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 김의진
손은 왜 두 개뿐일까? 쥐고 싶은건 너무 많은데 손이 모자라. 내 몸뚱이에 붙어있는 게 고작 두 개뿐이라 머릿속은 항상 고민으로 가득하다. 천수관음보살이 자비로울 수 있는 건 손이 천 개나 있기 때문이야. 그분도 우리처럼 손이 두 개면 아무것도 못할걸.
나는 풍선 주위를 늘 서성인다. 그때마다 움켜쥔 손을 보며 생각한다. 뭘 놓아야 저 풍선을 잡을 수 있을까? 어떤 걸 포기해야 덜 후회하고 덜 손해 볼지 재고 고민하고 다시 또 잰다. 순간의 결정에는 미련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손을 펼치려 해도 저 위에 떠다니는 동그란 것을 잡을 자신이 없어 다시 힘껏 움켜쥐었다. 살짝 땀이 난다. 헬륨을 얼마나 마셨길래 저리 높이 떠있는지 내게는 아득할 정도로 멀게 느껴졌다. 손이 없으면 발로 잡을 수는 없을까? 아니면 입으로 물어볼까? 터무니없는 생각은 언제나 상상에서 그친다. 나는 바람 따라 날아가는 풍선을 계속 쫓았다. 시야에서 벗어나면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따라가기만 한지도 벌써 몇 시간이 흘러 구름과 나무와 길도 전보다 어둑해졌다. 이제는 풍선도 희미하게 형태만 보였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손이 가득 차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나는 늦은 결단이라도 내려야만 했다. 최대한 자세히 보고 기억했다가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보자고. 어두워서인지 살짝 보랏빛을 띠는 것 같기도 했고 가느다란 실이 유연하게 나풀거렸다. 기억하자. 기억하고 내일 꼭 찾자. 나는 풍선이 사라져 안 보일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풍선은 조용히 구름 뒤로 숨었고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나는 공허한 마음을 달래려 가득 찬 손을 더욱 꽉 쥐고 집으로 돌아갔다.
두 번의 어색한 만남과 두 번의 애틋한 이별을 지나 조금은 무뎠던 세 번째 만남이었다. 뜨겁고 깜깜한 70일을 버텨 자대 배치를 받았지만 아직도 16개월이 더 남았다는 사실이 절망적이었다.
101대대는 동기 생활관을 원칙으로 했지만 부대 사정상 완전한 분리는 어려웠다. 이제 막 이등병 계급을 달았던 나는 아무것도 몰랐고 화장실 가는 길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과연 이 중에 내 동기는 누구일까? 혹시 아무도 없나? 저기 저 팔 두꺼운 분이 내 선임? 아니면 저기 누워서 자고 있는 분이 내 동기일까? 저분은 되게 나이가 있어 보인다... 나는 한 명 한 명 조심히 관찰하면서 분위기를 파악했다. 조금이라도 실수할까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신경이 곤두서있던 와중에 티비 옆 침대 끝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친구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데... 되게 편해 보인다.. 내가 의진이를 처음 본 순간이었다.
두 번째 장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하게 본인 소개 부탁드릴게요.
김의진 : 저는 김성연 씨 군대 동기 김의진이라고 합니다. 연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했고 9월부터 이온트랩 양자 컴퓨터를 연구하러 갈 예정입니다.
대학원 합격 정말 축하드려요. 그럼 가볍게 첫 만남 얘기부터 나눠볼게요. 제 첫인상에 대해서 기억나는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김의진 : 음... 점호 때 반듯하게 앉아있는 모습.. 근데 마스크를 안 써서 항상 지적받던 모습이 생각나요.
반듯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말 안 듣는 이미지였네요. 그때 한창 코로나가 유행했던 시기라 잠잘 때도 마스크를 착용했잖아요. 너무 답답했어요.
의진 씨는 되게 조용히 앉아있던 걸로 기억해요. 저는 경계심이 많은 편이라 낯도 좀 가리고 먼저 못 다가가거든요. 근데 의진 씨는 왠지 저랑 결이 맞을 것 같았어요. 선을 넘지 않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편안함이 있어요.
군대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과 좋았던 점은 뭐예요?
