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뜨는 밤 -포스트코로나시대의 메타픽션-
* 돈 귀신
성림이 커가며 여장부 같은 강단과 지혜로움을 보이자 고조할머니는 내심 흐뭇하셨을 것이다. 글자를 가르치고, 소리꾼을 불렀으며, 전을 부치는 잔치엔 무조건 어린 손녀에게 행주치마를 두르게 했다. 연화는 자신이 못하는 것을 맏딸이 대신하는 것이 기뻤고 극성맞은 어머니의 손에서 놓여나 실컷 꽃을 즐겼다. 연화 할머니는 이름에 걸맞게 연꽃을 좋아했다. 그래서 뒷마당에 꽤 깊은 못을 파고 그곳에 많은 연꽃을 심었다. 연화도가 그려진 병풍이 언제나 외가 대청에 넓게 펼쳐 있던 것이 기억난다. 진홍색 꽃대가 나팔처럼 잎을 벌리고 연못에 닿을 듯 말 듯 아스라이 서있는 모습이 황홀했다. 집안엔 이야기가 진진하고, 그림이 가득했으며, 사람을 좋아하는 외고조모님의 따스함으로 늘 손님들이 북적였다. 전을 부치고, 술을 담고, 시와 이야기가 굴러다녔다. 곰방대할머니는 마을에 형편이 어려운 이웃이 생기면 꼭 도와줘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말씀하셨다. 그 많은 이야기는 어디서 온 것일까......
어느 마을에 사람이 묵기만 하면 죽어 나오는 흉가가 있었다. 꽤 오랫동안 그런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기에 사람들은 그 집 근처는 얼씬 거리지 않았다. 한 나그네가 그 마을을 지나치게 되었다. 묵을 곳이 없어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녔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환대해 주지 않았다. 그는 마을 언저리를 돌다가 마지막에 그 흉가를 발견했다. 비록 부서지고 낡아 색이 바래고 잡초가 무성하게 담벼락을 덮었지만 본체는 크고 웅장한 저택이었다. 나그네는 그렇게 멋진 집이 왜 허물어지고 사람이 살지 않는지 궁금했다. 집안으로 들어간 그는 사랑채에 누울 자리를 찾아 잠이 들었다. 자정이 너머 한 밤중이 되자 마당 밖이 소란스럽고 개가 짖었다. 그는 방문을 열고 마당을 바라보았다. 마당 한가득 퍼렇고 빨간 좀이 온몸에 슨 이상한 괴물들이 떼거지로 몰려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생을 떠돌아다니며 많은 사연을 겪었기에 담대해진 나그네는 몸을 곧추 세우고 당당하게 괴물들을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귀신이면 구천을 떠돌지 말고 천상으로 갈 것이고 요귀면 나쁜 마음을 버리고 썩 꺼져라.”
마당의 괴물들은 나그네의 호탕함을 찬탄했고 그중 가장 흉물스러운 괴물이 몸을 움찍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와 큰 절을 올리고 이야기를 건넨다. 자신들은 이 집 후원 깊은 곳에 묻혀 있는 불쌍한 미물들인데 꼭 밝은 햇빛 아래서 장사를 치러달라고 말이다. 나그네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약속하고 다음 날 사람들을 불러 후원을 파본다. 뜻 밖에도 후원에는 사람이 아니라 수 백 개의 곰팡이 설은 엽전 항아리가 가득 묻혀 있었다.
돈이 귀신이 되어 사람들을 해고지 하다니 이상한 일이기도 하지만...... 고조할머니는 많은 사람의 희원이 담긴 재물을 쓰지 않고 쌓아 두면 재앙이 되어 결국 그 주인을 해친다고 굳게 믿으신 분이었다. 재산이 재앙이 되어 가족들을 해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증조할아버지께서 그런 자선을 행하신 건지, 아니면 여색을 밝히는 부끄러운 욕망을 우회적으로 충족하기 위해 그걸 자선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건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삶을 돌이켜 보았을 때 아마 후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의 외증조부 최 치원은 자신의 처가로부터 많은 재산을 받아 그 덕으로 사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우셨을 것이다. 시와 이야기를 좋아하시던 분이니 분명 풍류를 즐기고 바람기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강한 장모의 휘하에 있어서 자신의 뜻대로 여색을 밝힐 수는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그런 방법을 선택하신 건 아닐까?...... 성림이 열여섯 되던 해, 동네의 궁핍한 과부를 할아버지가 보쌈하시지 않으셨다면 나도 첫사랑과 이루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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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방대할머니에게 끝없는 사랑을 받던 나의 외조모님 또한 옛이야기와 현실의 경계를 따로 두지 않으셨다. 늘 현실과 글 안 밖을 거침없이 넘나드시면서 자유롭게 사유를 하는데 그 품은 넓고도 또 넓었다. 우리는 밥상머리 앞에 누워있거나 장난을 치면 금방 소가 되어 장으로 팔려나가야 했고, 밥풀떼기를 가지고 시커먼 때가 꼬질꼬질 묻을 때까지 조물 딱 거리면 그 콩알만 한 밥알은 집채만 한 불가사리가 되어 온 집 안의 쇠붙이는 다 먹어치웠다. 할머니는 이야기로서 손주들에게 글을 쓰고 계셨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 책을 보다가 어릴 적 할머니께서 들려주던 얘기들과 맞닥뜨릴 때가 있다. 그때의 놀라움과 반가움은 이루 설명할 길이 없다. 마치 할머니를 다시 만난 듯하다.
고독하고 실의에 찬 나는 가을날의 반딧불처럼 희미한 빛이나 내뿜을 따름이니, 어떻게 전대의 선현들에 비길 수가 있겠는가? 스스로의 능력을 헤아리지 않고 하찮은 문장들을 지어 명리를 추구해 보았지만 도리어 귀신들의 비웃음만 살뿐이었다.... 깊은 밤 혼자 앉았노라면 등잔불은 꺼질락 말락 희미하게 깜빡거리고 서재는 쓸쓸하며 책상은 얼음처럼 차갑기만 하다.
포송령은 자신이 왜 희귀한 이야기들을 모으고 그것을 정리하는지 그 이유를 위와 같이 얘기했다. ‘얼음처럼 차가운 책상과 쓸쓸함’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할머니에게 삶은 고독하고 실의에 찬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내게 외증조부인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과 동갑인 동네 친구를 보쌈해 왔던 바로 그날부터 말이다. 사실 보쌈이라는 말은 조선시대의 민간야사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낯설고 촌스러운 관행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런 일이 실재 우리 집안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처갓집에서 많은 재산을 물려받아 조치원 제일 갑부가 된 최 치원은 겁 많은 휴머니스트였다. 그는 물려받은 재산을 가끔은 가난한 사람에게 크게 보시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그 이유는 이웃에 대한 친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우스꽝스러운 걱정 때문이었다. 재물을 쌓아두고 쓰지 않으면 다리에 검은 털이 숭숭 난 돈 귀신이 나타나 온 집안은 폐허로 만들고 식구들이 병에 걸리거나 대가 끊긴다고 굳게 믿었던 장모의 처세술에 동의한 까닭이다. 증조부 최 치원은 그런 걱정을 나눔을 실천하는 것으로 실행하였다. 예를 들어 입에 풀칠하기 힘든 홀아비가 생기면 집에 일꾼으로 쓰고, 과부가 생기면 땅마지기를 나눠주어 먹고살게 했다. 그런데 조금 아이러니한 것은 자식 달린 과부를 도와준다는 명목 하에 보쌈을 해서 하룻밤을 치르고 쌀과 곡식을 대주었다. 그냥은 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