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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 양윤희 Jun 05. 2023

연화정

두 달 뜨는 밤      -포스트코로나시대의 메타픽션-

                                                        *외할머니의 외갓집




        인간은 정말 정해진 운명대로 사는 것일까? 운명이란 말 그대로 운과 명에 맞게 그 테두리 안에 갇혀 사는 것일까? 만약 모든 사람이 이미 정해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라면 그런 삶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고분고분 자기 삶을 따라가며 감정을 고문하는 것? 삶에서 맞닥치는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함을 멍하니 바라보며 끊임없이 회의에 휩싸이면서도 의식을 삶에서 소외시키는 방법 외에는 아무런 치유도 할 수 없는 허무함에 덤으로 고독까지 선사받는 것? 자기 운명을 벗어나려 발보둥치다가 포기하고 내려앉는 것? 그러나 반대로 삶이 어떤 정해진 길 없이 노력이나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면 그런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 끝없는 비상을 위해 쉼 없이 내닫는 것? 인간이기에, 어리석기에, 신화에 나오는 파에톤처럼 불에 그을려 타 죽을 각오로 태양을 향해 치달아 욕망을 향해 질주하여 종국에는 자신을 파괴시키는 삶... 그런 삶을 우리는 추앙해야 하는 걸까? 

         집안마다 그 집안에만 있는 특이한 서사가 한두 가지는 있게 마련이다. 만일 그런 것이 없다면 거기는 사람이 존재하는 곳이 아닐 것이다. 떠도는 재미난 얘기가 없다면 아마도 흥미로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자손들이 없어서거나 이야기돼서는 안 될 것이 있어 쉬쉬하는 경우일 뿐이겠지. 중천에 뜬구름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파헤쳐보면 친척들 중 누군가에게 반드시 그 집안의 재미난 전설들이 분명 숨겨져 있는 것이다. 우리 집안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예외라기보다는 그 반대였다. 너무나 흥미진진한 얘기가 숨어 있었으니까...... 나의 외증조모, 그러니까 할머니의 어머니는 성이 배 씨였다. 배 연화. 성품이 온화하고 얌전하여 자신을 드러내는 법을 모르는 분이셨다. 여기서는 그냥 연화 할머니라고 호칭하겠다. 할머니는 큰 장애가 있었다. 오른손을 제대로 쓸 수 없으셨다. 뭉치 손..... 어릴 때, 커다란 맷돌에 치여 고사리 같이 여린 손가락이 뭉개지신 거다. 한 손가락도 아니고 자그마치 세 개, 엄지와 약지를 뺀 가운데 세 손가락의 끄트머리 뼈가 으스러져 섬세한 일을 하실 수가 없었다. 바느질은 물론, 아기를 안는 것조차 어설프셨다. 연화할머니의 어머니 즉 나에게는 고조모가 되는 곰방대할머니는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 병신이 된 것을 너무 가슴 아파했다. 그것도 자신의 부주의로 병신이 되었으니 얼마나 죄책감이 크셨을까...... 고조할머니는 조치원 최고의 갑부로 대문이 아홉 개나 되는 큰 집에서 많은 종들을 거느리고 사셨다. 고조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하나뿐인 딸 연화에게 무척 각별하셨나 보다. 그녀는 성이 오 씨였는데 자신의 친정을 오가며 책과 그림을 구해 와서 벗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떡을 찌고 전을 푸짐하게 부쳐 동네 사람들과 잔치하는 것을 즐겼다. 특히 시와 희귀한 이야기를 좋아해서 누구든 세상의 재미난 이야기만 들려준다면 여러 날 식객으로 머물러도 괜찮았던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고조할머니가 나의 외조모 최 성림에게 해 준 이야기들 중에는 지금도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귀신 이야기, 여우 이야기, 선녀들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뤘는데 거기에 나오는 귀신들은 착하고, 여우는 인간보다 더 윤리적이며, 선녀들은 방탕했다. 

