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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 양윤희 Jun 02. 2023

메타감정의 역사

 작가가 되려면 알아야 하는 인문학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입각해서 하나의 특별한 감정인 화에 집중해 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의 기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있다.     


[그렇다면 화를 고통을 동반한 갈망으로 정의해 보자. 실제로 사소한 일이지만 그 자신이나 그의 친구들에게 가해진 일에 대해 아무리 별 가치가 없는 일일지라도 실제로든 가볍게 든 명백한 복수심이 들게 된다. 만약 이 정의가 맞는다면, 화난 사람은 일반적인 불특정 다수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항상 특정 개인에게 화가 난 것이며(예를 들어, 클레온 같은, 일반적인 인간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 개인이 그 자신이나 그의 친구 중 한 명에게 어떤 점에서 반대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에는 항상 어떤 쾌감이 수반되는데, 그 이유는 다가올 복수에 대한 희망 때문이다. 목표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제 그 누구도 얻을 수 없는 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기에 화난 사람은 그 자신을 위해 가능한 것을 목표로 삼게 된다. 그러므로 화에 대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는데, 화는 ‘꿀을 목에 한 방울씩 떨어뜨리는 것보다 훨씬 달콤하게 사람의 마음에 퍼진다’라는 것이다. 이는 분노 즉 화가 쾌락을 가져온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복수심에 사로잡힌 인간에게는 마치 꿈결인 양 눈앞에 즐거운 환상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는 전적으로 긍정적인 것도 전적으로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화는 물론 고통스럽지만 ‘달콤한’ 복수에 대한 기대감이 들어있다. 덧붙여, 아리스토텔레스의 화의 개념에는 시간적 영역이 포함된다. 화는 소실점이 있는데 비해 증오는 끝이 없고 시간적으로도 무제한 적이라는 것이다. 상상의 힘 또한 화의 한 요소이다. 복수는 달콤한데 그 달콤함은 상상한 것이기에, 거기 그 상상의 영역에서 기대가 피어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반적으로 파데(pathe)를 상상의 세계와 연관시키면서, 미학과 감정에 대한 추가 성찰의 기초를 제공했다. 내가 자전거에서 방금 떨어진 후 급히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과 소설의 주인공 올리버 트위스트에게 느끼는 동정심 사이에 차이가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건 무엇 때문인가?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실제’ 사건에 대한 감정적 반응과 영화 또는 컴퓨터 게임과 같은 문화 제품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비교하거나 동일시할 수 있는가? 거미에 대한 공포와 창문 없는 방에 있으려 하는 것 사이에는 무슨 연관 관계가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과 아무 연관이 없는 순수한 환상에 의한 감정이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과 연관 관계가 있는 감정보다 힘이 덜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파데는 플라톤(424/3-348/7BC)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그것이 파생된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 파데가 항상 존재해 왔던 것은 아니다. ‘호머의 문학 속 인물들은 자신들이 감정의 힘 앞에서는 다소 무력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또한 감정이 인간 내부에서 생성된 어떤 것이 아니라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유는 앞서 마오리족 전사가 그들의 공포를 아투라의 탓으로 돌리는 것과 쌍벽을 이룬다. 오늘날 우리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많은 은유가 무언가 외부적 요인과 상응하는 것은 아마도 고전 그리스 감정 이론이 드리운 긴 잔재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화를 극복하다’,라든가, ‘쾌락에 사로잡히다’, ‘사랑에 빠지다’, 와 같은 표현들이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판단과 계산을 고려할 여지는 남기지 않고 감정을 자극과 반응이라는 일방적인 도식의 관점으로만 보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공포를 파괴나 고통을 초래하는 급박한 악의 인상에서 비롯된 고통이나 괴로운 감정으로 정의했고, 이것을 상상된 미래의 고난에 대한 자동적(혹은 육체적) 반응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중단하는 어떤 의견 혹은 신념의 힘에 의한 것임을 인정했다. 아리스토텔레스라면 내가 숲에서 뱀을 보고 공포를 느끼는 것은 물릴 때 고통의 해로움을 상상했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미리 감정을 억제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으면 뱀을 보고 놀라지 않을 것인데 그것은 내가 6살 때 보스턴 동물원의 테라륨을 방문해서, 뱀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개발되었거나, 40세에 받은 공포 치료 덕분이라고 할 것이다.

