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인생을 살다
외로이 세상을 등진
'J'를 기리며
엄마,
이렇게 엄마를 부르니 또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벌써 몇 번이나 편지지를 갈았는데... 하지만 왜 눈물이 나는 걸까요. 그저 누구도 듣지 못할 만큼 낮은 소리로 엄마를 불렀을 뿐인데요. 하기야 목 놓아 부르짖은 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것은 역시 마찬가지였을 테지요. 내 곁에 아무도 없거든요.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요. 지금 내게는 날마다 거침없이 다가오는 시간을 함께 할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요. 누구에게도 잘 가라고 작별 인사를 했던 기억이 없는데, 혹시 했다고 해도 언젠가 다시 만날 거란 기약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겠죠. 아쉬움의 기억조차 남겨 두지 않고 모두들 어디론가 떠나가 버리고 말았어요. 나만 이곳에 뎅그러니 떨궈 놓고.
사람들은 말하곤 하지요. 슬픔은 나누면 절반으로 줄어드는 거라고.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걸 엄마는 아시나요. 그 누구와 함께 한들 조금이라고 줄어들기는커녕 슬프게 했던 본래의 그것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보여줘야 하고 나눠야 할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운 일도 있는걸요.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는 절망, 그것이 내 앞에 버티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내가 혼자 일 수 있는 건 다행이에요. 그것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거든요.
엄마가 이 편지를 받아 읽어 불 즈음엔 저는 아주 먼 곳으로 가버린 후 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너무 슬퍼하시지 않으시면 좋겠어요. 제게 피와 살을 나눠 지금까지 자식으로 저를 키워내신 엄마가 그럴 수 있는 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런걸 알고도 제가 엄마에게 내 삶의 마지막을 담은 이리 긴 사연을 남기는 건 잘 견뎌내고 싶어서예요. 이 구차하고 서럽기만 한 내 이야기를 한 번은, 단 한 사람에게라도 말해야 할 것 같은데 들어줄만한 사람이 이 넓고도 넓은 세상에 아무도 없어요. 엄마 밖에요. 엄마가 나와 마주 앉아 있는 듯이 이렇게 낮은 소리로 이야기하는 동안 소리 없이 흐르는 시간은 예정된 때에 살그머니 죽음을 가져다 놓겠죠.
오늘 정서방이 다녀갔어요. 우리 이혼했어요 엄마. 벌써 2년째 돼 가나 봐요. 아이도 없이 적적해서 레슨 다시 시작했다고 했었죠? 그때 사실은 이혼한 직후였어요. 하지만 엄마, 엄마는 정서방에게 서운한 생각은 조금도 갖지 마세요. 아무 이유 없이 다만 나를 사랑했고 결혼한 것 때문에 그이가 너무 힘들었어요. 내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 그리고 그에게 남겨진 불행조차도 모두 나 때문이에요. 그이는 이혼하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었지만 끝내 참아 내지 못했던 건 오히려 나였어요. 그이는 입양이라도 하자고 했죠. 요즘사람들 자기 자식이 없는 것도 아닌데 가슴으로 낳는 자식 많이들 들인다면서, 키우면 내 자식 되는 거라고요. 마치 그래봤던 사람처럼요. 잘 모르겠어요. 그이의 깊숙한 진실이 어떤 거였는지는. 아무튼 이미 큰 아이를 덥석 내 아이로 받아들이는 것이 내키지 않으면 그것도 같은 거긴 하지만 어디서 갓 태어난 아이를 수소문해서 내 품에 안겨 주겠다고 도 하던 그이의 마음이 얼마나 서럽도록 좋았는지요. 입양이고 뭐고 그저 도망치려던 나를 잡은 손길에 끝내 힘을 놓지 않아 결국 내가 뿌리칠 수 있도록 기회를 남겨 준 그이에게 나는 너무 고맙기만 한 걸요. 시어머니 말마따나 나 아니었으면 별다른 시름없이 잘 살았을 당신의 아들을 어이없는 불행으로 끌어들인 나로부터 얼마든지 놓여날 수 있는 지금도 그는 가끔 와요. 와서는 자기 얘기를 해요. 아주 무덤덤하게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가 그중에 특히 어머니가 마땅한 여자를 찾아 동분서주한다거나 그래서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소개팅도 했다는 말도 했어요. 그런 말을 할 때도 그는 그저 그랬어요. 나에게 미안해하는 건 아니고 더더구나 떠벌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렇게 말했죠. 나는 그렇게 솔직한 게, 모든 걸 열어 보여주는 그에게 또 고마웠어요. 그렇지 않다면 이미 부부로서 연이 끝나버린 우리의 만남은 부질없는 일이겠거니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이제 와서 우리가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기도 하고요. 아니, 그래서는 아닐 거예요, 정서방의 진심은. 자기랑 상관없는 남의 얘기를 하듯 하면 나와도 별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느껴져요. 그이의 솔직함엔 그런 고마운 계산을 담고 있다는 걸 알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든 내가 더 깊은 불행으로 밀려나지 않게 하려는 나름대로의 배려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리고 자기 방에, 예전에 나와 함께 하던 그 방그 집에 휑하니 혼자 있을 때면 내가 보고 싶어 진다거나 우리 사이에 아이가 없었던 것보다 내가 아이를 안아 보고 싶어 하던 모습이 사실은 자기를 더 아프게 했었노라는 말도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