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연 양윤희 Jun 03. 2023

외갓집의 세 마녀

두 달 뜨는 밤-장편 소설-

                                                    *외갓집의 세 마녀          

   


       외가 뒷마당은 커다란 배나무 과수원과 맞붙어 있었다. 배 밭은 옆집 것이었지만 울타리 없이 할머니네 뒤 곁과 연결되어 언제든 들어가 놀 수 있었다. 나무에 기어 올라가 아직 여물지 않은 작은 땡 배를 따서 개미굴 앞에 놓아두는 일이 나에겐 퍽 신나는 일이었다. 들 여문 배는 떫고 딱딱해서 내 이가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과실 냄새를 맡고 땅 개미들이 끊임없이 줄을 지어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 목이 간질간질하면서 희열이 느껴졌다. 

   ‘개미는 작으니까 조그만 땡 배를 맛있어할 거야.’

할머니는 종일 방 안에서 책을 보셨기에 나는 외사촌 동생 만이와 외가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어느 날 만이가 감기에 걸려 새 아줌마와 동네 의원에 갔다. 나는 심심해서 배 밭으로 걸어갔다. 유난히 뾰족하고 답답한 오후의 해를 혼자 터벅거리며 치러내고 있는데 갑자기 내 시선이 누런 신문지가 말린 배로 옮아갔다. 불룩한 종이 봉지에 해가 언뜻언뜻 일렁거리는 것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석양비치는 주홍의 과수원이 영원히 끝도 없이 쭉 길게 펼쳐 있는 것 같은 망막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콱 어느 밀폐된 공간으로 처박히는 느낌이랄까? 태양빛과 함께 공적함에 계속 녹아들면서 마치 내가 하나의 알갱이로 예전부터 오래도록 혼자만 존재한 것 같은....... 그런데 그 의식의 한가운데로 어떤 두 개의 점이 보였다. 만이와 외숙모가 아니었다. 배 밭 끄트머리에서 외가를 향해 희미하게 움직이던 그 형상은 방울 할머니와 수영 할머니였다. 두 분 할머니에 대한 내 최초 기억은 바로 그 배 밭과 연결되어 있다. 아마 그전에도 분명 본 적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보았더라도 너무 어렸기 때문에 내 인식이 그분들을 감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외할머니는 손님 할머니를 뛸 듯이 반기셨고 의원에서 돌아온 외숙모는 분주히 식사 준비를 했다. 저녁때 할머니들께 인사를 한다고 작은 이모가 왔고 나를 위해 파마 약을 가져왔다며 내 머리를 분홍색 뼈다귀들로 돌돌 말았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이모가 난생처음 파마를 해주던 날,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에 매혹이 되어 베개를 베고 누울 수가 없었던 일. 누우면 곱슬곱슬한 머리가 짓눌려 망쳐질 것 같아 밤이 깊었는데도 생쥐처럼 이불 안 밖을 들랑거리다 벌떡 일어나 거울 앞으로 달려가곤 했다. 그때마다 향긋한 웃음소리가 온 방안을 수증기처럼 메웠다. 세 분의 할머니였다. 돋보기를 쓰고 책을 읽으시는 외할머니와 나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누워 계시던 방울 할머니와 수영 할머니. 한 참을 버석거리다 졸음에 부대껴 누우니 영창에 비친 불빛에 반사되어 천정 바로 밑에 걸린 졸망졸망한 흑백 사진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 사진 중에 제일 또렷한 것은 외할아버지가 진사 갓을 쓰고 팔자주름의 미소를 띠며 내려다보는 모습이었다. 마치 할아버지와 얘기를 하듯 한참 동안 표정에 몰두하다가 잠이 들었다. 잠결에 들리는 말들은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나를 눌러 온다. 

   “이 아이 형님 닮았수. 너무 영민해서 명을 다할까 모르것네......”

   “망할 것. 애 앞에 두고 별소릴 다 지껄이네.” 

‘명’이라는 말이 왜 활명수로 들렸을까. 달콤하고 박하 맛이 화하게 피어오르는 활명수 그리고 달을 빻아 놓은 것 같이 반짝이던 하얀 명랑가루...... 할머니 냄새......  



                                               *             *            *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나는 의문이 많았다. 할머니께서는 아침엔 정갈하게 몸을 씻고 방바닥을 여러 번 닦으신 다음 화투 패를 띄워 하루의 운세를 보셨는데 지금 와 생각하니 그 장면엔 웃음이 난다. 이월 메조가 나오면 임이 오실 거라는 둥, 구월 국진이 나오면 국수를 먹겠다고 하셨다. 나는 팔월 공산에 광자가 붙은 화투패가 아름다웠다. 어느 날 내가 할머니께 물었다. 