게다가, 판단력이라는 인간의 고유한 영역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감정은, 그 자신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타자에 의해서도 바뀔 수 있었고, 특히 젊은이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눈에 젊은이들은 적절한 판단력이 제2의 천성이 되도록 그들의 감정을 개발시킬 필요가 있었다. 스토이시즘에 친숙했던 철학자들은 감정이 판단력이라는 정의가 내려지고 나서야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들은 젊은이들을 그들 자신의 방식대로 교육하고: 자신들의 범신론으로 더 큰 그림을 강조하여 감정에는 무관하도록 이끌었다. 목적은 아타락시아라는 쾌락에 이르기 위해 아파테이아라는 무감정의 평정한 상태를 성취하는 것이다. 사랑이나 결혼은 그들의 범신론적 전망에는 상대적으로 부적격하기에 피해야 한다. 감정에 대한 이런 형태의 통제는 그 후로 오랫동안 반향 되었다.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는 『명상록』에 아타락시아가 이상적이라고 쓰면서 정치가들에게 평정을 권고했고, 반면에 자신을 ‘신 스토아학파’라고 보는 미국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도 결과적으로 스토아학파가 강조하는 마음의 평화에 의거하여 자신의 안녕에 강조를 두는 감정의 이해를 받아들였다. 그녀는 여전히 감정을 ‘평정’으로 본다.                                         

         서기 2세기 즈음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 의사가 출현했는데 감정에 관한 그의 생각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직전까지 아라비아와 유럽 의사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갈렌(c.130-c.200)은 피, 담즙, 황갈, 흑발에 특정한 특성을 부여하는 인간 기질에 관한 원칙을 확립했다. 그는 이러한 체액 중 하나가 과다되면 그것이 기질에 영향을 미쳐 어떤 특정 영역에 속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갈렌은 화학적 또는 물리적 매체가 아닌 도덕적 교육과 절제 속에서 치료의 잠재력을 보았다. 그의 네 가지 점액질과 특히 기질에 관련된 병리학(담즙질, 다혈질, 우울질, 점액질)은 외부로 표출되는 과도한 감정의 특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임마누엘 칸트의 저작이나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의 일부 심리학자들의 견해에서 볼 수 있다.

         플라톤 이래로 감정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사유는 세 가지 영혼설이었다. 플라톤은 영혼이 이성적 요소, 영적 요소, 탐욕적 요소로 형성된다고 보았다. 이 사유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토아학파에 의해 수정되긴 했지만 감정에 관한 초기 기독교 저술에 영향을 받은 아우구스티누스(354-430)에 의해 가장 나중까지 취급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영혼에 관한 계층적이고 단계적인 모델을 창조해 냈는데 가장 낮은 단계에는 순수하게 식물적이고 육체적인 것이 있고, 일곱 번째인 가장 높은 단계에는 경건 또는 신성의 에피파니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맨 위의 두 단계가 인간에게 속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나 스토아학파가 감정 과정을 물리적인 초기 운동(primus motus)과, 인지 도덕적 평가로 본 것을 의지에 종속시키고 감정 자질의 범주로 대체시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의지에 대한 자질이다. 만약 의지가 왜곡되어 있다면, 감정도 왜곡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의지가 올바르다면 감정은 비난받을 필요가 없고 칭송될 것이다. 의지는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다. 정말, 모든 것이 의지의 행위에 다름 아니다. 욕망과 즐거움은 우리가 바라는 것과 일치하는 의지적 행동일까? 그리고 두려움과 슬픔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아닌 비 의지적 행위일까?      

그러나 원죄 때문에 인간의 의지는 그를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 신의 자비를 받아 자신의 의지를 신의 관점에 고정시킨 자만이 감정을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유는 근본적으로 고전적인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유와 갈등을 일으킨다. 범신론적 개념으로 대지와 자연에서 신성을 발견하려는 스토아학파와는 달리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성을 닿을 수 없는 초월적 영역에 위치시켰다. 그에게 감정이란 사후의 삶에 집중되었다. 인간의 육체를 포함해서 모든 것은 시간적이고 더럽혀졌으며 덧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와는 완전히 다른 사유인데,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정과 인식을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데카르트가 비난받던 감정과 이성의 이원성을 이미 예견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한 발 더 나가 이상적인 삶을 위해 감정을 평정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는 스토아학파와도 대조적으로 신의 의지와 목적에만 부합된다면 삶 안에서 감정적인 것은 환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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