         귀신들이 인간 세상에 오는 것은 반드시 풀어야 할 원한이 있을 때뿐이다. 대부분 착하게 살다가 억울하게 죽게 된 인간들이 귀신이 되어 착한 사람 앞에 나타나 부탁을 한다. 악인들은 귀신을 보고 놀라기만 할 뿐이지 그들의 서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귀신에게 조차 온정을 베푸는 담대한 이가 그들의 원한을 풀어주면 그 착한 귀신들은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남아 있는 인간 세상은 다시 정화된다. 

        입에 옥구슬을 문 백 년 묵은 여우는 잘 생긴 남자 청년을 꼬신다.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예쁜 여우가 청년을 꼬시는 것은 인간을 사랑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되고 싶은 여우...... 그들을 배반하는 것은 늘 인간이다. 그것도 서방....... 하지만 여우는 서방을 해치지 않는다. 그냥 숲으로 들어간다. 슬펐다. 

선녀들은 또 어떤가? 그들은 춤과, 책,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인간 세상을 기웃 거린다. 인간의 감정인 사랑에 빠져 천상에서 연애를 하다가 그것이 발각되어 하계로 떨어진다. 인자한 옥황상제가 선남선녀에게 내리는 벌은 인간이 되어 고통과 욕망에 휘둘린 삶을 깊이 경험하라는 것이다. 할머니께서는 그걸 설명하시며  “옛다! 먹어라......” 하며 하늘나라에서 구름이 깔린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선녀들을 내던져 버렸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을 때면 마치 내가 천길 하늘에서 땅 아래로 떨어지는 듯 빙글빙글 어지러웠다. 인간이 된 선녀가 고통의 삶을 치러내고 얻는 것은 애욕의 허망함, 삶의 무상함, 그리고 욕망이 없는 천상의 삶에 대한 감사함이다.

          나의 고조모인 곰방대 할머니는 어떻게 손녀딸인 성림에게 그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을까? 그녀도 윗대에서 물려받은 설화일 테지만 말이다. 서사와 담론, 남에게 베풀기를 즐겼던 정 많은 고조할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 맷돌에 치어 몇 날 며칠 열병을 앓은 다음 총명함이 사라지자 깊은 시름에 빠졌다. 여하튼 고조할머니는 자신의 딸을 데려가는 사위에게 많은 땅과 금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거기에 뽑힌 것이 우리 외증조할아버지 최 치원이었다. 그가 뽑힌 것은 음유 시인처럼 잘 생긴 외모에 신을 섬기는 아우라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낭만적이고, 철학적이며, 풍류를 즐기지 않았다면 우리 집안에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고조할머니가 증조할머니를 최 치원과 짝지을 때 어떤 점술가에게 운명을 점쳤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점쟁이는 끗발이 전혀 없는 멍청한 바보였음에 틀림없다. 아니면 신의 도구였을까? 


                                                            *연화의 사랑


         나의 외증조모 연화는 남편 최 치원을 사랑했다. 처음 어머니가 최 치원과의 혼례를 제안했을 때 닳아빠진 옷을 입고 곁눈질로 그녀를 흘끔흘끔 바라보며 고개를 들지 못하는 그에게 묘한 매력을 느꼈다. 최 치원은 조치원 변두리에서 자존심 하나로 근근이 연명하는 몰락한 양반집의 막내아들이었다. 곰방대 할머니가 땅을 내주어 소작을 부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산신당에 제를 올리러 간 할머니가 남루한 옷차림의 청년 최 치원이 새벽달이 지지도 않은 어스름한 때 산신당에서 홀로 절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에게 반하고 말았다. 그 청년은 마치 절을 하기 위해 태어난 듯 보였다. 얼마나 늠름하고 단정하게 절을 하는지 보는 이에게 저절로 보이지 않는 어떤 신성에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었다. 청년은 여느 사람과는 절하는 품행이 달랐다. 우선 꼿꼿이 서 있다가 머리를 땅에 닿도록 깊이 숙인 채 다시 일어서지를 않았다. 마치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온 존재를 낮추고 한참 동안을 멈추어 있었다. 묘한 경건함이 피어올랐다. 곰방대 할머니가 최 치원의 모습에 빠져 그를 바라보고 있을 때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봄 비였다. 아직 새벽달이 이지러지지 않았고 보릿대 향기는 코를 찔렀다. 

