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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 양윤희 Jun 13. 2023

얼굴의 목적

두 달 뜨는 밤-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메타픽션-

                                       *단명을 막아 줄 액막이 서방     


   곰방대 할머니는 갑덕의 뺨을 후려쳤다. 당장 이 집에서 나가라고 호령을 했다. 그러고 나서는 갑덕을 부둥켜안고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토록 집안의 우환을 막아 달라고 제를 올리고, 공양을 하고, 좋은 기운이니 어쩌고 하는 말을 받아들여 발칙한 어린것을 내치지 못했다. 떠돌이 무녀인 천한 것을 피붙이처럼 거두었건만 아무런 액막이도 되지 못하고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갑덕을 씹어 삼켜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좋을고...... 연화야..... 연화야.......”

곰방대 할머니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연화 아씨는 달빛이 데려간 것입니다. 천상이 홀리면 인간은 제 의지로는 당할 수가 없다는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곳이 싫어서라기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 떠나셨으니 마음을 편히 하세요..... 어미를 잃은 어린 손주들을 생각하시고요.”

    “달빛이라니, 달빛이라니...... 그것이 얼마나 마음이 허했으면 달빛에 홀려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단 말이야. 예로부터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질 말라고 했는데 내가 저런 파렴치한 가난뱅이 수컷을 내 딸의 짝으로 점지했으니 내가 죽어야 해... 내가......”

    용을 쓰고 가슴을 친다고 죽은 딸이 살아 돌아올 리도 없고 이미 몸의 기운이 다 빠져 쇠락한 이상 권력을 부릴 수도 없었다. 그런데 평소엔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그녀가 딸이 죽은 후에는 마치 하지 중천의 태양처럼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너무나 신중하게 이 상황을 맞닥뜨렸다. 신이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던 것이다.

   ‘내 복덕이 다 했구나. 인간이 천지의 운과 명을 어찌 거슬리겠나...... 떠날 준비를 해야겠어.’

    곰방대 할머니는 성림을 불러 달덩이 같은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 손녀딸이던가...... 성림까지 어린 나이에 잃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면 무관사주와 단명이라는 운명을 때울 수 있을까...... 그녀는 집요하게 무녀 갑덕을 채근하여 비방을 알아내었다. 성림을 절에 보내던가 아니면 먼저 아내를 하나 여윈 홀아비에게 시집을 보내서 죽은 첫 부인의 명부에 천도재를 올리고 그 명자리에 들어 액막이를 한 후 세속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이런 것들을 무시하고 방편 없이 시집을 보내면 얼마 못 가 병사나 횡사를 한다고 말이다. 꽉 찬 스물 너머에 시집을 가되 반드시 일찍 상처한 홀아비의 재취로 들어가 그 홀아비의 본처가 누리지 못한 명을 이어받는 길 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방은 무관사주에 걸맞은 넉넉한 인품을 지닌 사람이어야 했다. 당시에 스물이 넘어 시집을 가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희귀한 일인 데다 조치원 최고 갑부의 여식이 재취로 시집을 간다는 것 또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고조할머니는 사위 최 치원에게 이런 점사를 받아들여 혼처를 알아보자고 했다. 사랑하는 손녀딸을 비구니로 만들거나 단명하게 만들 수는 절대 없었다. 

    “자네에게 긴 말을 하고 싶지 않네. 연화는 연화의 운명을 산 것이야...... 내 인복이 다 한 것이고...... 하지만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어린 손주들의 복은 지켜줘야겠어. 성림이를 얼른 시집보내야 해! 비구니를 만들 수는 없어. 성림이를 시집보내면 나는 동학사로 들어가겠네. 연화를 위해 제를 올리고 나도 그곳에서 입적할 거야.”  