   “할머니, 수영 할머니는 누구야? 방울 할머니는?”

할머니께서 안경 너머로 나를 보시며 웃으신다.

   “궁금하냐?”

   “응......”

   “수영 할머니는 너의 증조할머니시고 방울 할머니는 그런 증조할머니를 내 쫒      기 위해 너의 외고조모가 들인 무녀이시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어린 날 할머니의 단호하고도 정확한 대답의 의미를 분위기와 감정으로 읽어 내었다. 무언가가 있다는 거였다. 깊고 깊은......

    할머니와 나 사이에 흐르는 진지한 기운이 또 내게 의문을 일게 했다.

   “그럼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어?” 

할머니께서 돋보기 너머로 또 한 번 빙그레 웃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쁜 거 고치라고 태였지! 그것 때문에 천상에서 쫓겨났으니 다 고쳐야 다시 옥황상제한테 가는 것이야.”

   할머니의 이 말씀은 나이가 들어서까지 두고두고 내 마음의 언저리를 맴돈다. 과연 나는 나쁜 점을 고칠 수 있을까? 

    내 몸은 물질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물질의 구성 분자는 무에서 존재된 것은 아닐 것이므로 소멸되어 무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없던 것에서 생겨나지는 않으니 말이다. 물질인 나는 시간의 변화에 의해 우주의 어느 부분에 환원되고 그것은 다시 변화하는 우주의 다른 부분이 되고....... 이리하여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영원회기의 이론적 근거가 바로 이런 것일까? 그런데 어찌 보면 나를 이루는 각 부분이 하나인 듯해도 일원적으로 통합될 수는 없는 듯하다. 분명 내 안에는 다양한 성향들이 혼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인간을 오온의 결합이라고 했을까? 그렇다면 나는 다양하게 정제된 성향들의 한 중심에서 나 자신을 어느 쪽에 위치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이것은 자유이며 고통이다. 그걸 통해 형성된 궁극의 지향점으로 다른 우주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할머니는 무엇을 고치러 이 세상에 오신 것일까......



                                                        *             *            *     


       할머니는 어린 나를 데리고 경미 극장에서 영화를 한 편 보신 후 답십리 굴다리 아래 있는 이상한 책방으로 나들이를 자주 다니셨다. 마르께스의『백 년 동안의  고독』을 읽다가 마쿤도 골목의 황금 물고기가 나오는 장면에서 답십리 골목과 같은 느낌이 들어 신비로웠다. 빨간 겉표지의 두툼한 책들은 한문으로 제목이 쓰여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갈색 돋보기 아래로 흥분하신 할머니의 눈으로 보건대 분명 남 녀 상열지사가 섞인 무협지에 틀림없다. 할머니께서 책을 고르는 동안 좁은 책방에서 빠져나와 잽싸게 골목 끝에 황금 물고기를 파는 아저씨한테로 달려간다. 인정 많은 아저씨는 내 손에 바삭거리는 황금 물고기 한 마리를 들려주고 “오늘도 할머니 따라 책 사러 완?”하고 물으신다. 그 질문에는 대답도 않고 물고기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단 것을 싫어하는 나는 황금 물고기의 뱃속을 꾹 눌러 툭 불거져 나온 빨간 팥을 입에 물었다가 퉤 뱉는다. 아저씨는 그 모습에 당황해하시며     “아니 그게 맛이 없어?” 하신다. 

잠시 후 할머니께서 두툼한 봇짐에 책을 머리에 이고 내 옆으로 오셔서 황금 물고기 아저씨께 빨간 십 원짜리 종이돈을 들려주시고 

   “이 애가 좋아하는 공 물고기 댓 마리 구워요. 바삭하게....” 하신다. 

아저씨는 싱글벙글 웃으며 “아, 예 여부가 있습니까?”하며 양푼 주전자에서 하얀 풀물을 따라 물고기 틀에 가득 채운다. 공 물고기...... 뱃속이 텅 빈 붕어 풀빵...... 겉은 바삭하고 속은 물컹거리는 밀가루 죽...... 할머니께서 집에 오시며 말씀하신다. 

   “공 풀빵이 그리 좋으냐?”  

   나는 대답 대신 오물거리며 풀빵을 뜯어먹는다.

   “네가 이 최 성림의 손녀딸이 틀림없는 게야...... 공을 아누?”

 할머니가 코에 주름을 지으며 환하게 웃으신다. 