김의진 : 저는 주도적으로 살고 본인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근데 군대는 선택해서 오는 게 아니잖아요. 의무니까. 원하지 않은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죠. "군대까지 와서 내가 이걸 왜 해야 되지?"라는 생각이 드는데 스스로도 할 말이 없더라고요. 동기를 찾지 못한 거죠. 그래도 인편(1) 받는 감성은 되게 좋았어요.
(1) 인터넷 편지
너무 좋죠. 훈련 끝나면 인편만 기다리잖아요. 얼마 전에 이사하면서 보관하고 있던 인편을 다시 꺼내봤는데 그때의 감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군대에 들어가서 좋았던 점이 핸드폰이 없는 거였어요. 초반에는 세상이랑 단절된 기분이었는데 적응한 뒤로는 오히려 현실에 더 집중할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덕분에 훈련소 동기들이랑 더 끈끈해지고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많이 만들 수 있었어요.
연구하게 될 "양자 컴퓨터'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김의진 : 고전 컴퓨터와 양자 컴퓨터의 원리를 비교해서 설명하는 게 가장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요. 고전 컴퓨터는 비트(1)를 기본 단위로 삼아서 정보들을 처리하는데 이게 근본적인 한계가 있어요. 어떤 특정한 알고리즘의 경우에는 비트 수가 1개 늘어날 때마다 처리해야 되는 정보량이 지수(2) 배로 증가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양자 컴퓨터는 큐비트(3)를 기본 단위로 사용해요. 그렇게 되면 0과 1 사이에 중첩된 상태가 가능해져서 지수적인 계산을 기하급수로 줄일 수 있는 거죠.
(1) 0과 1로 구분되는 디지털 데이터의 최하위 단위
(2) 거듭제곱을 나타내는 숫자
(3) 양자 정보 시스템에서 사용되는 최소 정보 단위인 '퀀텀비트'의 줄임말
그러니까 방대한 정보량을 훨씬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라는 거죠?
김의진 : 그렇죠. 암호를 해석하는 알고리즘이나 물리 현상을 시뮬레이션하는 경우는 계산 성능이 아무리 높아져도 근본적인 한계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서 어떤 물질을 시뮬레이션하려고 하면 그 분자 수가 50개만 돼도 엄밀한 계산이 불가능해요. 경우의 수가 너무 많으니까. 2의 50승 하면 우주의 나이 정도 되는 시간 동안 계산해야 할 수도 있어요. 근데 양자 컴퓨터를 사용하면 계산 가능한 정도로 줄일 수 있다는 거죠. 이런 접근 방식이 이론적으로 증명돼서 많은 물리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어요.
그럼 양자 컴퓨터를 연구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뭐예요?
김의진 : 정말 간단한데 재밌어 보였어요. 저는 물리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직장을 구하고 높은 연봉을 받는 쪽에는 오히려 뜻이 없어요. 물리를 좋아하니까 내가 가진 지식을 써먹으면서 재미있게 일하고 싶었어요. 물리는 선택할 수 있는 분야도 다양하거든요. 엔지니어링 쪽으로 빠져도 많고요. 그중에서 뭘 하고 싶은지 고민했을 때 양자 컴퓨팅 분야가 제일 재밌을 것 같았어요. 그 안에서도 하드웨어 개발은 고도의 물리학과 수많은 논리가 필요하거든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잠깐 인턴 생활을 했는데 그때 엔지니어링을 배웠어요. 이 분야가 엔지니어링 역량도 되게 중요하거든요.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건 확고한 비전이 있어요. 목표가 높은 만큼 구현하기 어려운 기술이긴 한데.. 그만큼 발전했을 때 포텐셜도 굉장히 클 거라 믿어요. 충분히 의미 있는 과정이 될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가능성을 기대하세요?
김의진 : 양자 시뮬레이션이요. 예를 들어서 금과 산소라는 물질의 화학반응을 촉진시키는 촉매를 만든다고 가정했을 때 그 화합물을 찾아내는 과정이 속된 말로 노가다거든요. 좋은 반응이 나올 때까지 일일이 다 실험해야 하는 거예요. 특히 재료나 고체 물리, 화학 분야 실험이 이런 경향이 강한데, 양자 컴퓨터를 사용해서 시뮬레이션을 엄밀하게 돌릴 수 있다면 실험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거죠.
