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착한 개지만 점점 더 착한 개가 되고 있어요
할머니의 손끝에선 맛있는 게 나와, 그래서 할머니를 졸졸 따라다녀. 그럼 할머니는 항상 "버찌 배고파?" 하시면서 계란도 주시고 고구마도 주시고 과일도 주셔.
엄마랑 아빠는 산책도 시켜주고 장난감도 사주고 재미있는 놀이터에도 데려가지.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것도 맨날 시켜. 발톱 자르기, 양치질, 목욕, 교육 이런 거 말이야. 어떤 날은 나를 선생님한테도 데려가는데 교육이니, 입소니, 서열이니 그런 무서운 대화를 주고받아.
형아랑 누나는 나랑 솔메이트야. 가끔 형아랑 누나가 아침마다 큰 가방을 메고 나가지 않는 날들이 있는데 엄마랑 아빠가 자러 가면 형아랑 누나가 어딘가에 가서 큰 비닐에 먹을 걸 잔뜩 사와. 그런 날은 내 간식도 전부 꺼내와서 광란의 야식 파티를 하는 거야.
우리 셋다 배가 불러지면 형아랑 누나는 네모나게 생긴 화면으로 뭔가를 보고 나는 그 옆에 드러누워. 형아랑 누나가 번갈아가며 날 한 번씩 쓰다듬어 주면 잠이 솔솔 와.
우리 가족은 날 너무 사랑하고 나한테 항상 잘해줘. 그래서 나도 말썽 부리지 않고 착한 개가 되려고 노력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내 간식도 절대 함부로 먹지 않아. 맛있는 냄새가 나를 유혹하지만 나에게 먹으라고 준 게 아니니까 기다려야 돼.
그리고 난 사실 이 식탁 위에 올라가서 뭐든 내 맘대로 먹어치울 수 있어, 하지만 그러지 않아. 그렇게 하면 가족들이 싫어할 테니까. 그래도 너무 궁금하면 가끔 턱만 살짝 올리고 냄새는 맡아봐.
엄마랑 아빠는 그것도 안된다고 해. 그럼 식탁 밑으로 가는 수밖에.
내가 어릴 때는 응가를 아무 데서나 해서 엄마를 힘들게 했대. 찻길을 건너다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려고 하는데도 응가를 하고 사방에서 차가 오고 있는 큰 골목 사거리에서도 응가를 했었대. "내가 개똥을 치우다 죽을 팔잔가" 엄마가 그런 말을 했었어. 그때는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애기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응가가 마려웠거든. 요즘엔 구석진 곳,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가를 주로 이용해.
나는 착한 개지만 혼날 때가 있어, 산책을 나가서 줄을 당기면 안 된다고 하는데 가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질 때가 있거든. 친구들 냄새가 바로 코앞에서 난단 말이야. 그런데 지난번에 줄을 당긴다고 엄마가 줄을 놓으면서 너 가고 싶은 데로 가버리라고 해서 정말 깜짝 놀랐어. 엄마가 화가 난 거 같아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얌전히 앉아서 기다렸더니 "혼자 갈 용기도 없는 주제에..."라면서 엄마가 다시 줄을 잡았어. 휴우, 조심해야지.
⚠ 보더콜리는 목줄을 놓으면 99.99% 주인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래도 물론 당연히 아무도 다니지 않는 안전한 곳에서만 해봅니다.