   최 치원은 망연자실했다. 사랑하는 큰 딸을 재취로 시집보내라니...... 하지만 연화를 잃은 후에는 그 죄책감 때문에 장모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자신이 연화의 남편이 된 것도 이렇게 큰 부를 이루어 어린 첩을 거느리고 사는 것도 모두 타고 난 팔자 때문이라고 믿고 있는 터였다. 게다가 수영과 어린것들이 쫓겨날까 우왕좌왕 장모의 눈치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금지옥엽으로 여기던 연화가 죽은 후 곰방대 할머니의 정신은 왔다 갔다 했지만 어느 한순간 명정함이 올 때면 손주들에 대한 지독한 애착을 보였다. 갑덕과 일진을 보고, 중국에서 들여온 별과 달의 운행에 관한 점책, 주변에 공양하는 일, 불공을 드리고, 찬 우물물로 몸을 정갈히 한 후 지성을 드리는 일에 치중했다. 오랜 세월 동안 처갓집의 풍속에 익숙해진 최 치원은 맏딸의 운명에 무리수를 둘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고민 끝에 장모의 말대로 마을에 상처한 젊은 홀아비를 찾아보라고 사람을 풀었다. 성림, 봉림, 덕림 그리고 그들의 오빠 재서와 희서는 집안 어른들의 터무니없는 행동에 몸서리를 쳤다. 특히 나의 외조모님 성림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최 치원은 맏딸 성림을 자기 방으로 불렀다. 

  “성림아, 미안하구나...... 하지만 이 못난 아비는 너희 외조모님의 뜻을 거슬러 살 수가 없어...... 네 행복을 위한 것이니 따르거라. 홀아비라 해도 반드시 자식이 없는 젊고 똑똑한 청년을 골라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먹고사는 것도 걱정하지 마라. 조치원 끝자락 땅 모두를 떼어 줄 것이야.” 

  성림은 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눈가에서 원망이 구슬처럼 흘러내렸다.

  “아버지, 돌아가신 어머니가 제게 늘 말씀하셨어요. 아라한처럼 자신도 남도 괴롭히지 않는 사람이 되라고...... 저는 아버지와 할머니를 괴롭힐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요즘 제 자신이 너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어요.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요.”  

        

              나는 왜 슬픈 것일까

              태양은 푸른 청파에 함몰되지 않고

              달은 구름에 물들지 않는데

              나는 왜 이렇게 세상사에 번지 울까......    


          

성림은 이상한 운명의 기류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마당에 어린 동생들을 두고 낯선 곳으로 시집을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고 사실 무엇보다도 여태 것 살아온 집을 떠나 새로운 환경으로 삶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 겁이 났다. 그녀는 곰방대 할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기대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녀의 원은 자신의 남편도 데릴사위가 되어 연화정에서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와 자신은 처지가 달랐다. 성림은 무남독녀도 아니었고 이미 최 씨 집안은 아버지의 어린 첩이 줄줄이 아기를 낳아 식구들이 득실거리는 혼란한 장소가 되어가고 있었다. 오빠들은 아버지와 사이가 점점 나빠져 중국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준비 중이었고 틈만 나면 동구 밖으로 뛰어나가 어머니 연화가 즐겨 들었던 서양 나팔을 불어댔다. 연화정 근처에 사는 이웃들은 재서와 희서의 나팔 소리에 가슴이 아렸다. 그 멜로디는 세상의 모든 빛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슬픔과 그리움을 채워 넣는 술잔과 같았다.

    하얀 연 꽃처럼 순하고 아름답던 연화를 그리워하던 곰방대 할머니의 건강은 날로 시들어 가고 있었다. 최 치원은 성림에 뒤이어 봉림과 덕림까지 시집을 보내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모든 것이 흩어지려는 변화의 기류가 온 집안에 가득했다. 성림은 어릴 때부터 점술을 믿는 것이 당연히 몸에 배어 운명적인 것에 반항하거나 그것을 피하려는 마음은 없었다. 단지 그토록 사랑하는 어머니가 슬픔으로 연못에 몸을 던졌다는 사실에 삶에 대한 환멸과 마음속 의문을 삭힐 길이 없었다.    