화학 비료의 발명이 인구수의 증가와 기아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했잖아요. 그런 것처럼 새로운 촉매나 이로운 화학반응을 양자 컴퓨터로 빠르게 찾아낼 수 있다면 과학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거라 믿어요.
평소 즐겨하는 취미는 뭐예요?
김의진 : 저는 클라이밍이요. 활동적이면서도 경쟁심과 투쟁심을 일으키는 스포츠라 더 재밌어요.
그래요? 전 오히려 혼자 하는 스포츠라 경쟁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어요.
김의진 : 클라이밍은 단계별로 난이도가 정해져 있어요. 어려운 문제를 마주했을 때 투쟁심이 생기죠.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내 수준을 더 끌어올리겠다'는 마음이요.
저는 클라이밍에서 암벽을 '문제'라고 표현하는 게 재밌더라고요.
김의진 : 실제로 홀드를 잡을 때 어떤 자세로 어느 쪽 손을 먼저 내밀지 생각하면서 올라가거든요. 분석하고 전략을 짜야 더 안정적으로 올라갈 수 있어요. 그렇게 고민했던 문제들은 풀었을 때 오는 성취감도 되게 커요.
의진 씨는 흔들릴 때 어떻게 스스로를 다잡나요?
김의진 : 대학교 3학년 때 연구실에서 6개월 정도 인턴 생활을 했어요. 그때 교수님이랑 선배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죠. 사실은 저도 망설임이 되게 많았는데 "일단 해봐"라는 교수님의 말이 생각을 바꾼 계기가 됐어요. 생각해 보니까 잃을 게 없더라고요.
교수님께서 던져준 주제를 가지고 두 달 정도 열심히 발표 준비를 했어요. 근데 제가 긴장을 너무 많이 한 거예요.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해서 부담을 많이 느꼈나 봐요. 교수님이 인상 깊게 들었다고 칭찬해 주실 정도로 내용 자체는 좋았는데 말을 너무 절었어요.
그때 저를 도와줬던 직속 선배도 되게 잘했다고 칭찬을 했는데 제가 인정을 안 했어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긴장해서 망쳤다는 식으로 반응을 하니까 선배가 "잘했는데 왜 그렇게 자책해요?"라고 말해주는데 그때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잘한 건 잘한 거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스스로 채찍질만 했던 거예요. 근데 그 한마디가 틀을 깨준 것 같아요.
의진 씨는 정말 단단한 사람인 것 같아요. 스스로 뭘 원하는지 알고 묵묵히 나아가는 게 보여서 더 응원하게 되고요. 물론 과정 속에서 실수도 하고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겠죠.
서로 일상을 공유하지는 않지만 가끔씩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항상 그전보다 더 성장한 게 느껴졌어요. 그때마다 속으로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김의진 : '단단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굉장히 감사한데 그러려고 저도 되게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근데 그러려면 역설적으로 많이 흔들려 봐야 해요.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고 시도한 경험들이 쌓이면 그 후에는 흔들릴 게 없죠. 선택에 책임을 지면 되니까.
제 주변에 보고 배우고 싶은 사람이 몇 명 있어요. 그 안에는 의진 씨도 있는데, 또 다른 한 명이 저희 누나예요. 누나도 굉장히 주도적인 사람이거든요. 경험의 소중함을 알고 자유를 사랑해요. 되게 멋있어요. 운동을 정말 좋아하고 잘해요. 특히 스키를 굉장히 좋아해서 새벽 일찍 출발해서 스키를 타고 애들을 가르치고 사업을 구상할 정도로 열심히 사는데 그 모습이 존경스럽더라고요. 그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걸 항상 느껴요.
김의진 : 사실 이렇게 말하면 그 이후로 정말 안 흔들린 사람이었을 것 같지만 딱히 그것도 아니고 당장 몇 달 전만 해도 취업을 할지 대학원을 갈지 고민하면서 같이 준비했는데 그때도 엄청 불안했거든요. 다들 흔들리면서 살지 않나 싶어요.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안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죠. 바라는 게 있고 성취하고 싶은 게 있으면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겠죠.
