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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 양윤희 Jun 04. 2023

바보, 요재지이

두 달 뜨는 밤-장편 소설-

                                                                        *바보                   


    우리 집 바로 옆에 ‘화니 양장점’이라는 옷집이 있었다. 어머니는 시간이 나면 양장점으로 내려가 주인아주머니와 차를 마시거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셨다. 그곳엔 누런 마분지로 된 여러 가지 옷본과 별처럼 반짝거리는 검정 재봉틀이 있었고 탁자 위에는 빨간 테두리를 두른 분유통과 뽀빠이가 놓여 있었다. 나는 분유통의 분유를 한 숟가락 목에 털어 넣고 침으로 오물오물 녹여 먹는 맛에 반하여 생쥐처럼 뻔질나가 그곳을 들락 거렸다. 어느 날 아주머니가 내 손목을 꽉 쥐고 얼굴을 바싹 끌어다 보시더니 ‘너무 여위어서 훅 불면 날아갈 것 같구나’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도 그 말에 동의하셨는지 버둥거리는 내 손을 잡아끌고 동네 의원으로 데려가셨다. 엑스레이 결과 결핵 초기라고 했다. 

   “성질이 그 모양이니 병이 안 걸려?”

들여오는 밥상마다 까탈을 부리고 사 오는 닭마다 하이타이를 부어 대는 내 기이한 행동에 화가 나신 어머니가 퉁박을 하셨다. 초기라서 ‘아이나’라는 약을 먹고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을 하고 영양섭취를 잘하면 회복될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어머니는 나를 외가로 보내기로 하셨다. 물론 나를 잘 보비위 해서 틀어진 성격을 다잡아야겠다고 할머니가 제안하신 게 틀림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할머니께서는 언제나 내 인격을 존중해 주셨던 것 같다. 나이가 어리다고 애 취급을 하신 게 아니라 늘 내게 비유를 들어 현상을 설명해 주시고 마음을 헤아려 주셨다. 할머니께서 내게 쓰려던 방편은 물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심리적인 것이었다. 외가로 실려 가는 삼륜차 안에서 할머니께서는 내 손을 꼭 잡고 물으셨다.

   “뭬가 그리 싫은 고?”

   “미운 게 싫어......”

답은 짧고 명료했다.  

   “그저 밉고 싫다고 생각만 하고 드러내지 말거라!.”

그렇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싫어하는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날 삼륜차로 실려 온 외갓집에서 할머니가 내게 해주신 이야기는 최고의 바보 서사였다. 지금도 마치 내 의식의 바탕서사처럼 할머니의 이야기가 온 폐부를 찌른다. 외가는 우리 집보다 더 캄캄한 밤을 가지고 있었다. 노란 양단 이불을 덮고 할머니 곁에 누워 영창에 비친 천정의 그늘 빛을 바라본다.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쥐시고 한 번 헛기침을 하신 다음 “아가, 자냐?” 하신다. 내가 모기 소리 만하게 “아니.....”하자 “오늘은 조 자룡이 얘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해줄까?”하신다. 그 당시 밤마다 등장인물이 한 다발인 삼국지를 읊어 대시는 바람에 머리가 어지간히 복잡했던 나는 조 자룡이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해주신다는 말이 꿀처럼 달콤했다. 그러나 그건 꿀이 아니었다. 불교에서 모든 즐거움과 행복은 반드시 고로 변한다고 했던가? 할머니께서 내게 물으셨다. 

  “우리 아가는 세상에서 뭬가 제일 어리석은 바보라고 생각하는고?”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바보?” 바보라면 말은 어눌하고 늘 당하기만 하는 전형적인 못난이를 말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 이미지를 할머니께 설명하려니 말이 자꾸 빗나갔다. 게다가 졸리기까지 하여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되며 얼굴에 함지박만 한 검은 점이 박힌 그 당시 최고의 바보역할의 코미디언만 둥둥 떠올랐다.

