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마침내 체념을 하거나 순응을 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하죠. 하지만 그건 다 마친가지 에요.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걸요. 선택의 여지가 완전히 봉쇄된 상황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에 불과해요. 그렇다고 그 모든 과정이 지났다고 해서 완전히 극복이 됐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어느 순간 그 모든 것들이, 믿을 수 없는 것, 분노가 치미는 것, 입에서 저주가 쏟아지는 것,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이 한꺼번에 몰아쳐요. 모든 날 모든 순간 살고 싶어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시장 통의 콘크리트 담장 밑에 노란 민들레가 비를 맞고 있던 날엔 더욱 그랬어요. 우울하고 음침한 세상에 민들레가 피어 있던 주변의 꼭 그만큼에만 밝은 불이 켜져 있는 것 같았어요. 어느 날 창문 밖 건너편 보도에 한 아이는 업고 기껏해야 서너 살 밖에 안 돼 보이는 큰 아이는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손에 기저귀가방을 들고 낑낑거리며 지나가는 어떤 여자를 우연히 보게 되었을 때, 또는 아무 이유도 없이 문득 그럴 때도 있어요.
무엇보다 점점 더해지는 통증 때문에 안 아프고 싶어요. 안 아프고 말짱하면 좋겠어요. 그러면 죽음도 훨씬 더 쉬울 거 같아요.
널빤지에 예리한 침을 촘촘히 박아 그걸로 내 가슴을 싸아하게 쓸고 지나가는 것 같다가 기침이 나올 땐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힘들고 내 목의 묵직한 공기가 통과하는 그곳의 얼마 큼이 딱 도려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아마도 의사 말대로 뇌까지 전이된 것이 분명한지 눈이 침침해지고 구토도 나고 머리가 내던져진 사발처럼 산산이 부서져 버린 듯 이제는 내방의 좁은 공간에서조차 자유롭게 걸을 수도 없게 되었어요. 그렇다고 천장만 바라보며 마냥 누워있으면 더 고통스러우니 집히는 대로 진통제를 집어삼킨 후에야 조금 정신이 맑아지면 이렇게 쓰는 거예요.
아무튼 지금쯤 되고 보니 모든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살았던 삶 모두가 그래요. 기쁘게는 아니더라도 이미 코앞에 와있는 순간을 좀 더 의연히 맞이하기 위해 아마도 세상과 정을 떼는 거겠죠. 살아 본 들 또 뭐 그리 다를 게 있을까 싶고요, 몇 년 세월이 지나고 난 후에도 별 수 없을 거 같고요. 그러니 이쯤에서 남은 세월 거두는 것도 괜찮을 듯싶어지기도 해요.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남기고 가야 할 세상과 회해하는 거란 생각이 들어요.
다만 한 가지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쩌면 내 삶의 흔적이 이리도 말끔 할 수 있을까 싶어요. 그래도 이만큼 살았던 내 존재의 증명이 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거요. 그게 아쉬워요.
처음에, 내게 남겨진 시간이 아주 짧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된 그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그 아이였어요. 내가 미련도 없이 뿌리친 그 아이요. 그래서 벌을 받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이 들면 가슴이 아려요. 그래서 억울했고요. 꼭 그래서 벌을 받아야 하는 거라면 나처럼 폐암이든 위암이든 또 무슨 일로라도 일찍 죽어야 할 사람이 얼마나 많을 텐데 유독 나에게만 대가를 치르라고 하는 건지. 거의 모든 걸 체념하게 된 다음에도 그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죽음은 무엇 때문에 오는 것도 아니고 해명하거나 뭔가를 밝혀내야 할 것도 아니고 우리가 생명을 얻었을 때처럼 죽음도 그렇죠. 무르익은 민들레 꽃씨처럼요. 바람이 오면 그 바람에 실려 가듯 그렇게 가는 거죠.
그러고 보면 죽음을 앞두고 관대해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죽을 때가 되면 변한다는 말, 그건 소유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 거예요. 마치 나그네처럼요. 너무 욕심내면 무거워지니까 적당히 남기고 나눠야 하는, 그래서 너그러워지는 거랑 똑같이, 이제 다시 올 기약도 없는 여행을 앞두고 자신조차 내려놓은 후에야 용서할 것도 용서를 받아야 할 것도 뭐가 그리 대수일까요.
엄마,
지난밤에 그이가 다녀갔어요. 전화기의 전원을 모두 껐으니 두터운 어둠의 공간 너머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문을 두들겨 댔지만 나는 그저 듣고만 있었어요. 어렵게라도 움직여 그를 들이고 내가 떠나 버린 후에 이 적막한 곳에 남겨질 내 몸을 부탁해 볼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러지 않았어요. 나중에 나를 원망하겠죠. 나쁜 사람이라고요. 그래도 그 사람에게 내 몰골을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이상하죠. 괜히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요. 그럴만한 별 잘못도 없이 다만 남들과 같지 않은 것, 나만 너무 특별하게 불행한 것이 수치스러워요. 가엾어하며 나를 바라보는 그를 보고 싶지 않았어요.
그가 돌아간 후에 또 한바탕 통증에 시달려야 했어요. 이제는 정말로 아프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없어요. 도저히 말로 할 수 없는 통증이 더 이상 그 무엇으로도 가라앉지 않아요. 진통제를 한 움큼씩 두 번을 먹었는데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웬일인지 오늘 아침엔 아주 말끔하네요. 정신도 맑아 기분도 어느 때보다 좋고요. 폭풍이 지나가 서일 까요, 아니면 아니면 남아있기 때문일까요. 여하튼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이 말짱함의 순간을 빌어 엄마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 할 거 같아요. 더 늦어 그나마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