제 말에 조금씩 모순이 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이 순간에도 계속 생각이 바뀌고 있어요. 한결같고 우직한 내가 되길 바라지만 사실 변화가 없다는 건 주도성을 잃은 거 아닌가? 변할 수 있다는 게 진짜 살아있는 거 아닌가?
용기를 가지고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게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매 순간이 선택이니까. 맨날 똑같은 결정을 하는 것도 식상하잖아요. 적어도 저는 숨 막힐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많이 깨닫고 있어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바라는 삶의 모양을 알아가는 중이에요.
원하지 않는 것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
시작하기도 전에 안정적인 조건들을 따지며 가능성을 좁히고 싶지 않다.
타인의 생각에 잠식되고 싶지 않다.
움츠러들고 싶지 않고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
숨기고 싶지 않고 떳떳해지고 싶다.
내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고 무언가에 지독히 절실하고 싶다.
마음껏 실패하고 싶고 천천히 나아가고 싶다.
내가 누군지 잘 알고 싶다.
최근에 체스도 자주 두신다고요?
김의진 : 예전부터 즐겨했어요. 미쳐있을 때는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면서 했죠. 친구들이 체스에 미친 사람이라고 할 정도였어요. 제가 다다음 주면 포항으로 내려가는데 그전까지 쉬고 있는 상태라서 오랜만에 체스나 해볼까 하고 최근에 또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동창 중에 개발자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랑 체스를 몇 번 두다가 사이드 프로젝트로 체스 엔진을 구현하게 됐죠. 심심하기도 했고 재밌을 것 같아서요. 제가 회사에서 코딩 업무를 맡았을 때 그 친구랑 일을 같이 했었어요. 걔가 저랑 일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얘기를 들으면서 궁금한 점이 생겼는데 의진 씨는 일 할 때 어떤 사람이에요?
김의진 : 음.. 주도적이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 같아요. 표현이 구체적이지 않아서 제 경험을 덧붙여 얘기해 보면 제가 회사에 들어가서 처음 맡은 업무가 개발 중인 시제품의 코드 구축이었어요. 논문을 바탕으로 만든 프로그램이라서 일주일정도 파악을 했는 데 있어야 할 코드가 없는 거예요. 바로 보고했죠. 근데 대표님께서 믿지를 못하셔서 제가 문제점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만들고 발표까지 했어요. 그 뒤로 제가 코딩을 도맡아서 친구(체스 두던)랑 같이 구축했더니 실제로 성능상의 문제가 한 번에 해결 됐어요.
잡고 늘어지는 힘이 진짜 좋네요. 저는 끈기가 정말 없어요. 굉장히 충동적이고 이거 바꿨다 저거 바꿨다 하거든요. 의진 씨는 끈기 있게 일하는 사람 같아요. 물론 그 안에 주도성과 적극성도 포함되고요.
김의진 : 저는 이것도 제가 좋아하는 일이라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왜 안 되는지 분석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재밌기 때문에 힘든 순간이 와도 끝까지 하는 거죠. 유독 하기 싫은 일도 분명히 있는데 그것도 필요하면 해야죠.
물리는 언제부터 좋아하게 됐어요?
김의진 : 어렸을 때부터 자연 대백과나 우주에 관한 책을 되게 좋아했어요. 블랙홀은 왜 생겼을까? 별은 뭘까? 우주의 신비에 관한 책이 너무 재밌어서 엄청 많이 읽었어요. 처음에는 천문학과를 지망했는데 고3 들어서 더 깊이 고민했죠. 생계에 대한 고민도 하다가 방향을 약간 틀어서 물리학과를 가면 천문학에 대한 길도 열어놓고 공학으로 갈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물리학과를 진학하기로 결심했죠.
의진 씨는 어디서 동력을 얻나요?
김의진 : 예전에 유명했던 김연아 선수 인터뷰가 갑자기 떠오르는데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그래도 저는 그냥 하는 거는 아니긴 하지만 이 일은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선택을 하는 거죠.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성취감을 얻는 경험이 쌓이면 지금 당장 힘들어도 그 과정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성취감이 동력이 되는 거죠. 그래서 힘든 일이 있어도 어느 정도 감수하고 넘길 수 있는 동력원이 되지 않나 싶어요.