      

                                                *이성 없는 이성     


      사랑하는 아내가 연못 속으로 사라지고 자신을 친 아들처럼 믿고 많은 재산을 넘겨준 장모가 정신 줄을 놓아버린 지금 최 치원에게 드는 생각은 오로지 이 평지풍파를 평정하고 예전의 평화로움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자신이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자책감에 성황당으로 달려가 뼈가 으스러지도록 삼천 배를 올려보기도 했다. 주체할 수 없는 애욕에 젖어 자신의 딸 또래의 여자아이를 첩으로 들이고 그녀를 내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가책이 되었다. 사실 최 치원은 과부를 보쌈을 해 온 추운 달 밤 자신의 방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작은 여인이 얼마 전 혼마쯔 상점에서 잠시 보았던 꾀죄죄한 아이라는 걸 알고 너무도 놀랐다. 갑자기 닥친 장난 같은 운명이 재미있고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린 수영을 농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성으로는 잘 알고 있었으나 마음이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인간에게 진정 이성이 있긴 한가? 남자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뭘까? 그냥 취향인가? 운명이라고?

   운명이라면 운명 같고 부끄럽다면 부끄러운 그런 첫 만남이 있은 지 수 삼 년이 지났건만 수영을 향한 애욕은 잦아들기는커녕 어린 그녀를 취하면 취할수록 더욱 애가 달았다. 이제 모든 삶의 욕망을 놓아버리고 동학사로 떠난다는 장모를 설득하여 연화정을 예전의 화평함과 정이 넘치는 곳으로 되돌리기는 불가능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찌한단 말인가.’하지만 이제 자신의 아이를 셋이나 낳은 수영을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기엔 이미 그녀에게 너무나 깊숙이 빠져있었다.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그가 의지할 데라곤 갑덕 밖에 없었다. 그나마 갑덕이 수영과 아이들이 이 집에 남을 수 있도록 장모를 설득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가 갑덕에게 들은 이야기는 두 가지였다. 큰 딸 성림을 전처의 명을 이어받을 재취 자리로 얼른 시집을 보내야 한다는 것, 스물 언저리에 요절할 괘가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고 말이다. 또 하나는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 연화의 넋을 기리기 위해 작은 암자를 지어달라고 했다. 암자를 지어주면 자신이 곰방대 할머니를 동학사에서 모셔와 남은 여생 기도를 하며 돌봐주겠다고 하였다. 최 치원은 그 제안이 그리 탐탁지 않았다. 소담한 백설 연꽃처럼 아름다운 성림을 재취로 시집보내라니...... 저리도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딸을...... 하지만 연화처럼 무모하게 성림까지 잃을 수는 없었다. 반드시 젊은 아내가 죽고 자식이 없어야 했다. 그래야 큰 딸이 마음고생을 하지 않고 명과 복을 이어갈 것이니까...... 



                                                    *운명과의 거래



   배꽃이 떨어지는 가을 달밤이다. 자신과 동갑인 수영과 아버지가 줄지어 배 다른 동생을 낳는 것을 어떤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하는 건지 성림은 막막했다. 어머니가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 후 밤이 되면 연화정 정자에 나와 못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연못 속 깊은 용궁에서 불편한 왼 손으로 수를 놓고 계실 것 같았다. 향기가 퍼진다. 가을 배꽃이 달밤에게 스산한 소곤거림을 남발하고 있었다. 성림은 못 주변에서 달맞이 풀을 뽑고 있는 방울을 보았다. 어머니의 기제사 때 보고 한 참 시간이 지난 후였다.

   “어째 초당엔 도통 오지를 않았어? 기다렸는데......” 방울이 말했다.

   “봉림이가 너무 어머니를 찾고 울어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엿을 고아 주느라 곁을 떠날 수 없었어......”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말하지 않는 것이 편안했다.

   “풀은 왜 뽑는 거야? 이 밤에 설마 살살이, 피살이 풀이라도 찾고 있어?”

애써 미소를 띠우며 성림이 물었다. 살살이 풀이라는 말에 방울은 마음이 저려왔다. 연화정 마님을 살아오게 할 수만 있다면 서천서역국의 열 두 지옥의 문은 아니더라도 밤 새 이 연못가의 모든 풀들을 달빛에 요량하여 피살이, 살살이, 뼈살이 풀을 뽑아낼 수 있을 듯했다. 연화는 방울에게 따뜻한 어른이었다.

