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부치지 않을 편지 (5)
내 말짱하던 폐가 언제부터 탈이 나기 시작했을까요. 무엇 때문에요. 어쩌면 솜털 같은 바람을 입은 민들레 꽃씨가 어느 곳에서건 바람을 벗고 자리를 잡아 그것의 영토가 되면 뿌리를 내리고 싹이 나고 때가 되어 꽃을 피우 듯 어디선가 날아든 죽음의 씨앗이 잡은 자리가 하필이면 내 폐었던 걸까요.
의사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내 몸을 설명해 주었어요. 내 폐의 삼분의 일쯤을 암세포가 못쓰게 만들었다 고요. 곧 아주 구체적인, 심한 기침이나 백일해 각혈 같은 것은 물론이고 다른 장기에 이미 전이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중세도 동반될 거라고요. 진행 속도도 점점 빨라져서 1년을 장담하기가 어렵다고 했어요. 의사는 수술도 권하지 않았어요. 열었다가 그냥 닫아 버려야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겠죠. 방사선으로 다스리기에도 늦은 것 같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내 몸이 죽기 위해 완벽하게 준비되어 가는 동안 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던 거 에요. 지금껏 삶을 위해 기능을 수행하던 모든 것들이 고요히 반란을 일으키고 마침내 불가역의 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에게 선전포고를 해온 셈이죠. 난 그저 여분의 삶을 살면 그뿐이에요.
난 상식적인 사람인 것이 분명해요. 책이나 영화 그런 것 속에서 어떤 사람이 죽음을 선고받은 후 보여주던 반응들과 거의 같은 수순을 밟고 있는 걸 보면요. 지금은 그것의 최종 단계라고 볼 수 있는 순응의 때를 살고 있는 중이에요. 오랜 갈등과 고통을 겪어 내고도 별 수 없는 걸 알게 된 아주 임박한 시점에서야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처음엔 대개 믿지 않는 걸로 시작해요. 그럴 리가 없다고, 다른 사람이 그런 거면 연민 가득한 표정으로 말할 수 있죠. 참 안 됐다고요. 남의 일로는 안된 건 안된 거고 사실은 사실로서 인정이 되는 일이 정작 내 것이라고, 그것이 내 몫이라고 판결이 나면 무조건 아니라고 해요. 내가 그럴 리가 없다고. 누구든 다 그래요. 나도 그랬고 요. 그렇게 아니라고 해도 뒤집을 수 없는 사실에 이제는 화가 나죠. 서슬이 퍼런 분노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에서 막 치밀어 올라와요. 마치 용암처럼 요. 뭐든 다 녹여버리고 싶어요.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기도 하고 관자놀이의 핏줄은 팽창돼서 금방이라고 시뻘건 피가 솟구쳐 오를 것만 같기도 해요. 왜 나고요. 내가 뭐를 그리 잘못했냐고요. 사막의 모래알처럼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고작 마흔도 채 안된 나에게 왜 이러냐 고요. 하지만 그건 별개예요. 내 죽음과는 요.
최종 진단을 받던 그날 밤에도 여느 때처럼 기침이 나왔어요. 전날에도 기침을 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그 정도였는데 처음으로 가래에 붉스그레 한 것이 섞여 나왔어요. 그것은 마치 의사의 소견에 대한 마침표 같았어요. 그때까지 품고 있던 오진에 대한 기대는 여지없는 물거품이 되었어요. 다른 병원은 가 볼 필요조차 없음을 인정해야 했죠. 아니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믿을 수 없다고 도리질을 쳐도, 차라리 지금 확 죽어버릴까 생각될 만큼 화가 나도 그건 별개예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나에게 들러붙어 있는 죽음은 한순간도 쉬지 않는 진행형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