선순환인 거네요. 의진 씨의 단순함은 강한 신념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확신하니까 단순해질 수 있는 거죠.
김의진 : 모든 걸 따지기 시작하면 끝도 없기 때문에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는 것 같아요.
닮고 싶은 롤모델이 있나요?
김의진 : 다양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몇 명 뽑자면 연구하는 태도면에서는 위에서 얘기했던 교수님과 사수님 두 사람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제가 인턴으로 있으면서 우리 중에서 연구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교수님이라는 걸 느꼈어요. 평생 연구만 하셨을 텐데 눈빛부터 다르시더라고요. 열정과 애정을 갖고 일하는 모습을 닮고 싶어요.
물리학자 중에서는 '리처드 파인만'을 굉장히 좋아해요. 물리학도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에요. 굉장히 어려운 물리 현상도 친절한 언어로 풀려고 노력했던 사람이거든요. 그런 노력과는 별개로 물리적인 업적도 굉장한 사람이라 존경도 많이 받고요. 물리학자라고 물리학의 세상에만 갇혀 있는 게 아니라 물리 현상을 최대한 직관적이고 쉬운 말로 풀어서 설명하려는 노력들이 인상 깊었어요.
일반인들도 물리와 친해질 수 있게 노력하신 거네요.
김의진 : 그렇기도 하고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어요. '쉬운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면 그건 이해하지 못한 거다.' 그 말에 100% 동의해요. 어떻게 해야 더 단순하고 쉽게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공부하는 거죠. 물리 현상을 쉽게 풀어내려면 완벽히 이해해야 하니까 결국에는 본인의 전문성도 높일 수 있는 거죠. 직업적인 부분에서는 네 분을 롤모델로 삼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고등학교 친구를 얘기하고 싶어요. 그 친구는 특유의 다정함이 있어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갈 줄 알죠. 저는 중학생일 때까지만 해도 인간관계에 손익을 따지고 재수 없고 차가운 사람이었거든요. 근데 그 친구를 만난 뒤로 친절함과 다정함을 배우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 같아요. 인간관계에 있어서 저의 롤 모델인 셈이죠.
강한 사람이 친절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친절하려면 그만큼 에너지가 필요하잖아요. 스스로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베풀 수 있는 거죠. 상대방을 헤아려야 되는 일이니까요.
그러면 이번 질문의 연장선으로 의진 씨에게 좋은 영향을 준 책 한 권을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김의진 : 이런 질문을 받으면 꼭 추천하는 책이 있어요.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인데요. 제목만 봤을 때는 굉장히 상투적인 얘기만 할 것 같았는데 읽어보니까 '인간은 대체 왜 이러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주더라고요. 사람이 생각보다 이성적이지 않고 모순적이라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잖아요. 이 책에서는 그 이유가 인간은 직관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 뒤에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해요. 후에 뇌가 논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스스로는 굉장히 이성적이라고 느끼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되게 모순적이고 이상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게 1장의 내용이에요.
2장에서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 접하고 뭉치고 나뉘면서 정치적인 생각까지 갈리는 사회 현상을 사회 심리학자의 언어로 되게 잘 풀어서 설명해 줘요. 이 책을 읽고 나서 저의 모순적인 면들도 많이 알게 됐어요.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법도 배우고요. 그래서 저는 항상 '바른 마음'을 추천해요.
의진 씨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뭐예요?
김의진 : 결국에는 자아실현인데... 성취지향적이고 도전적인 성향이 강해서 제가 좋아하는 일을 통해 실질적인 성취를 이뤄내는 거죠. 당시에는 힘들었어도 가장 재미있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목표를 세우고 노력해서 이루어낸 경험들이 가장 즐거웠어요. 그런 순간들을 많이 만들려고 노력하죠. 그러려면 말만으로는 안 되고 실제로 많은 노력을 수반해야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고요.
저는 성취 지향적인 사람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그게 제일 큽니다. 근데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교수님이 뭘 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생각해 보면 연구하는 과정에서 제가 결정 못하는 것들도 되게 많거든요. 프로젝트를 열심히 하다가도 결국 안 되는 연구일 수도 있고요.