   집에 돌아와 설탕물 한 종지를 들이켜고 마당 끝에 땅 개미들을 보러 나갔다. 해가 붉은빛으로 공간을 채울 무렵 할머니가 등 뒤로 다가오셨는데 손에 테두리가 노란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아마도 『영국 동화집』이라고 쓰여 있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그것을 손에 쥐어 주시며 그림도 있고 하니 읽어 보라고 하셨다. 책방에서 주어 오신 게 틀림없었다. 나는 조롱박처럼 동그랗게 몸을 숙이고 냅다 내달려 안방으로 돌진했다. 벌렁 엎드려 손가락에 침을 무치고 중간을 펼쳐보니 굵은 연필 삽화가 그려진 그림이 보인다. 무시무시했다. 그림 한 중앙엔 커다란 솥에 부글부글 뭔가가 끓고 있고 주변엔 두꺼비, 쥐, 시들은 장미꽃다발이 널브러져 있다. 세 명의 삼각 고깔을 쓴 코가 뾰족한 할머니들이 손을 뻗고 웅얼대는 소리가 들린다.

   “이게 뭐야?”

글을 읽을 줄 알았기에 더듬더듬 읽어 내려갔다.     

           

            빙글빙글 돌아라. 가마솥 주위를

            독이 든 내장을 던져 넣자

            서른한 번의 낮, 서른한 번의 밤 동안 잠자고

            독을 뿜어내는 두꺼비야

            네 놈이 맨 먼저 끓어라

            마법의 가마솥 안에서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그건 셰익스피어의 『맥베드』였다. 섬뜩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깔을 쓴 세 마녀의 얼굴이 할머니, 수영 할머니, 방울 할머니 같이 느껴졌다. 너무나 강렬했고 지금도 그 윤곽을 잊을 수가 없다.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할머니께서는 잠자리에 누우면 언제나 옛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정말 졸려서 참기 힘들었지만 손을 꼭 쥐시고 한 소절 한 소절 감칠맛 나게 애쓰시는 외조모님의 사랑을 배반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 착한 손녀딸이었다. 할머니는 얘기 중간에 꼭 “아가....... 자냐?”하고 확인을 하셨는데 잠의 나락으로 빠져 들다가도 그 소리는 천둥처럼 내 마음에 울려 퍼졌다. 나는 몸서리를 치며 “아니 안자......”라고 대답해야 했다. 낮 동안 실컷 뛰어 논 어린 나에게는 고문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할머니의 얘기는 끝없는 미로였다. 공포스러운 이야기, 따뜻한 이야기, 뭔가 생각해야 할 이야기,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도 해석이 되지 않는 이야기도 있다. 내가 유난히 새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것은 어릴 때 들었던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새에 얽힌 사연 때문일 것이다. 어린 남매를 위해 장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새가 다 쪼아 먹고 그 거죽만 빨래 줄에 널어놓았다. 그걸 본 남매가 복수를 위해 새들을 찾아 떠난다. 가는 곳마다 남에게 도움을 주고 그에 합당한 선물을 받는데 그 선물들이 결국엔 새들을 죽이는 도구가 된다. 남매는 빨래하는 할머니의 한 광주리 넘는 옷들을 빨아주고 그 답례로 파란 주머니에 든 벼룩과 빨간 주머니에 든 고춧가루를 받게 된다. 그것을 가지고 꽁지 닷발의 은거지에 도착하여 몰래 집 안으로 숨어든다. 주둥이 닷 발의 새들이 날개를 활짝 펴고 노래를 부른다.     

                      

                       죽을 죽을 죽을 쑬까?

                       고실고실 밥을 할까?

                       떼굴떼굴 떡을 할까?     


꽁지 닷발 새들이 날개 춤을 추며 무쇠 솥뚜껑을 열고 “떼굴떼굴 떡을 하자!”하면서 고개를 처박는다. 새들이 부엌으로 간 새 남매는 벼룩을 온 방안에 흩뿌려 새들의 몸을 가렵게 만든다. 새들이 그 가려움을 견디다 못해 긁적이다가 따뜻한 가마솥으로 들어간다. 가마솥의 열기가 가려움을 상쇄시켜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 틈을 타 남매는 솥뚜껑을 꽉 덮고 불을 지핀다. 활 활......

  할머니는 새들의 노래를 흥얼거리시며 나를 간지럼 태우셨다. 이야기는 새들이 모두 죽어 긴 부리의 모기가 되었다고 끝을 맺었지만 나는 어머니의 거죽을 홀랑 벗겨 빨래 줄에 널어놓은 그 모습이 너무 무섭게 상상되어 한 동안 새만 보면 소스라 쳤다. 할머니께서는 내게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아가, 위험에 처하거나 억울한 일이 생기면 너를 돕는 것은 너 자신이 아니라 주변 사람이다.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네가 해야 할 일은 먼저 그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일이지...... 그러니 언제나 다른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선행을 베풀어라..... 그래야 네가 어려울 때 그 어려움을 이길 방편이 생긴단다...” 



작가의 이전글 메타감정의 역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