   “방울아..... 요즘은 무슨 서책을 읽고 있어? 너와 책 이야기 할 때가 제일 환희심이 들거든.”성림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서책은...... 무슨...... 연화정 마님이 돌아가신 후 우리 어머니도 매일 새벽녘 까지 마님을 위해 초당에서 제를 올리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 치다꺼리에 나도 많이 분주했어...... 성림아! 부닥치는 인연을 무슨 수로 모두 몰아낼 수 있겠어. 너에게 닥친 운명을 받아들여...... 힘들어하지 마.”

   가만히 바라보는 방울의 눈빛에 공감이 어리자 성림은 일치감을 느꼈다. 어떤 존재가 있다. 나를 위해 같이 고통스러워하고 나를 바라봐 주는 어떤 존재가...... 그건 신비이며 우주의 기적이다.   

   “울분으로 가슴이 아려와...... 참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믿기지 않는 꿈같은 상황에서 내가 어떤 마음을 먹어야 이 고통에서 해탈할 수 있을까......? 이 집안에서 도망치고 싶어. 오빠들은 중국으로 가겠다고 해.”

   방울은 평소 자신보다 강하고 의연한 성림이 마치 자신을 스승처럼 의지하며 매달리는 것이 애처로워 긴 한숨이 나왔다. 

    “우리 예전에 경전에서 읽은 이야기 생각나니? ‘즉심시불’ 말이야”

방울이 다정한 눈빛으로 말했다. 

    “바보 석두 스님 이야기 말이니?”

    “그래...... 지금 같이 이상하고 터무니없는 운명이라도 너에게 말해주는 진리가 있을 거야. 반드시.”

    성림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무엇이든지 들으면 잊어먹는 바보 스님 석두의 이야기였다. 바보가 주지스님께 부처가 무엇인지 가르쳐 달라고 통사정을 한다. 그를 넌지시 바라보던 그의 스승이 “즉심시불!”하고 답한다. 화두를 주신 것이다. ‘즉심시불’은 현재 바로 이 자리가 불성이고 부처님 뜻이라는 은사였다. 그러나 석두 스님은 스승의 이 말을 ‘짚신시불’(짚신이 곧 부처)로 잘못 알아듣는다. 바보였기 때문이다. 석두는 어떻게 짚신이 부처일 수 있는지 너무나 의아했지만 큰 스님처럼 훌륭하신 분이 내린 화두에 질문을 할 만큼의 자신감이 없었다. 그는 매일 나무를 하고 절간을 청소하며 경전을 읽으면서 마음속으로 “짚신은 부처이다...”, “짚신은 부처이다.”라는 ‘짚신시불’을 웅얼거렸다.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후 석두는 산에서 나무를 지고 내려오다가 비탈길에서 크게 넘어져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일을 겪게 된다. 그가 나무더미와 함께 고꾸라져 비탈진 벼랑을 나뒹굴 때 그의 짚신짝 또한 벗겨져 하늘 위로 빙글빙글 내 던져진다. 낭떠러지에서 짚신과 엉키어 떨어지는 찰나 숨 막히는 두려움 가운데 석두는 삶의 애욕, 생명, 고통, 연기, 짚신과 자신의 유의성 같은 사념이 범벅되며 지금 현재 그와 함께 낭떠러지를 고꾸라져 떨어지는 짚신이 곧 부처라는 것을 환하게 깨친다. 사물과 현상은 분리될 수 없는 일체임을 실감한 것이다. 방울이 성림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오인이던 진리이던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인식은 그저 과정일 뿐이다. 납득할 수 있는 운명이던 터무니없는 운명이던 그것도 아무 상관이 없다. 중생에게 삼라만상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수용의 문제였다.

    “아버지와 할머니가 나를 홀아비에게 시집보내시려 하셔! 너도 알고 있지?” 성림이 물었다. 

    “그럼...... 알고 있지......”

    “네 어머니가 외조모님께 그리해야 내가 명을 유지하고 잘 살 수 있다고 말하신 것 같아. 이런 말도 안 되는 점괘가 있어? 내가 어떻게 가난한 홀아비에게 시집을 가냔 말이야. 이 최 성림이......” 

