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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 양윤희 Jun 01. 2023

두 달 뜨는 밤

  달달 봉사와 외갓집

                                                    *             *            *     


      어느 날 밥상머리에 조랑조랑 매달려 있는 손주들을 죽 둘러보시며 할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 인생이 일장춘몽이구나... 나는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구나... 죽어 저 세상에 가면 우리 엄니와 아부지, 할머니를 볼 것이고 살아있으면 꽃보다 어여쁜 손주들을 볼 수 있으니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구나...... 어린 나는 할머니가 자신의 할머니를 떠올리는 게 낯설었다. 

      “할머니도 할머니가 있었어?”나의 외조모가 봄볕처럼 웃으신다. 

      “그럼... 강아지야....할머니 없이 어찌 태어나누? 할머니가 우리 엄니를 낳아서 내가 있는 거지...”

이모할머니께 들은 이야기이다. 할머니의 할머니가 책과 담바고, 떡과 육전을 너무 좋아하셔서 집안에 이야기와 먹을 것이 진진 했다는 것이다. 대문이 여럿 달린  뜰이 넓은 집에서 책을 벗 삼아 여생을 보내셨는데 내겐 외고조모이신 이 분 또한 당신의 손녀딸을 지극히 사랑하셨던 모양이다. 언젠가 할머니께서 어린 시절 밤마다 남장을 하고 행랑아저씨만 뒤 따르게 한 채 당신의 외갓집에 옛이야기를 들으러 다녔다고 얘기하셨다. 그러니 이 서사욕망도 결국은 유전인 셈이다.

      “어서 가자!”

      “아기씨, 아버님이 아시면 여자아이가 밤이슬 맞고 다닌다고 혼줄 납니다요.”

      “알긴 뭘 알겠누, 그 첩년의 치마폭에서 주무실 테지.”

      “쯧, 쯧, 여장부야, 여장부.”

조치원 외갓집까지는 십리나 되었다. 나이 지긋한 머슴을 데리고 달빛을 등대 삼아 남장을 한 내 외조모님이 어둑어둑한 밤길을 걸어간다. 한 시간 남짓 잰걸음으로 걸어야 겨우 할머니 집에 닿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둑한 숲길을 따라 외가로 내쳐 달리는 기분은 얼마나 들뜨고 설레었겠는가. 마치 내가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들창에 달빛을 이고 호롱불 밑에 언문책을 펼쳐놓은 채 어린 손녀딸의 기다리고 계시던 나의 고조할머니. 내게 긴 곰방대를 문 그분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가! 주나라 목왕(穆王) 때, 서쪽 끝에 있는 나라에서 조화(造化)를 부리는 사람이 왔단다. 그 사람은 물과 불에도 들어가고, 쇠와 돌을 뚫으며, 산천도 둘러엎고, 성읍도 옮겨 놓으며, 허공을 타고 다녀도 떨어지지 않았지. 그가 부리는 도술은 끝이 없어 물체의 모습을 바꿀 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각까지도 바꾸는 신통력을 지녔다는구나.

     목왕은 그를 신처럼 공경하여 궁전을 내어주고 소와 양과 돼지를 잡아 바치면서 여자 악공을 뽑아 즐겁게 해 주었지. 그러나 조화를 부리는 사람에게는 임금의 방이 누추하여 거처할 수가 없었고, 임금의 수라는 비린내와 누린내가 나서 먹기가 역했으며, 임금의 여인들은 못생긴 데다 땀내가 나서 가까이할 수가 없더란다. 목왕은 이를 알고 그를 위해 토목 공사를 벌여 궁전을 개축했지. 이웃 나라에서 예쁘고 날씬한 여자를 골라 향수와 기름을 바르게 하고 하얀 분과 검은 눈썹, 제나라의 비단신발을 끌게 하였지. 누각에는 향초를 섞어 가득 채우고 날마다 좋은 옷과 훌륭한 음식을 바쳤지만 조화를 부리는 사람은 탐탁지 않아 했단다. 얼마 후 그는 왕에게 함께 여행할 것을 청했지. 그러고는 왕에게 자신의 소맷자락을 잡게 하고 위로 치솟아 중천에 이르게 한 후에 잠시 멈추고 어느덧 그의 집에 이르렀는데 그곳은 금과 은으로 지어지고 주옥으로 장식되어 있지만 아래는 비구름이 서리어 도무지 어디에 의지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더란다.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과, 코와 혀로 냄새 맡고 맛보는 모든 것이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닌 거야. 실로 천제가 사는 월궁이요 음악이 귀가 아닌 향기로 피어오르는 혼미한 무아지경의 자미궁이었지. 왕이 몸을 굽히고 내려다보니 자기의 궁전은 마치 흙덩이를 포개어 쌓아 놓은 듯 조잡하기 이를 데 없어 수십 년을 이곳에서 보내도 전혀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 같더란다.    

