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원장님의 설날 소회
아이들에게 설날은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다. 돈의 가치를 다 알지는 못해도, 복주머니가 달린 봉투와 단정히 포장된 선물을 손에 쥐는 순간 표정이 먼저 달라진다. 특히 건강을 위해 평소 철저히 제한해 왔던 과자와 사탕이 이날만큼은 상 위에 오른다. 그 작은 약속 하나에 아이들은 금세 자세를 고쳐 앉는다.
아이들은 짐짓 진지한 얼굴로 무릎을 꿇는다. 아직 예절의 깊은 뜻을 다 알지는 못한다. 다만, 고개를 숙이면 선생님들이 웃어준다는 것,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면 칭찬을 받는다는 것을 몸으로 익힌다. 절은 그렇게 흉내에서 시작해 습관이 되고, 습관은 언젠가 태도가 된다.
교실에는 가래떡과 도마, 안전 칼이 놓인다. 그러나 떡국의 ‘미래의 맛’보다 아이들에게 더 급한 것은 눈앞의 말랑하고 쫀득한 ‘지금의 맛’이다. 썰기가 무섭게 입으로 가져가는 아이들 덕분에 교실은 어느새 왁자지껄한 작은 잔칫집이 된다. 서툰 손으로 가래떡을 잡고 썰어보는 그 순간, 아이들은 설명 보다 먼저 명절을 경험한다. 무병장수의 뜻은 몰라도 “이건 새해에 먹는 거야”라는 말을 들으며 한 해의 시작을 몸에 얹는다.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의 국민학교 시절 설날이 떠오른다. 그 시절은 모두가 배고프고 부족했다. 세뱃돈은 받을 수 있을지 기대조차 하지 못했고, 일 년에 한두 번 입는 새 옷의 깔끔함과 평소보다 조금 더 오른 고기반찬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돈의 액수보다 ‘새것’이 주는 설렘에 취해 동네를 누비던 그 소박한 기쁨이 오늘날 나를 지탱하는 정서적 뿌리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이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자리에서 맞는 명절은 가볍지 않다. 명절은 기쁨이지만, 동시에 책임의 얼굴로 다가온다. 챙겨야 할 것들을 하나씩 헤아리는 순간, 마음속 계산기가 조용히 돌아간다. 숫자는 생각보다 냉정하다. 곁에서 고생하는 선생님들과 고마운 이들에게 더 넉넉히 전하고 싶은 마음은 넓은데, 현실은 그만큼 따라오지 못한다. 빈 장부를 덮으며 나는 문득 부모님이 건네주시던 작은 봉투를 떠올린다. 나의 얇은 봉투가 부끄러워질 때마다, 그 시절 부모님의 더 얇았을 봉투 안에 담겨 있었을 무게를 이제야 조금 헤아린다.
그래도 명절은 온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준비한다. 아이들에게는 어른의 사정을 들려줄 이유가 없으니까.
“엉덩이는 하늘로, 마음은 낮은 곳으로.”
절을 하다 옆으로 데굴 구르는 아이, 머리만 콕 박고 엉덩이를 번쩍 든 아이, 인사보다 먼저 손을 내미는 아이. 그 무해한 풍경 앞에서 무겁게 짓누르던 현실의 계산기가 잠시 멈춘다. 아직은 어설픈 몸짓이지만, 그 안에는 어른에게 고개를 숙여보는 첫 연습이 담겨 있다.
아이들의 명절과 어른의 명절은 다르다. 아이들은 받는 기쁨을 배우고, 어른은 감당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같은 온기를 찾는다. 고개를 숙이고, 감사를 건네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순간들. 아이들이 하루의 주인공이라면, 어른은 그 무대를 지켜내는 사람이다. 여전히 현실은 가파르지만, 아이들이 절을 마치고 환하게 고개를 드는 순간 나는 다시 스스로에게 말한다.
괜찮다.
잘 될 것이다.
나는 다시 얇은 봉투 속에
숫자로는 다 적지 못할
두툼한 진심을
꾹꾹 눌러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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