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와 토끼>

〔소설〕동주의 도(道)

by going solo


“아빠, 춥죠? 들어오세요.”

학재 씨를 맞는 동주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고작 너 댓 평쯤 되려나.

그나마 남향의 창이 있어 전세 값이 조금 높다고 애 엄마가 말해 주었다.


“어디 우리 딸, 잘 지냈어?”

“네,”

학재 씨는 들고 온 쇼핑백을 동주에게 건넸다.

“이게 뭐예요?”

책 두 권 샀어.

‘대동법’ 1),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 2)

“아빠가 좋아하는 책이야.”

“집에도 있는 거 같던데.”

“그건 아빠 거고. 예비역사학도 우리 딸이 꼭 읽어 보면 좋을 거 같아 샀어.

100년에 걸친 개혁을 이루어가며

다 망해가던 나라를 번듯하게 재건한

관료들의 열정에 가슴이 뿌듯해질 거다.”


학재 씨는 지역 내 귀농인들의 멘토로 선발되어

세미나에 참석하고

꼬맹이 우리 딸이 어찌 사나 볼 겸

동주의 자취방에 들렀다.

집에서와 별 다를 것 없는 반찬을 올려

저녁을 먹고 나왔다.


꼬물꼬물 핏덩이로 세상에 온 지가 언제라고

그새 스물이라니

게다가 제 갈길 찾아 길을 나서

푸르디푸른 청춘의 시절에 막 발을 들인

막내딸이 대견하다.


두 자식이 집을 떠나

휑한 집에 달랑 남은 아내와 학재 씨,

젊은 시절 잠시 도시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아내와 결혼해 바로 고향집으로 돌아와

집안 농사를 거들다가

지금은 돌아가신 부친의

사과농사 벼농사를 이어 짓고 있다.


그중 자식농사가 최 고난도 라던데

무엇보다 아이들이 별 구김 없이 자라주어

보람 있는 인생이다 싶다.

엉뚱한 동주,

민족주의적 역사교사라니

어디서 그런 말은 배웠냐는 물음에

우연히 어떤 분의 TV강연을 봤단다.


왜 스스로를 비하하고 멸시하냐,

우리가 호랑이라고 믿으면

범의 기개로 살 수 있는 것을

왜 맨 날 힘없고 나약한 토끼로 여기느냐.


한복의 곡선이며

한옥 처마 끝이 둥근 것에

왜 굳이 한이 서려있다고 하느냐,

그건 세상 어디에도 없을

우리만의 아름다움 아니냐.


백의민족이 뭐 어때서

매일 침략만 당하는 무능한 존재로

갖다 붙이냐.

우리는 남의 것을 탐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족의 비밀과

자가발전의 내공을 가진

그런 민족이란다.


홑껍데기 무식자라 해도 좋다만

그래도 사람이니

훼손되는 자존감은 견딜 수 없어

분연히 일어나

낫이라도 휘둘러

스스로를 지키던

그 사람들의 후손이 아니냐.


누구지 모를

그분의 말이 그 어린 가슴을 울렸단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올바르게 규정하고

상처받은 역사관을 바로잡는데

인생을 걸어 보기로 했단다.


그날,

아직은 어리고 섣부른 줄만 알았던 동주의 말에

무슨 이런 애가 있나. 했다.

그런데 그게 내 딸이라니,

학재 씨의 가슴도 덩달아 뜨거워졌다.

부디 그 꿈 온전히 이루거라.

내 딸 동주야

온 맘 다해 응원하고 축복한다.


각주/

1) 대동법:조선 최고의 개혁(이정철 저, 역사비평사, 2010. 11.)

1)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이정철 저, 역사비평사, 201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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