     조화 부리는 사람은 왕에게 다시 여행 가기를 청하였지. 그가 간 곳은 우러러도 해와 달이 보이지 않고 구부려도 강과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이었단다. 빛과 그림자가 비치는 곳은 눈이 부셔서 바라볼 수 없었고 음향이 들려오면 귀가 어지러워 들을 수가 없었거든. 온 뼈마디와 내장이 두근거리며 안정되지 않고, 의식이 혼미해지며 감정이 사라져 갔단다. 왕이 곤하여 돌아갈 것을 청하자, 그 사람이 왕을 옮겨 놓는데 마치 허공에서 떨어지는 듯 느낌이 들었단다. 왕이 깨어보니 앉아 있는 곳은 자신의 궁전이며 시중들고 있는 사람들 또한 자기 신하들인 게야. 눈앞에 있는 술은 아직 가라앉지도 않았으며 안주 또한 마르지 않은 상태였지. 왕이 물었다.

      “내가 어디를 갔다 온 것이냐?”

좌우의 신하들이 말하였지.

     “폐하께서는 묵묵히 여기에 계셨을 뿐입니다.”

왕이 조화 부리는 사람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단다.

     “제가 폐하와 더불어 정신의 여행을 했던 것입니다. 형체야 어찌 움직이겠습니까? 또 아까 머물러 계시던 곳이 어찌 왕이 계신 곳과 다른 곳이겠나이까. 폐하께서는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에 얽매이어 정신으로 인한 변화의 극치를 깨닫지 못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그냥 이곳에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의 사유는 끝없이 풍성하고 그것의 황홀함이란 세상의 모든 고뇌를 일시에 날려 버릴 만큼 강렬하다. 나도 그런 사유 속에 머무르고 싶다.    



                                           *홀리는 것과 싫은 것사과닭      

   

       사람이나 물건, 걸칠 옷은 말할 것도 없고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우선 아름답고 예뻐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왜 그리도 눈에 거슬리는 밉고 싫은 물건이 많았는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이상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정말 싫은 것은 눈에 띄지 않아야 했다. 예를 들어 토마토나 닭 같은...... 신경질이 난다고 해야 하나? 지금도 잊히지 않는 특이한 기억이 있다. 글쎄, 그걸 꿈이라 해야 하는 건지 내 무의식 속에 있는 하나의 영상이라고 해야 할지......