안 되는 연구에서는 성취감을 못 얻잖아요.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결과를 받아들여요?
김의진 : 안 되는 걸 아는 것도 되게 중요하죠. 근데 안 되는 걸 알면서 하나하나 추려나가다 보면 결국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아니까 그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힘든 상황이 생기면 의지하고 싶고 털어놓고 싶은데 의진 씨는 지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하시나요?
김의진 : 사람이라면 누구나 힘든 일이 있을 때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서 얻은 것 중에 하나인데 어렸을 때는 굳이 내 어려움을 얘기해야 하나 싶었어요. 고민을 나누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교회에서는 서로 기도 제목을 나눈다고 표현하거든요. 내가 지금 어떤 힘듦이 있는데 같이 기도해 줬으면 좋겠다. 함께 기도해 준다는 말이 되게 힘이 돼요. 기도를 통해 고민을 나누는 법을 배운 거죠.
물리는 과학의 영역이고 사실을 증명하는 학문인 반면에 종교는 증명이 불가능한 무형의 영역이잖아요. 개인적으로 의진 씨의 성향과 종교가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 생각한 적이 있는데, 이런 부분은 어떻게 받아들이시나요?
김의진 : 시간 순으로 얘기를 해보면 교회를 제대로 다니기 시작한 건 중학교 때부터였어요. 거의 엄마 손에 잡혀서 끌려가듯이 갔는데 그때는 확실히 질문하신 성향이 있었어요. 과학을 굉장히 좋아하는 평범한 중학생이었죠. 첫 설교 때 '신이 있을까?.. 없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면서 되게 열심히 들었어요. 목사님 말씀에서 모순을 찾아내려고요. 근데 목사님이 저를 되게 좋아했어요. 이 친구 설교 되게 열심히 듣는다고. 오히려 좋아해 주시니까 좀 웃기기도 했어요.
사실 꾸준히 교회에 나가는 게 힘들긴 했어요. 중고등학교 때도 그렇고 대학생 때도 굉장히 바쁘게 살았거든요. 근데 힘든 만큼 즐거움도 있었어요. 특히 교회 수련회 준비를 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죠. 학생부 선생님들 다 같이 한 달 전부터 주말마다 예배 끝나고 저녁 8~9시까지 일하면서 준비했어요. 수련회 당일에는 2박 3일 동안 고생하면서 사이도 돈독해지고 또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기쁘더라고요.
교회 수련회에서는 어떤 프로그램을 하는 거예요?
김의진 : 기본적으로 예배를 하고요. 그 외에도 아이들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활동을 많이 준비해요. 예를 들면 성경 내용을 재미있는 보드 게임에 접목시켜서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아니면 단순하게 아이들이 물놀이를 좋아하니까 그 앞에 조그마한 풀을 만들어서 물놀이도 하고요. 되게 좋아해요. 그래서 저한테는 교회가 되게 넓은 의미의 가족이에요.
같이 찬양도 준비하고 서로 기도해 주고 기도받고 하는 시간들도 있고요. 교회를 다니면서 느낀 게 순기능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진심으로 신을 믿는 사람이었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왜 신을 믿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김의진 : 기독교인이 가질 수 있는 굉장히 단단한 신념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시련이 와도 결국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나를 위한 계획을 예비하셨다는 믿음이요. 그런 믿음이 확고하게 내 안에 자리 잡았다면 나도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실제로 긍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교회에서 많이 보기도 했고요.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응당해야 할 신념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분들이 분명히 교회에 많이 있어요.
선한 영향력을 주는 거죠?
김의진 : 그렇죠 선한 영향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저도 많이 받았는데 결정적인 문제가 있어요. 과학자들 중에서도 '자연은 신 없이 만들어졌을 리 없다'부터 시작해서 신앙심을 확고하게 가져가는 사람이 있어요. 저도 개인적으로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에는 그게 안 된 사람이에요. 신은 검증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예요. 근데 저는 초자연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믿는 게 안 되더라고요. 종교의 순기능은 인정하지만 아직까지 신이 믿어지지는 않는다. 그 정도 상태인 것 같아요.
'종교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믿는 것이다.'
