을 벌주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왜 억울한 사람이 나타나는 걸까? 재판장에서는 선과 악을 판결하는 곳이 아니다. 정해놓은 사회적 규칙을 잘 지켰느냐 어겼느냐에 관한 문제이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며 민법을 공부하고 있다.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서 생소한 법률용어들을 하나씩 배우는 중이다. 아주 조금 용어들을 해석하면서 나름의 해석을 정의하고 있다.



민법에서 선과 악의 표현이 나오지만 우리가 아는 그 착함과 악함을 의도한 윤리적 정의가 아니다. 선의와 악의라는 표현은 우라가 아는 그 선과 악이 아니다.



선의는 관련한 사정을 알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반대로 악의알고 있었을 경우를 말한다.


법은

모르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을 선의와 악의로 표현한다.

내 나름대로 해석하면 모르면 바보이고 알고 있으면 영악이다.

바보와 영악한 것만으로 법적 처벌하지는 않는다.



귀책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고의와 과실이라 말한다.

고의는 자신이 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만들 수 있음을 알고도 행위하는 것을 말한다.

과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던 사실임에도 본인의 부주의로 인식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알지 못했고 책임이 없다면 선의, 무과실 법적 보호를 받는다.

단순 악의는 처벌 대상이 아니지만 고의적 악의일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이 부과된다.




아는 것이 힘이 될 수도 있고
모르는 것이 약이 될 수도 있다.

법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고 있다가 새로 공부한 내용들이 숨 막히게 어려울 때가 있다. 

이런 내용들을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나이 먹고서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현타가 오기도 한다.


모르면 편안한 세상이지만 바보인 채로 선의의 입장으로 살아갔다. 선의는 내가 무과실이라는 입증을 하지 않으면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 법의 보호받지도 보상받지도 못한다. 말 그대로 바보로 희생양이 되어 영악한 자들의 미끼가 된다.


재테크나 부자가 되기 위한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내 삶의 주체로써 고의적인 악의적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 나 자신, 내 가족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다. 막연히 낙관적이고 게으르게 행동하다가는 경제적 위기나 변수들에 당황하며 손해배상적 제약이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힘들고 머리가 아프고 지치더라도 힘을 내서 가보자.

반드시 좋은 의도의 행동들은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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