    분한 마음이 밀려와 성림의 두 볼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재서 오라버니의 친구라고 들었어. 좋은 사람일 거야, 어머니가 너와 사주를 맞추어 보았을 거고...... 어른들이 그러시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거고. 어차피 받아들일 거라면 번뇌에 빠지지 말고 차라리 그 상황에서 네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 어때?”

    “얻을 수 있는 것?”성림은 갑자기 별의 모서리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번쩍 정신이 들었다. 마음을 의지하는 벗의 조언이었다. 그녀와 함께 주역, 언문책, 중국고전을 탐닉하며 인간의 운명과 삶의 비밀을 캐내기로 작정하지 않았었나? 그 책들에는 삶이 무엇이라고 쓰여 있었던가......

    사실 성림은 아버지의 뜻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마당에 외조모의 원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최 치원은 성림을 큰 아들 재서의 친구 웅이에게 시집보내기로 결정한다. 웅이는 재서와 공주에 있는 고보(고등보통학교)에 함께 다니는 친구였다. 집이 가난하여 오후에는 일본사람이 운영하는 양은 가게에서 장부를 정리하여 대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장 씨 집안의 장남이다. 최 치원은 가난하지만 배움이 있고 갑덕의 말대로 전처를 일찍 여윈 웅이가 성림의 가장 적격 한 짝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장 씨 집안에서 청혼을 받아들일 경우 큰 재산을 떼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장 씨 집안한테는 더 없는 횡재였다.

    성림은 우선 오빠의 학교 앞에서 웅이의 모습을 몰래 훔쳐보기로 마음먹었다.

   “생김새를 먼저 본 후에 시집을 갈지 말지를 결정해야겠어......”     


                           

                                                         *얼굴의 목적           

 


  얼굴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리고 시선이라는 것은...... 재서 오라버니가 시들어 빠진 고사리 같은 웅이를 교문 앞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의 얼굴은 가장 헐벗고 궁핍한 상태로 머물러 있는 듯 보였다. 분명 눈, 코, 입이 다 붙어 있는가를 확인해야 할 것 같은 허전함이 노출되어 있었다. 쓰개치마를 뒤집어 두른 성림과 방울이 총총걸음으로 재서 곁으로 다가갔다. 

    “극성은....

.. 하하하......”

재서가 앙팡진 두 여인네를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렸다.

    “기연히 왔구나...... 무를 수도 없는 혼사에 무슨 확신을 얻겠다는 것이야? 이미 아버지께서 웅이네로 많은 볏짐을 보내셨어......”

오빠의 호탕한 목소리에 성림은 화가 올라왔다. 

     “싫으면 일본으로 내뺄 거예요.”

     “그래?”재서가 마음이 아픈 듯 동생을 내려다본다. 바로 그때 그런 이야기에 전혀 반응이 없는 정직한 시선이 성림에게 다가왔다. 어떤 태도나 표정을 취하려는 의지가 없는 무념의 바라봄이었다. 성림은 갑자기 그가 입이 있는지 얼굴을 더듬어 입술을 찾았다. 잠시지만 깊고 깊은 침묵이 허공에 무거운 어색함을 퍼뜨렸기 때문이다.


  옛날 옛적에 너무나 재물을 아끼는 구두쇠 총각이 살고 있었단다. 그는 나이가 들어 장가를 가야 했지만 색시가 먹을 삼 시 세끼의 쌀을 생각하면 절대 장가가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어... 아끼고 또 아끼면서 열심히 일 한 대가로 근사한 초가집도 사고, 소도 샀지만 그래도 그 구두쇠는 여자를 멀리 했지. 어느 달 밤 그는 곰곰이 생각했어. ‘외롭구나... 장가를 가야겠어. 세상에서 제일 밥을 조금 먹는 색시를 얻으면 될 거야.’라고......