       안방에서 혼자 낮잠을 자고 있었다. 해가 잘 드는 방이라 창호지를 투과한 노란 햇살이 얼기설기 내 몸을 기어 다니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암흑 속에 있었다. 캄캄함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했다. 아주 고요하고 정렬된 한 치의 탈선도 용납되지 않은 그런 공간이었다. 안온함이나 평화로움 같은 단어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차분한 고요였다. 그 공간에 나는 없었다. 내 의식만 있었다. 검은 벨벳 같이 빛나는 암흑 속에서......, 아니 그건 시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시각이 청각 화한 상태라고 말하는 게 더 맞는 상황일 것 같다. 갑자기 피아노 건반 같은 일렬로 된 긴 조각들이 쭉 늘어선 것이 보였다. 비늘 같고 더듬이 같은 것이 너무나 질서 정연하게 일렬로 고요하게 촘촘히 붙어 있었다. 하나라도 일탈을 하면 그 암흑의 세계는 붕괴될 것 같았다. 에너지가 잔뜩 충전된 촉수 같은... 모든 것이 서로를 떠받치고 짱짱하게 존재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균형을 깨고 비늘 하나가 쑥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아주 이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소리와 더불어 내 의식은 산산이 부서져 파괴되어 버렸다. 그 삐걱거림은 쇠 긁히는 소리보다도 더 날카롭고 괴물보다도 더 처참했다. 온몸에서 짜증과 신경이 곤두서며 그 긴 소리 줄기를 물어뜯고 싶었다. 나의 고요한 피안의 순간이 망쳐진 것이다. 절대 소리가 들려서는 안 되었다. 온몸이 비틀리는 이상한 굉음과 함께 내 의식은 빙퉁그러지고 더불어 살 속의 세포가 곤두설 대로 곤두섰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 노란 창호지 빛에 눈을 찌그려 감고 자개장롱에 붙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눈 코 입이 제 멋대로 붙은 요상한 합성물이 보였다. 한참 동안 나는 이상한 이 물체를 들여다보다가 두 손을 쥐어뜯으며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꼭 쥐어 감은 눈에 눈물이 흐르고 고통스러움이 솟구쳤다. 그날 이후로 나는 뭐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몸을 심하게 비틀며 울고 불었다. 겨울에 두꺼운 털양말이 엄지발톱에 엉기는 느낌, 목 좁은 티셔츠를 벗을 때 머리를 곤두세우던 정전기, 아버지가 아침저녁 티스푼으로 떠먹이던 계란 노른자의 비릿함, 축구 경기를 보며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남자 어른들, 이 모든 것들이 여섯 살 난 나를 빼들 빼들 말렸다. 나는 주로 다락방 구석진 곳에 웅크려 앉아 있거나 뒤뜰에 있는 커다란 프로판가스통 주변만 뱅글뱅글 맴돌았다. 그곳만이 유일하게 고요했으니까...... 어느 날, 오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홀로 옥상으로 올라간 나는 발치에 놓인 나무 궤짝으로 시선이 옮아갔다. 날은 뜨거웠고 태양이 지치도록 빛을 품어내다가 한 풀 꺾인 사색적인 초췌함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궤짝은 사과를 담았던 것이고 이제 한 알도 잉태하지 못하는 텅 빈 것이라 판결을 받아 얼마 전 어머니가 폐기물로 바깥에 내놓은 것이었다. 늦 햇볕의 따가움에 몸을 맡기고 그 궤짝을 바라보다 허전함에 흥건히 빠져 들었다. 정말 허전했다. 그때 왜 그 겨들을 훑어보고 싶었을까. 누렇게 말라 버석거리는 겨들 속으로 손을 쑥 넣어 보았다. 쓸모없이 버려져 바싹 마른 소리가 은근히 나를 유혹하며 속을 파보라고 시킨 것이다. 궤짝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고 제멋대로 흐트러져 삐죽이 자유분방한 징그러운 겨들의 파도를 손가락으로 쑥 흩어보았다. 공적 한 고요함이 태양빛을 시끄러운 비늘처럼 느끼게 했다. 나는 얼룩말처럼 줄무늬가 쳐진 티셔츠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상고머리를 바싹 깎아 올린 야무딱진 어린 계집아이였다. 버석거리는 겨들 속은 매끄럽고 황량했다. 손을 훌훌 휘저어 밑바닥까지 훑어 내었다. 짧달 막 한 내 손이 궤짝의 끄트머리까지 닿으려니 겨드랑이까지 겨가 차올랐다. 손을 움직거리기가 힘들었지만 한 켜 한 켜 겨들의 서걱거림이 느껴질 때마다 기분이 황홀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미끄덩 무언가가 만져졌다. 순간 소스라치는 소름이 돋았다. 분명 비어있을 거라 아무 기대도 없이 헛손질을 하는 내 손에 무언가가 걸린 것이다. 침을 꿀꺽 삼키고 ‘뭐지?’하는 궁금함과 함께 그것을 얼른 잡아 빼었다. 가을 햇살에 색이 영롱이는 빨간 불덩어리. 반짝반짝 윤이 나면서 상처하나 없는 작은 사과 한 알 이였다. 그것을 손 위에 올려놓고 멍하니 눈높이로 들어 올려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거만한 사과가 날것의 존재를 그대로 과시하며 나를 쏘아보았다. 충만한 드러냄. 사과는 나를 완전히 사로잡아 홀렸다. 그때의 감정을 놀라움이라 해야 할지 숭고함이라 해야 할지, 여하튼 삶이 보물을 발견하여 만족이 가득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             *            *          