   ‘젊은것이 무얼 저리 간청하는고?’ 

   ‘신에게 자신의 원을 간절히 의탁할 수 있는 존재라면 초록 보릿대가 연화산에 꽃을 피우는 심경을 아는 녀석일 게야.......’

        곰방대 할머니는 청년의 이름을 물었고 그의 삶과 사주를 알아본 다음 자신의 데릴사위로 삼기로 결정했다. 연화보다 두 살이 적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외동딸 연화에게 오후 느지막 누군가 찾아올 테니 직접 대문을 열어 주라고 말했다. 대문을 열어주며 연화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빠끔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청년의 눈빛과 몸에 수줍은 연정이 피어올랐다. 가슴이 뛰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았다. 아무런 언 지 없이 누군가와 함께 침묵을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한 촌각의 순간 일치감이 느껴진다. 동자승 같은 한 풋풋한 얼굴에 키가 훤칠하게 큰 그가 좋았다. 연화는 최 치원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최 치원은 조치원 최고의 부호 마님이 왜 자신을 초대하는지 직감했다. 그녀가 자신에게 생시를 묻고 무슨 연유로 새벽 산신당에서 그리도 지성으로 제를 올리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의 얼굴 표정에서 자애로움을 느낀 것이다. 처음 연화당에 들어간 청년 최 치원은 뜰 앞 정자에서 연화를 처음 마주 본 순간 한참 동안 연화의 뭉치 손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하얀 베 보자기로 손을 감싸고 있던 연화가 오늘따라 보자기를 벗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덮었다. 어머니가 그리 하라고 일렀던 것이다. 손가락이 잘려 나가고 살이 뭉뚱그려져 일그러진 작은 살덩이가 가련하고 마음 아렸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빛나고 벅찬 환희감도 있지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겸손하고 가련한 동정만큼 안온하고 평화로운 사랑의 감정은 없다. 그들은 혼례를 올렸다. 오동나무에 꽃이 피고 종달이가 우는 청명절 한가운데였다. 귀신도 쉬어가는 청명에 벚나무에서 도도나의 청동병처럼 스산한 바스락 거림이 들렸다. 곰방대 할머니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운명의 빛은 그녀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인간은 운명을 거스르려 하는 때조차도 실은 그 운명에 순응하는 게 아니던가?

         낮 동안에 최치원은 말이 없었다. 조용히 자기 방에서 책을 읽거나 연못 주위를 돌며 산책을 했다. 물론 산신당에 제를 올리는 일은 절대 소홀하지 않았다. 연화는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고 앞서던 그가 뒤를 돌아 흘긋 곁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때는 쿵하고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밤이 되면 사정은 바뀌었다 최 치원은 너무나 열정적으로 연화를 사랑해 주었다. 그녀의 모든 세포를 다 빨아들일 듯 쓰다듬고 안아주고 자신을 밀착시켰다. 연화는 황홀했고 행복했다. 그들은 둘이 있을 때에만 은밀했다. 낮과 밤의 대비가 더욱 연화를 흔들었다. 연이어 아이들이 태어나고 딸 내외가 서로 극진히 사랑하자 곰방대 할머니는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하나밖에 없는 귀한 딸이 자신의 실수로 맷돌에 치여 오른손을 쓰지 못해 여자구실을 못하는 것이 회한이 되었다. 조치원 일대의 땅과 밭, 많은 노비를 거느리면 무엇하나...... 전을 부칠 수도, 책을 읽는 취미도, 이야기의 기쁨도 풀지 못하고 허약하고 말이 없으니......  그런 그녀가 최 치원과 혼인하여 아이를 다섯이나 낳았다. 처음엔 내외의 금슬이 좋았나 보다. 오빠 둘을 위로하고 맏딸 성림이 태어났을 때 제일 기뻐한 것은 그녀의 외할머니 곰방대 할머니였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에서 자기 자신을 본 것이다. 성림은 외할머니의 사랑을 극진히 받았다. 그리고 사랑과 함께 담바고를 피우는 습성까지도...... 당시 자기 팔 보다도 훨씬 긴 곰방대는 혼자서 탈 릴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은 재를 넣고 불을 붙여야 하고, 다른 이는 그걸 빨아 불을 살려야 했다.      


