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인드저널 Jul 09. 2022

뇌종양 선고 이후 마음다짐 자세

주말 응급실에 실려온 후 

내게 벌어진 모든 일들이 갑작스럽다.

건강에 자신하던 내가 순간 정신을 잃었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을 만큼 비현실적이다.



엄청난 정신적 쇼크가 왔다.

집 안 구조와 가족들의 현재 상황들을

한순간 잠깐 기억상실이 왔다.

여기가 어디인지 직장에 출근한 첫째 아이를 계속 찾았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득한 먼 옛일같이 기억이 어렴풋하고 

안갯속에 있는 듯 뿌옇다.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뇌의 종양을 키웠을 수도 있다.



엊그제 일인데

기억이 조각조각 파편으로 남아

순간순간 점핑한 듯 기억이 이어지지 않는다.

신기한 경험도 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침대에서 일어났는데

시계를 보니 오후 5시였다.

몸을 힘겹게 일으켜 세워 겨우 세면대로 가 세수를 하고 나왔다.

너무 솜처럼 무거워 다리에 힘이 풀리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머리를 방바닥에 뉘었다.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나더니

주말 출근했던 큰아이가 들어온다.

눈에 보이는데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큰아이가 말을 거는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어으으으

신음 소리 같은 걸 내고 있었다.



큰아이는 나를 부축하고 정신 차려보라고 한 것 같다.

119를 부르는 동안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마치 몸 안에 내가 갇힌 것 같았다.

생각과 몸이 분리가 되었다.

눈에 비치는 창을 통해 바깥을 바라볼 수 있을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말을 하려 해도 신음 소리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병원에 실려갔다.




돌이켜보면 뇌종양의 전조증상이 있었다.

평생 두통을 달고 살아왔지만

최근엔 그 고통이 극에 달했다.

몇 날 며칠이고 두통이 계속 이어졌다.

약을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던

두통이 새벽에는 더욱 심각해져

숨이 막혀 깨어나곤 했다.



왼쪽 얼굴에 전기가 오듯 

정확히 반쪽만 저릿저릿했다.

눈 밑이 파르르 떨리는 것은

마그네슘 부족이라 생각하고

약국에서 약을 사다 먹었지만

증상이 완화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인터넷에 내 증상을 검색해 보니

구안와사와 비슷했다.

한의원을 찾아가 침을 맞아볼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마음먹은 것처럼 바로 실행하지 못했다.



팔다리가 심하게 저렸다.

눌린 적도 없는데 피가 안 통하는 듯

손끝 마디마디가 쎄하게 져려왔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다.

미련하게 병을 키운다.

몸 스스로가 병의 증상을 밖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무시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건강에 자만하던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는 게 다 고통의 연속이지

뭐 별 유난스럽지도 않다.

힘들다고 하면 할수록 더 비참해지는 내가 싫은 것이다.

묵묵히 참아낸다.

참을수록 내성이 생긴다.

작은 생채기쯤은 거들떠도 안 보고

그냥 쓱 물로 한번 씻어내는 게 전부다.



난 내 몸에 얼마나 소홀했나.

나 자신의 감정을 얼마나 무시했나.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이를

무의식 저 밑바닥 속에 갇아두고

무덤덤히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되었던가.



그 속앓이들이 켜켜이 쌓여

몸에 실질적으로 종양 덩어리를 만든다.

난 얼마나 운이 좋은가.

악성이 아니라 단순 종양이라니.

단순 자가증식일 뿐 주변 세포를 잡아먹는 

포식 종양이 아니라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가.



내 종양은 착하다.

암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다.





양성 뇌종양이라도 조기 발견은 쉽지 않다.

난 치료 가능한 뇌종양이란다.

수술로 제거하면 된다.

의사의 너무나 가볍게 말한 치료술을 듣고

수술 후 두 달 정도 요양하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다음 주에 수술 예약을 하고 퇴원을 하였다.

어제 학원에 가서 일들을 모두 정리했다.

동료 선생님들이 와서 한마디씩 놀람과 

걱정 어린 눈빛을 나눠줬다.

가르치는 학부모님들의 쾌유 문자들을 받았다.

블로그 댓글로 격려해 주는 이웃님들과

주변 아는 지인들이 전화를 걸어줬다.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다.

결코 혼자 살아가고 있지 않음을 

느끼게 해주어 감사하다.



병원에서는 이왕 수술을 결정했다면 빨리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는데 퇴원하고 나와 보니 

주변을 정리하는데 일주일 시간이 너무 짧다.

성공률이 좋은 수술이라지만

머리를 여는 수술이기에 두렵고 무섭다.

수술 이후의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나도 장담할 수가 없다.



밀린 집 안 청소를 하려 했는데

도무지 손에 힘이 들어가지가 않는다.

내게 큰 힘이 되어주는 지인들이

수술 전에 만나자고 한다.

수술 후 험한 몰골로 만나는 것보다 

낫겠다 싶어 그러자고 했다.

부모님께는 도저히 말씀드릴 수가 없다.

미리 안다고 내 증상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걱정만 끼쳐드려 나이도 연로하신데

수술 때까지 조바심으로 불편하게 만들 수는 없다.

성공적으로 수술이 끝난 후 만나 봬도 늦지 않을 듯하다.



아이들에게는

혹시나 모를 경우를 이야기해뒀다.

만에 하나 뇌 수술이니까 잘못되어 

뇌사 판정 같은 걸 받는다면

절대 생명 연장 시술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미 뇌사는 사망선고이니 

그게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인공호흡기 같은 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못할 짓이다.



일주일 남은 나의 양성 뇌수막종 수술에 대비에 대해

마음가짐을 단단히 준비하려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드라마틱한 삶의 각본엔 뇌종양 정도야 흔한 일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