      그 무렵 밤과 새벽은 어머니의 앓는 소리로 항상 시끄러웠다. 막내 동생을 출산한 후 하혈이 심하여 몹시 고생하시던 어머니가 급기야 헛것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밤 12시가 넘으면 어머니는 사람들이 죽어간다고 소리를 치고 울고 불며 북소리와 징소리, 철퇴 소리가 들린다고 할머니를 보채었다. 어린 나는 어머니의 얼굴빛에서 고통과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을 느꼈다. 할머니는 집터가 예전에 전쟁터여서 밤이면 죽은 장졸들의 혼이 전쟁을 치려고 진을 친다고 하셨다. 어머니의 총기가 세서 그걸 본다는 거였다. 할머니는 아버지를 설득해서 굿을 하기로 했고 굿판을 벌이는 일로 집안은 너무나 혼잡했다. 굿판은 산더미 같은 물건들로 미로를 이루어 그곳을 헤집고 기웃거리는 것은 어린 나에게 높은 산을 넘나드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진을 친다, 전쟁 터, 혼백, 굿, 어른들의 이야기는 알 수 없고 복잡했지만 난 그런 대화들 속에서 하나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삶에는 내가 모르는 어떤 신비한 것이 반드시 존재하며 그건 만화에서 신드밧드가 낯설고 무서운 미지의 사막을 뜨거운 햇빛을 쐬며 걸어가다가 푸른 포도나무가 있는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것과 같을 거라고 말이다. 무당은 하얀 버선발에 칼춤을 추었다. 오색 끈들이 나풀거리며 눈앞을 어른거리고 어머니와 할머니는 연신 손을 비벼대며 억울한 혼령들에게 고이 눈을 감고 가던 길을 가라고 축원을 했다. 여자 무당의 얼굴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내겐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가 쓴 시커먼 갓에 꿩 깃털이 양 옆으로 길게 꽂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깃털이 공포스러웠다. 대신 상다리가 휘어져라 차려진 음식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털 뽑힌 허연 닭이 삶아져서 축 늘어져 있다. 머리와 벼슬이 그대로 달려있는 모습이 정말 끔찍했다. 눈은 반쯤 게슴츠레 떠져있고 분홍 혓바닥이 얇은 종잇장처럼 뾰족이 삐져나와 있었다. 유난히 닭을 싫어하고 무서워했던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무언가 용기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아마도 기가 시퍼렇게 살아 뛰어대는 무당의 기가 내게 옮겨 온 것 같았다. 북소리와 시끄러운 울부짖음, 사람들의 북적임을 틈타 상 앞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갔다. 자그마한 몸집의 여섯 살 계집아이가 못 갈 곳은 없는 듯했다. 내 의지를 시험하고 싶은 이상한 충동이랄까. 나는 깊이 심호흡을 들이켜고 그 미끄덩한 삶은 닭을 낚아채었다. 뜨뜻했다. 모가지를 움켜쥐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틈을 타 닭을 들고 부엌으로 갔다. 손이 버들버들 떨리고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오줌이 마려웠다. 나는 그 닭의 시체에 처절한 증오를 느꼈다. 더럽고 징그러운 물건은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되는 거였다. 부엌 한편에는 누런 놋쇠대야가 놓여 있었다. 나는 닭을 그 놋대야에 집어넣고 옆에 있는 하얀 하이타이 가루를 몽땅 부어버렸다. 가루비누에 닭을 묻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나을 정도로 수북이 봉분을 올렸다. 이젠 삐죽이 나온 닭의 발가락까지 보이지 않았다. 온몸이 깨끗해지고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미운 건 싫은 것이고 싫은 것은 보이면 안 되는 거였다. 나는 영웅이 되었다. 나의 적을 철저히 고립시킨 것이다. 이 사건은 내 인생 최초의 승전고였고 그런 행동에 한 치의 자기반성도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워낙 닭을 싫어했으니까..... 싫은 것은 없애야 했다. 그러나 그런 영웅적인 행위의 대가는 처절했다. 어머니가 눈앞에 별이 떨어지도록 싸대기를 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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