            눈발이 날리는 겨울밤

            화로에는 밤송이가 타닥거리고

            할머니의 할머니의 이야기를 짓는다.     

            긴 담뱃대에 얽힌 도깨비와 달님

            꿀 같은 이야기에 재는 녹고 녹아

            가녀린 꽃불이 이지러진다.


            “림아, 이리로 와서 힘껏 빨아 보련?”

             할머니가 문지방까지 사지를 뻗은  

             곰방대 끝에 꽃불을 놓으신다.   

             할머니의 곰방대 속에는 

             달콤한 연기가 아니라

             이야기 세계가 일렁거린다.



         겨울이고 밖엔 눈이 내리고 있었을 것이다. 누런 한지를 덧 대놓은 영창으로 이야기를 듣고 싶은 달빛이 기어 들어와 그 파편들로 인해 어릿어릿 눈발 같은 금가루가 쏟아졌겠지...... 늦은 밤, 긴 곰방대를 놋쇠 재떨이에 톡톡 두드리며 할머니의 할머니가 이야기를 풀어내신다. 옆에는 풀 먹인 요가 펼쳐있고 그 생경한 비단 이불의 바스락 거림과 천 조각에서 나는 고운 냄새, 할머니의 여린 입담배 연기, 그리고 들보 위를 번잡하게 줄행랑치는 쥐들의 부산스러움...... 놋쇠 재떨이에 하얀 재가 쌓이는 만큼 이야기 쌓인다. 두둥실, 두둥실.

        상상해 보라. 하얀 눈이 바람에 팔랑거리며 날아오르는 까만 밤, 문창지 너머 분사된 달빛을 보며 비단 이불에 누워있다고...... 풀 먹여 빳빳한 옥양목 요위로 연탄아궁이에서 올라오는 따스한 온기가 퍼지지만 외풍이 심한 방안이라 코끝이 살짝 시려 온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노란 백열전구의 알몸뚱이와 약간 내려앉은 쥐 오줌으로 얼룩진 천장 가장자리이다. 쥐들이 줄달음쳐 지나치는 소리를 들으며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곤두세워 ‘야~옹, 야~옹’ 하고 읊조려본다. 내 옆에는 두 분의 할머니가 누워 계신다. 바로 옆에서 안경을 쓰고 언문책을 읽으시는 외할머니 와 나처럼 천장을 바라보시는 방울 할머니...... “아가! 자냐?” 외할머니께서 이야기를 해 주신다. 나는 백 년을 가로질러 곰방대 할머니께 얘기를 듣는다. 


             “아가...... 양 창곡의 아내가 누구라고 했느냐?”

             “강남홍, 벽성선, 일지연, 윤소저, 황소저”

             “.... 둘은 사람이고, 셋은 선녀....”

             “그렇지, 그렇지... 영특한 것......”

             “하늘에서 낸 사람은 어떻게 된다고 했느냐?”

             “착하게 살다가 죽을 때 좋은 옷을 입은 선남, 선녀가 데리러 와......” 

             “착한 게 무엇이냐?”             

             “사무랑.....ㅅ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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