전 무교라서 종교의 의미가 잘 와닿지 않았는데 우연히 위에 적힌 한 문장을 읽고 생각이 좀 열렸던 것 같아요. 불교는 '무소유' 기독교는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하더라고요.
김의진 : 저도 기독교는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가치는 믿음에서 나오고 믿음은 개개인마다 다르잖아요. 사랑이 없다고 믿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제 주변에도 종교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친구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 친구들의 삶은 '종교'라는 하나의 큰 줄기를 타고 가는 것 같아요. 흔들리지 않는 강한 신념을 갖고 사는 게 정말 부럽더라고요.
저는 되게 많이 휘둘리거든요. 별의별 욕구가 다 생기잖아요. 그 줄기를 저도 빨리 갖고 싶어요. 그게 뭐가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의진 씨의 가치관에 영향을 준 성경 구절이 있나요?
김의진 :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고린도전서 13장 4절에서 8절이에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구절을 읽어보니까 사랑하는 게 정말 어렵다는 게 느껴지네요. 평생 못할지도 모르겠어요.
김의진 : 저도 사랑이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런 방향이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오늘 같이 얘기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성취와 발전', '사랑과 선함'이라는 키워드로 묶이는 것 같아요. 귀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김의진 : 저도 얘기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어요.
4학년 7반을 지나 급하게 계단을 내려갔다. 복도에는 실내화 끌리는 소리가 끽끽 울려 퍼졌다. 똥 싸러 간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면 4층에 있는 화장실은 꼭 피해야 했다. 1층 화장실 앞에서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다. 나는 잽싸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화장실은 조용했고 모든 칸이 비어있는 것까지 확인한 후에야 바지를 내렸다. 싸는 와중에도 누가 들어오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해 최대한 소리를 안 내려고 애썼다. 친구들이 내가 똥 싸는 소리를 듣고 냄새까지 맡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나는 얼른 볼일을 마치고 조심히 화장실 문을 열어 밖을 살폈다. 반대편 복도 끝에 예진이가 있는 걸 보자마자 고개를 집어넣었다. 하마터면 들킬 뻔했다. 밖이 잠잠해졌다. 나는 조용히 문을 열고 화장실 바로 옆 도서관에 들어갔다.
문 바로 옆 책장에서 예진이가 책을 고르고 있었다. 순간 흠칫했다. "안녕.." 예진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 응" 나한테 냄새가 나지는 않을까 불안해 얼른 거리를 벌렸다. 미로 같아서 답답했던 책장 사이사이가 숨고 싶을 때는 아주 유용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책장 뒤에 서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내 눈높이에 꽂혀있던 책 한 권을 뽑아 조용히 책상에 앉았다. 왠지 모르게 예진이가 계속 신경 쓰였다. 내가 똥을 싼 탓일까?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예진이는 가만히 책만 읽었다. 동그란 안경에 노란색 점들이 살짝씩 비쳤다.
먼저 일어나야 할지 아니면 예진이가 나갈 때까지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할지 계속 고민했다. 열한 살 인생 통틀어 도서관에 제일 오래 앉아있는 날이었다.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책을 읽길래 저렇게 집중하는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언뜻언뜻 보이는 표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나를 바라보는 예진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 그대로 책을 덮고 태연한 척 걸어 나갔다. 오늘 점심시간은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생각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다음날 조례 시간, 선생님은 한 명 한 명 출석을 불렀다. "박수정, 박정원, 석지원, 이찬민, 이혜원" 다음은 예진이를 부를 차례였다. 한 번도 늦은 적 없는 애가 오늘은 지각을 했다. "아 예진이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갑작스레 전학을 가게 됐어. 너희한테 인사 못하고 가서 미안하다고 전해달래. 그리고 너무 고마웠대." 맨 앞자리 하나가 비어 있으니 괜히 하루 종일 신경 쓰였다. 그러다 문득 어제 예진이가 읽었던 책이 뭔지 궁금해졌다. 나는 점심을 먹자마자 도서관에 들러 사서 선생님께 그 책에 대해 물었다. "우주 대백과 사전.." 점심시간 내내 책을 읽었다. 책장을 넘기는데 낯익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 바탕에 노란 점들이었다. "예진이 안경에 비쳤던 게 별이었구나." 나는 별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천천히 읽고 또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