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오지 않겠다더니 오늘은 그이가 전화를 했어요. 술에 취해서요.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요. 내가 그래주면 좋겠다고요. 그이가 나를 사랑해 주어서 좋았어요. 그이 성품대로 작고 조용한 몸짓과 말씨에도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 주었어요. 나는 운이 좋다고도 생각했죠.그와 함께하는 삶으로 비로소 안식할 수 있으려니 그렇게 생각했는데. 요즘 세상에 한집 걸러 외동이 수두룩하건만 유난히 자손에 집착하는 집안에 3대 독자인 그는 자신의 소망대로 다시 시작할 수 없을 걸 알아요. 매사에 예민하신 어머니의 등쌀을 힘겨워하면서도 결국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안 하고 싶어 하는 아들이었어요. 그래도 나와 다시 시작하고 싶어 하는 건 진심일 거예요. 내가 잠깐이라도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안타까운 그의 진심 때문 일거예요. 나도 그러고 싶어요, 사실은. 그를 붙잡고 싶어요. 그러자고. 어머니가 안된다고 하시면 그냥 우리끼리 살자고.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지 말라고. 무섭다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너덜한 신파 같죠? 그러나 꼴사나운 막장 신파가 때로는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이 되기도 하는지. 신파라도 좋고 누구 말마따나 삼류 막장이라고 해도 상관없고 그거나 저거나 다 마찬가지라고 해도 좋으니 나를 향해 서슴없이 다가오는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거두어 낼 수 만 있다면 그랬을 거예요. 순간순간 삶이 간절해져요.
4년이 넘도록 말없이 기다려준 그이가 결국 불임클리닉 예약을 했다며 함께 가자고 했어요. 그 말을 할 때도 맨날 하던 말인 것처럼 그렇게 말했어요. 그날 그이의 차를 타고 가는데 예전의 그와 자주 갔던 모텔이 눈에 띄더군요. 번드르르하게 치장을 하고요. 유명한 불임클리닉은 한 블록 더 갔고요. 아이를 뗀 작은 의원도 산뜻한 색상으로 바뀐 간판을 걸고 그 근처에 있었어요. 우습죠, 엄마? 때때로 세상 돌아가는 일이 너무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질 때면 두려움을 넘어 차라리 우습기도 하잖아요. 어정쩡하게 웃어버리는 걸로 두려움을 얼버무리고 싶은 심정 바로 그랬어요 그때. 하지만 우리의 경우엔 그리 오래 다니지 않아도 됐어요. 내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이유가 너무나 분명했거든요.
결과를 보러 갔을 때 나 먼저 불러 놓고 여의사가 물었어요. 혹시 인공낙태를 했던 적이 있냐고요, 남편도 그 사실을 아냐고요. 대답을 못하는 나를 외면하며 뒤이어 들어온 그이에게 전문가답게 매우 신뢰감이 들도록 해명해 주더군요. 아내분의 나팔관이 기형이라 정상적으로 아이를 갖기는 불가능하겠네요라고요. 하지만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많기 때문에 조금만 인내하면 아이를 갖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도 했어요. 난 그때서야 알았어요. 아무 생각 없이 내질러 버린 일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는지를요. 대놓고 인정하기는 너무 겁나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왜 그런 사람 많잖아요. 내가 아는 어떤 여자도 혼전에 중절을 두 번이나 했지만 시집 잘 가서 딸 아들 낳고 잘 사니까 그 여자 생각하며 담담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너무 무서웠어요.
그렇게 뻔한 진단을 받아 놓고도 미련은 있었어요. 별다른 불행으로 끌려 들어가고 싶지 않았거든요. 어떻게든 지난날의 오류를 무마하고 싶었어요. 생명으로요. 내 속에 태이는 생명으로요. 단 한번 멋모르고 떼 낸 그 아이가 마지막이라는 걸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나를 엄마로 이 세상에 태어나야 했을 그 아이에게 내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했는지 인정하기가 무서웠어요. 무엇보다 아이를 품어보고 싶었어요. 생명을 품었을 때 신비롭게 변하는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내 몸의 작은 구멍으로 한 생명이 태어날 때 살이 찢기는 고통을 달게 겪어내고 싶었거든요. 나는 엄마가 돼 보고 싶었어요. 엄마, 그랬어요.
그런데 견딜 수가 없었어요. 여전한 내 삶, 믿을 수 없을 만큼 똑같은 모든 것, 좀 다른 것이 생겼다면 이제는 이유를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무작정 아이가 생기기만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뿐. 미련조차도 변함없이 내 가슴속에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거워지기 시작했어요. 시부모님 앞에서 본인 때문이라며 집사람에게 힘들게 하지 마라고 말해 주었던 그이, 괜찮다고 원래 그런 걸 어쩌냐고 자긴 나만 있으면 된다며 여전한 품으로 안아 주던 것도 너무 견기기가 힘들어졌어요. 숨이 턱턱 막혀 버릴 만큼. 누가 뭐래도 나는 알고 있으니. 아무리 고개를 거로 저어도 그 사실은 내 기억 속에서 떨구어 낼 수가 없었어요. 내가 너무 뻔뻔스러웠죠. 그런데도 처음부터 내 삶이 그랬듯 질기게 버텼어요.
어느 날, 그날 오후에 시험관 시술에 관해 상담을 예약이 되어있던 날이었어요. 그이는 출근하고 혼자 있는데 시어머니가 찾아오셨어요. 그리고 대뜸 그러셨어요. 그러면 그렇지 당신 아들이 그럴 리가 없는 걸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다고요. 끝내 믿을 수 없었던 혹은 더 자세히 알고 싶기도 했겠죠. 병원에 찾아가셨던가 봐요. 그리고 나도 이미 알고 있는 내 뻔뻔스러움을 거론하셨어요. 낯 뜨거운 비난 끝에 어머님이 당신의 아들을 끔찍한 불행에서 더 늦기 전에 건져 낼 유일한 해결책으로 내놓으신 건 당연히 이혼이었죠. 차마 당신 입으로도 내 과거에 대해서는 아들에게 말할 수 없을 거라면서 끝까지 함구할 생각이라고도 하셨죠. 그렇게 완강하게 버티던 그가 결국 이혼에 동의를 했던 건, 오늘처럼 나에게 붙잡아 달라 면서도 정작 다가오지 못하는 것도 시어머니가 함구하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렇게 되고 보니 차라리 잘 됐다고 할 수 있죠. 그와 헤어지게 된 거는요. 적어도 그에게 더 이상의 짐을 지우지 않아도 되니까요. 갚을 수 있는 시간도 나에겐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