    총각은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밥을 조금 먹는 여자를 찾아 유랑을 떠났다는구나. 어느 날 그 구두쇠는 세상에서 제일 큰 보물을 얻은 듯 횡재를 했지 뭐야. 입이 없는 색시감을 만나게 된 거야. 입이 없다니...... 혼기가 찬 부지런한 처녀인데 함지박 한 얼굴에 눈과 코만 있는 거야. 입이 없었어. 구두쇠는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그녀를 색시로 맞이했지. 입이 없으니 밥을 어디로 먹겠느냐? 장가를 들고 몇 날 며칠을 색시는 밥도 먹지 않고 열심히 길쌈만 했어. 구두쇠는 흐뭇하고 만족했단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곳간에 쌀이 푹 푹 없어지는 거야. 구두쇠 자신은 조금만 먹고 찾아오는 손님도 없는데 말이지. 이상한 기운을 느끼던 구두쇠는 어느 날 나무를 하러 산에 갔다 오겠다고 색시에게 거짓말을 한 후 몰래 처마 밑에서 동정을 살폈지. 해가 중천에 뜬 정오가 되자 색시가 부스럭거리며 부엌으로 들어갔어. 그러더니 군불을 있는 대로 떼며 커다란 가마솥에 엄청난 양의 밥을 짓는 거야. 저게 떡이냐, 밥이냐, 구두쇠는 어안이 벙벙했지. 자신은 저녁때 해가 질 때쯤이나 오겠다고 했기에 서방을 위해 점심밥을 짓는 것도 아니잖아? ‘오라, 저 년이 남정네가 있나 보구나.’ 구두쇠는 몰래 들어오는 외간 남자를 보기 위해 숨어서 기다렸어. 그런데 아무리 바깥을 서성여도 오는 사람이 없었어. 잠시 후 밥이 다 되자 색시는 그 무거운 무쇠 솥단지를 번쩍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지. 구두쇠는 영창을 통해 까치발을 띠고 방 안을 들여다보았어. 색시는 방바닥에 앉아 솥뚜껑을 열더니 갑자기 비녀를 쑥 빼었어. 긴 머리가 철렁 등짝으로 내려왔지. 머리가 내려오자 색시는 고개를 옆으로 비틀며 머리를 제켰어. 그 모습에 구두쇠 서방은 기절초풍을 했지. 가렸던 뒷목 바로 윗부분에 옆으로 쭉 째진 커다란 입이 붙어 있는 거야. 보통 사람의 세 배는 더 되는 커다란 입이...... 색시는 뒷목덜미에 붙은 입을 쩍 벌리고 수저도 아닌 커다란 주걱으로 밥을 퍼 넣기 시작했어. 입이 아니라 주머니라고 하는 편이 나았어. 씹지도 않고 퍼 넣은 밥은 순식간에 큰 가마솥을 텅 비게 만들었지. 구두쇠는 넋을 잃었고... 색시는 밥을 다 먹은 후 머리를 단정히 한 후 비녀를 꽂았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 세상사는 그런 거란다....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리면 그 업보만큼 손실을 당하느니라......            



까치발을 띠고 당돌하게 바라본 웅이는 헌헌장부가 아니었다. 피죽도 못 먹은 말상에 마치 입이 목 뒷덜미에 붙은 구두쇠의 아낙처럼 헐벗은 채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성림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그와 함께 거부할 수 없는 동정과 연민이 피어올랐다. 그의 눈빛에서 이상한 기류를 느낀 것이다. 입이 없는 듯 과묵한 청년은 모든 것을 성림에게 주겠다는 눈빛을 띠고 있었다. 아니 맡긴다고 해야 할까? 남정네로서의 자존심이 전혀 없는......‘심배가 전혀 없어 보여.’저런 못나 보이는 사람을 서방으로 얻느니 어머니가 주신 금붙이 몇 개를 보따리에 싸서 오빠들보다 먼저 일본으로 도망치는 것이 수가 아닐까? 하는 얕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잠시 시간이 지나자 맏딸인 자신이 집을 나갈 경우 정림과 봉림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 두고두고 걱정이 되었다. 또한 입이 없는 듯 보이는 그 사내에게 무거운 마음의 빚을 지는 듯도.....

