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로는 다 담을 수 없었던 마음에 대하여
장안대학교 상담재활복지학과 성인반, 1년을 마치며 주고받은 마음장안대학교 상담재활복지학과 성인반, 1
마치며 주고받은 마음
12월 어느 주말 아침, 양평의 기온은 영하 10도였다. 성적표에 담기지 못한 마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차가운 공기를 뚫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 년동안 함께 걸어온 학생들에게 마지막 피드백을 보냈다.
상대평가라는 제도 안에서 매겨진 숫자들, 그 숫자 뒤에 끝내 다 전하지 못한 말들이 마음에 남아 몇 번이고 문장을 고쳐 썼다.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진심을 조금이라도 더 전하고 싶었다. 성적은 이미 입력되었고 점수는 정직했지만 마음까지 옮기기에는 부족했다. 교수로서의 마음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시 후 따뜻한 답글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한 문장 한 문장, 조심스럽게 건네는 마음들이 차가운 화면 위에 차곡차곡 쌓여 갔다. 그 문장들을 읽는 동안 가슴이 뜨거워졌고 나는 잠시 성적을 매기는 교수가 아니라 누군가의 한 시절을 잠시 함께 걸어준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마음들을 흩어버리기 아쉬워 성적표 대신 한 편의 글로 이렇게 남긴다.
영하 10도의 토요일 아침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나는 당신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각자의 삶을 안고 강의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 일과 가족 건강과 시간 사이에서 쉽지 않은 선택을 하며 끝내 이 자리에 도착한 사람들.
강점 관점의 이론을 자신의 삶과 겹쳐 이해하려 애썼고, 윤리와 관계 존엄과 태도를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배우려 했다. 학교의 규정이라는 자루에 당신들의 열정을 다 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모두가 가장 높은 점수였다.
“교수님의 마음이 제게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각오했던 결과 앞에서 오히려 더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게 된 자기 자신의 용기를 응원하겠다고 했다. 성적은 성적일 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배웠다는 고백 앞에서 나의 미안함은 조용히 감사함으로 바뀌었다. “아무 준비 없이 학교 문턱을 넘고 보니 이게 제 인생의 마지막 준비 같았습니다.” 생소한 직업으로 방향을 틀기 위해 쉼 없이 달려온 누군가는 인생의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 줄 알았다면 좀 더 일찍 시작했을 텐데 하며 시린 마음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늦은 시작은 없다는 것을.
아흔세 살 노모에게 재롱을 부리며 웃는 그 마음 안에 이미 사회복지의 본질인 ‘사람을 향한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성적과는 별개로 제가 어떤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현장의 장면을 떠올리며 자기 결정권을 다시 생각해 보겠다는 다짐. 교수님의 웃는 얼굴이 떠올라 힘이 났다는 응원. 다음 학기에는 함께하지 못해 무척 아쉽다는 인사까지. 이 모든 문장이 모여 영하 10도의 아침을 데우는 하나의 난로가 되었다.
“교수님의 글 속에서 나를 추억할 기억을 찾았고 나를 돌아볼 거울을 얻었습니다.” 감동이라는 말로 되돌아온 피드백, 존경이라는 과분한 표현들. 이 아쉬운 마무리가 어쩌면 가장 따뜻한 시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우리가 만난 이 시간은 점수로 환산할 수 없는 생의 무늬가 될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는 익살스러운 인사 뒤로 소중하게 새기겠다는 약속을 남기며 우리는 잠시 이별한다.
우리는 이제 강의실의 문을 닫고 각자의 현장으로 흩어진다. 누군가는 양평의 맑은 공기를 찾아 따뜻한 인사를 건네러 올 것이다. 누군가는 이곳 브런치의 글숲에서 조용히 인연을 이어갈지도 모른다.
당신들이 내게 준 것은 단순한 과제가 아니었다. 사람을 향한 진심이었다. 그대들, 부디 건강하기를. “건강이 최고입니다”라고 보내준 그 투박한 진심을 나도 그대로 돌려보낸다. 우리가 함께한 이 1년이 앞으로 당신들이 걸어갈 길에서 든든한 지팡이가 되기를 조용히 소망해 본다.
덧붙이는 글
점수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였고 이론보다 빛난 것은 삶이었다. 이 강의는 여러분의 태도와 열정으로 비로소 의미를 얻었다. 장안대학교 상담재활복지학과 성인반 학생 여러분. 여러분은 이미 누군가의 삶 앞에 조심스럽게 설 줄 아는 사람들이다. 가르친 사람보다 더 많이 배운 쪽은 언제나 나였다. 배움이란 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 질문하려는 태도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사회복지사 #교수와제자 #성인학습자 #인생수업 #종강 #겸임교수 #혜솔황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