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영 권사는
며칠 째 퇴근길에 교회로 먼저 갔다.
머리가 복잡하다.
뭔가 일렁이는 느낌
그나마 잔잔하던 삶이었는데
어디선가 돌이 떨어져 여울이 일고
그 밀림에 최지영이라는 사람의
존재가 흔들리는 것 같은,
그래서 가슴이 울렁거린다.
삶에 대한 멀미랄까
어린애가 뭘 알아서
그 몸속에 있는 그것이
존엄하다고 하는 걸까.
그 존엄이라는 말은
어디서 배웠으며
뱃속의 핏 덩이를 그리 여기는 건
누구에게서 받은 생각일까.
그리하여
앞으로 남아 있는 미래를
말하자면 온 인생을 걸려고 하는 걸까?
인생이 뭐고
사람이 뭐고
자식이란 게 뭔 줄 알고 그러지.
게다가
함께 해 줄 사람 하나 없이
온전히 혼자서 그리 하겠다는 거잖아.
나는 무서웠는데.
5년 전
남편으로부터 회사 정기 건강검진 결과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던
그날부터 두려웠다.
결국 불길한 예감은 여지없는 현실이 됐다.
멀쩡한 상태로 검사받아
췌장암 진단을 받고
1년도 채 넘기지 못해
저세상 사람이 됐다.
가장이 사라진 집에 남겨진
어린 두 자식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게 너무 무서웠다.
아파트 한 채에 보험금이 있어
최악은 면했지만
일곱 살, 열 살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고
비어버린 아빠 역할까지 해가면서
이 험한 세상 홀홀 단신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책임지냐고,
절망의 날들이었다.
겨우겨우 추스르기까지
꼬박 1년 걸렸고
죽기 살기로 1년 공부해
9급 공무원이 됐다.
하긴
그렇게라도 살고자 했던 건
아이들 때문이었지.
우리 가을이랑 봄이가 없었으면
난 어떻게 됐을까.
무거운 짐 같지만
한 줄기 빛 같은 존재들
그게 자식이긴 하지.
그래도 그렇지
요즘 애 같지 않은,
아니, 요즘 애라 그리 당돌하고
맹랑한 건가.
지 울음은 나누지 않겠다니
그럼 그건 됐고,
나의 것을 주려한다.
가는 마음 굳이 거두지 않으려 한다.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 애에게 절실한
응원도, 축복도
마음 담아 듬뿍 주려한다.
이러라고
하나님이 내 눈을 열어 주셨나.
어둠 덩어리처럼
웅크리고 울던 동주를
보게 하신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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