 ‘이상하구나.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그 눈빛이 모든 걸 원하는 듯 무겁구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연화정을 떠난 지금 어린 첩년에게 마음을 잃은 아버지를 믿을 수가 있을까?... 게다가 그 입이 없는 사내는 왜 나를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가.......           

                    

                                                         *              *             *


    웅이를 보고 집에 돌아온 성림은 시름에 잠겼다. 혼례 날짜가 정해지고 장 씨 집안으로 갈 예물을 준비하느라 갑덕과 방울은 정신이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집안 여자들이 해야 할 큰일은 갑덕 모녀의 소관이었다. 동정 말고는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관상이다.‘어쩌면 좋을까...... 혼례를 올리고 장 씨 집안의 며느리가 되어 그 가난한 집구석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여자가 시집을 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마치 분갈이되는 식물처럼 자리바꿈을 한다. 토양도, 공기도, 하늘도 다른 곳으로 남편이라는 하나의 연계점에 의지하여 말이다. 시부모를 공양하고, 자식을 낳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성림은 삶에서 여인으로서 누려야 할 행복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어머니처럼 살기는 싫어.....’  

무엇보다도 남녀의 정에 대한 환멸감이 왔다. 아버지는 가난한 청년으로 할머니의 눈에 들어 연화정의 주인이 되었다. 처음엔 어머니를 사랑하고 그 여인의 살과 향기에 심취하여 자신의 삶이 하늘의 축복을 받은 안온한 것이라 여기며 행복을 만끽했을 것이다. 갑자기 하늘의 복이 굴러 떨어져 들어온 것과 다름없는 인간이 누려야 할 세속의 조건이 모두 완성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왜...... 아버지는 그걸 유지하지 못하고 또 다른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신 걸까...... 성황당 신령님께 꼿꼿하게 재를 올리며 아버지는 무얼 희원하신 걸까......

   욕정?

   욕심?

   또 다른 소유?   

인간은 무엇인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소유했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소유, 소유, 소유.... 그런데 우리가 무엇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먹는 것을 빼면 인간이 어떤 사물을 완전하게 소유했다 할 수 있는가? 물질이라면 소유라는 것은 곁에 두고 어제든지 대하거나 만질 수 있는 것이요, 사유로 소유한다는 것은 내가  어떤 상념을 내 자유자재로 마음에서 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만지거나, 대하거나, 마음에서 일으키는 것을 제외하면 우리가 소유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 만짐이나 대함이 반복을 하게 되면 처음의 고유성이 슬슬 빠져나가고, 사유도 자극이라는 촉매제가 없으면 마치 부싯돌이 부딪침 없이 불을 일으키지 못하듯 강렬하게 일지 않으니 결국 인간이 무엇인가를 영속적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구나...... 돌도 계속 갈면 닳아 없어지듯 물질도 사유도 시간에 의해 침식된다는 것이다.  

    ‘그래, 인간 세상에서 구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 나를 사로잡는 서방을 만나던  입이 없는 서방을 만나던 나와는 관계가 없어. 나는 그냥 나이고, 내가 정한 재미있는 것들로 삶의 시간을 채워나가면 그뿐이야. 재밌게 사는 것, 그것이 내가 이승에서 버티는 힘이야. 어머니도 아버지에게서 재미를 얻지 않고 스스로 닳아 없어지지 않을 재미를 가지셨다면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지는 않으셨을 거야......’

   성림은 밤이 새도록 여러 가지 생각에 골몰하였다. 그녀가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우선 삶을 다른 이의 감정에 침식당하지 않고 자신만의 재미로 채워나가려면 여성으로서의 의무에서 벗어나야 했다. 세속의 일...... 하루 종일의 허드렛일에서의 해방.......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서책에 언제든 빠져들 수 있는 주변의 존중, 그리고 외조모에게 배운 곰방대라는 취미였다.

   “그래! 책, 집안일에서의 놓여남, 곰방대 그 세 가지를 조건으로 장 씨 집안으로 시집을 가자. 입이 없는 과묵한 오라버니의 친구가 받아줄 것도 같으니......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무엇인가는 버릴 줄도 알아야지!”

    성림의 기분은 보름달처럼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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