   “까만 큰 점이 얼굴에 있고, 멍청하고... 밉고... 잘 넘어지는...”

그런데 할머니가 답을 안 하시고 잠시 침묵을 지키셨다. 나는 그 침묵이 조금 갑갑해서 “할머니 자?” 하고 되묻는다. 잠시 후 긴 이야기가 펼쳐졌다. 

  “옛날 옛적에 한 바보가 어미와 살고 있었단다. 이 바보는 제 손으로는 무엇 하나 하지를 못했어... 나무를 하라면 풀을 뽑고, 소를 데리고 장에 가라면 소를 잃어버렸지...... 하다못해 그 어미가 부뚜막에 감자를 삶아 놓고 배고프면 갖다먹으라 해도 문지방을 넘는 게 어렵다며 움직이지 않았어......”

나는 할머니의 설명에 그 바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아는 바보는 늘 먹는 걸 탐해 보였으니까......

   “할머니... 바보가 먹는 걸 싫어해?”

   “그람......”

할머니는 얘기를 계속하셨다. 

   “어느 날 바보의 어미가 마을 끝에 큰 잔치가 열려서 품을 팔러 가야 했어. 몇 날 며칠이 걸리기 때문에 어미는 바보가 제 때 밥을 먹을지 걱정이 되었지. 그래서 꾀를 내었어...... 바보는 누워있으려고만 하니까 어미는 누워있는 바보의 얼굴에 넓더디 한 큰 찰떡을 붙어 놓았단다... 이마에, 양 볼에, 턱에, 그리고 양손이 닿는 옆구리와 배통에, 손 만 뻗치면 떡을 뜯어먹기 쉽게 말이지......”

    이상하게도 게으름뱅이의 모습이 또렷이 눈에 그려져 웃음이 났다. 

   “그래서?”

어미는 바보 아들에게 간절히 당부했어. 배가 고플 때마다 꼭 하나씩 떼어먹으라고 말이야.

  나는 그 대목에서 졸음이 왔다. 어미가 좋은 꾀를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으른 바보는 배고플 때마다 떡을 떼어먹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의 마지막 말씀은 그 밤 내내 나의 잠을 거둬 버렸다. 잔치 품앗이를 하고 돌아온 어미가 방 한가운데서 발견한 것은 떡하니 누워 혀를 길게 빼고 누워 죽은 아들의 시신이었다.

   “바보는 배가 고팠지...... 그러나 손을 쓰기가 싫었어. 그래서 혀를 길게 빼어 턱에 붙은 떡을 떼어먹었지...... 맛있었어, 다음 끼가 되어 양 볼의 떡 까지는 떼어먹었지만 이마와 옆구리는 혀가 닫지 않았지......”

    “그래서 떡을 못 먹었어?”

    “그렇다는구나. 바보는 혀를 이마에 닿게 하려고 갖은 용을 다 쓰다가 그만 숨이 끊어졌지. 혀를 길게 빼물고......”

   나는 그 이야기가 너무 끔찍해서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께서 눈물을 닦아 주시며 말씀하셨다. 

    “세상을 성의 없이 사는 것이 바보란다. 인간이라면 마음에 성을 품고 세상에 진실하게 대해야 해......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하기 싫어도 하고,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해...... 알겠느냐?”   

   “성이 머야? 할머니?”

   “성이란 좋은 품을 갖기 위해 지성을 드리는 마음이란다.”

매 번 밥 상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밥을 먹지 않으려 했던 내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려 해 주신 이야기임에 틀림없었다.      



                                                *방울할머니와 옥현                  


   음력 오월오일, 양력 유월 중순 즈음이 되면 할머니께서 앵두화채와 수리취떡, 달달한 제호탕을 해주셨다. 나는 수리취떡이 떡인지 전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웠는데 이유는 할머니께서 진한 녹색의 수리취떡을 널 더디 하게 눌러 들기름을 잔뜩 발라 주셨기 때문이다. 차가운 제호탕을 자주 마시면 돌아오는 여름을 거뜬히 날 수 있다고 하시기에 약간 역한 한약 맛이 나는 이 차를 꾹 참고 마셨다. 하지만 내가 할머니의 뜻대로 움직인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단오절 음식을 준비하신 후 반드시 주섬주섬 몇 가지를 챙겨 방울 할머니 집에 놀러 가시는 것이다. 신당동에 있는 방울 할머니 집은 그야말로 보물 창고와도 같았다. 산신당이라는 방에서 풍기는 이상한 향불 냄새만 아니면 벽에 그려진 온갖 연꽃과 색색가지 새들이 거기에 들어온 사람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그곳은 새들이 늘어서서 짹짹거리고 칠보단장을 한 선녀들이 끝도 없이 허공에 금색 은색 가루를 날리는 신비한 곳이었다. 마당 한편 벼름박에는 심우도라는 소를 탄 목동의 그림이 병풍처럼 둘러 있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를 타고 피리를 불고 싶었다. 두 할머니는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를 나누시고 나는 그토록 좋아하는 옥현이와 은밀한 장난을 칠 수 있었다. 옥현은 나와 동갑내기 친구이자 방울 할머니의 하나뿐인 피붙이였다. 눈이 까만 보석처럼 빛나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내가 산신당에 갈 때마다 마당에 석필로 내 모습을 그려 주었다. 옥현의 부모님은 옥현을 뱃속에 넣은 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임신 8개월 째였던 옥현의 어머니가 목숨을 잃자 나머지 두 달은 인큐베이터가 그녀를 품었다. 당시엔 우리나라에 인큐베이터가 네 대 밖에 없는 데다 상당히 비싼 값이어서 어지간한 사람은 미숙아인 아기를 잃기가 다반사였다고 했다. 옥현을 살린 것은 우리 할머니 최 성림의 사랑과 도움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석필과 흑단 같은 눈으로 그림을 그렸다. 나는 옥현의 눈이 붓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부모의 결혼을 계속 반대하던 친조부모 대신 신 내림을 받은 외조모 방울 할머니와 점집을 하며 살고 있었는데 그곳은 정이 넘치고 먹을 것이 많아서 어린 내 눈엔 아주 부잣집처럼 느껴졌다. 두 할머니는 한참 대화를 나누고 나서 창포를 풀어 우리 둘의 머리를 감겨 주셨다. 그래야 액을 피하고 삼복더위와 동지섣달 칼바람을 잘 맞을 수 있다고 하셨다. 머리를 감아 개운한 옥현과 나는 턱을 괴고 산신당에 그려진 선녀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옥현은 선녀를 그리고 싶고 나는 선녀들과 얘기를 하고 싶었다. 피리소리가 들리고 천상의 새소리도 보인다. 황홀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맹용담과 주효렴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 겪은 일은 실화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산신당 그림 속 선녀들이 소근 대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맹용담과 주효렴이 어떤 절에 들렀다. 불당 안에 탱화가 한 점 있었고  그림 속의 인물들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동쪽 벽에 천녀가 그려있는데 그중에 머리채를 길게 늘어뜨린 아름다운 소녀도 한 명 끼어있었다. 꽃을 따들고 미소를 짓는 그녀의 앵두 같은 입술은 촉촉하게 살짝 벌어졌고, 달빛처럼 가녀린 눈매는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주효렴은 넋을 잃고 그녀를 보다가 그림 속으로 홀딱 빠져들었다. 문득 몸이 가벼워지며 구름 속에라도 나르는 듯 훌쩍 뛰어올라 벽화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그의 뒷전에서 소매 자락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꽃을 꺾어들은 달콤한 미소의 소녀였다. 주효렴은 그녀가 이끄는 데로 구불구불한 회랑을 지나 작은 별채로 이끌려 들어갔다. 별당은 매우 조용했고. 방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요재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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